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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원정대]
5구간 계족산성길
패망의 슬픔 서린 산성의 도시

2019. 06. 20 by 이기준 기자
질현성에서 본 대전 도심 풍경.

대전 동부지역엔 유난히 산성이 많다. 대부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대립한 흔적이기도 하다. 삼국시대 초기만 하더라도 신라는 감히 백제를 넘보지 못 했다. 고구려와 백제의 패권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이리저리 줄을 대기 바빴을 뿐이다.

6세기 중엽은 백제의 역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시점이고 신라의 입장에선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근초고왕 이후 가장 강력한 백제의 군주로 꼽히는 성왕 때다. 성왕은 사비(충남 부여) 천도를 통해 전열을 정비하고 신라와 연합(나제동맹)해 551년 백제의 근거지였던 한강유역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백제는 신라에 배신에 한강유역을 신라에 내주게 된다. 고토(한강유역) 회복을 위한 고구려와의 전투에 전력을 올인한 나머지 고구려와의 전쟁에선 이겼지만 전유물은 신라에게 속수무책으로 넘겨주게 된 거다. 물론 백제는 그리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 곧바로 서라벌을 향해 진격, 왜(일본)와 가야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도발을 감행한 신라를 응징해 나가면서 관산성(충북 옥천 추정)까지 접수했다. 그러나 백제의 선봉장이었던 태자 여창(위덕왕)이 고군분투하며 신라를 정벌하고 있다는 소식에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 성왕이 수십 명의 친위부대만 이끌고 아들에게 달려가다 적의 매복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이 황당한 역사의 기록으로 백제는 패망을 향해 치닫게 된다. 이 관산성 전투에서의 승리로 신라는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치열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곳이 바로 지금의 대청호 인근이다.

대전지역에선 약 50여 개의 산성이 발견되는데 이 중 절반이 백제와 신라의 경계선상, 대청호반에 위치해 있다. 전략적 요충지였고 그만큼 치열한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5구간 계족산성길 : 허물어진 성벽의 흔적, 슬프도록 아름다운 곳 지켰던가

 

산성 따라 떠나는 역사여행

 

대전둘레산길 5구간의 테마는 산성(山城)이다. 치열한 한반도 삼국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4구간의 종점인 동신고 버스종점에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 비룡동 줄골장승, 갈고개, 갈현성, 능성, 질티(고개), 질현성, 절고개, 계족산 봉황정을 거쳐 용화사주차장에서 구간을 마무리 한다. 공식 구간은 11㎞, 약 6시간 30분이 소요된다.

1∼4구간과 비교하면 훨씬 수월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계족산 임도삼거리에서 봉황정에 오르는 코스가 급경사라 다소 힘에 부치지만 전체적으로 수월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공식구간엔 포함돼 있지 않지만 계족산성까지 코스에 포함시키는 선택도 할 수 있다. 중간 중간 산성에서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흔적과 ‘내륙의 다도해’로 불리는 대청호반 풍경이 어우러져 색다른 산행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시원하게 펼쳐진 대전 도심 전경은 덤이다.

 

5구간 산행 시작길에 만날 수 있는 비룡동 줄골마을 석장승. 할아버지 장승(천하대장군, 사진 오른쪽)과 할머니 장승(지하대장군)으로 구성돼 있다. 두 장승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대전시 기념물 제12호. 갈현성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져 동쪽 성벽만 남아있다.
망초는 햇빛을 받으면 잎을 열고 해가 지면 잎을 닫는데 활짝 핀 모습이 계란 프라이 같다고 해서 흔히 ‘계란꽃’으로 불린다.

 

치열했던 격전의 현장에서


동신고 버스종점부터 비룡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으면서 슬슬 몸을 푼다. 길가에 세워진 돌로 된 장승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곳이 5구간 산행의 시작이다. 비룡동 줄골마을 석장승은 할아버지 장승(천하대장군)과 할머니 장승(지하대장군)으로 구성돼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두 장승은 길을 사이로 2.5m 간격을 두고 서 있었는데 비룡동과 추동을 연결하는 길(도로)이 확장되면서 할머니 장승을 뒤로 조금 물려 지금은 약 10m 간격을 두게 됐다. 줄골마을에선 매년 정월대보름 하루 전날에 거리제를 지내고 제례를 마친 뒤 짚으로 만든 주머니에 음식을 넣어 장승의 목에 넣어두기도 한다.

줄골마을로 들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수많은 장승들이 이 마을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5구간을 알리는 둘레산길 표지판을 따라 오솔길을 걷다 보면 금세 갈고개에 도달한다. 동구 용운동에서 넘어오는 고개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면 ‘대전시 기념물 제12호’를 알리는 비석을 만난다. 갈현성이다. 해발 263m 산봉우리에 축조된 이 테뫼식 석축산성은 성 둘레가 약 350m인데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져 동쪽 성벽만 남아 있다. 성 내 곳곳에서 삼국시대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출토됐다.

동구 용운동과 비룡동을 잇는 임도를 지나 계속 북쪽으로 길을 잡는다. 햇살을 머금은 개망초 군락이 화사한 초여름의 운치를 살린다. 개망초는 햇빛을 받으면 잎을 열고 해가 지면 잎을 닫는데 활짝 핀 모습이 계란 프라이 같다고 해서 흔히 ‘계란꽃’으로 불린다. 개망초 꽃밭을 따라 산행을 즐기다 보면 기괴한 바위들과 만나게 된다. 하나 같이 신기하게 서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능성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난다. 잠시 오르막을 타 능성이 있는 솔향산(314m) 산봉우리에 도달하면 대전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대전시 기념물 제11호 능성은 동구 가양동 뒷산 비름들고개 위에 돌을 쌓아 만든 산성으로 성 둘레는 약 300m 정도다. 성벽이 대부분 무너져 내려 원래의 모습을 파악하긴 어렵다. 역시 백제인이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전시 기념물 제8호 질현(산)성.
질현성에서는 대전의 젖줄 대청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도심에서 만나는 바다

 

산 능선을 따라 다시 길을 잡는다. 질현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산 아래로 옛 경부선과 현재의 경부선 고속도로가 지난다. 가양동에서 주산동·추동으로 넘어가는 임도를 지나 산을 오르면 대덕구 비래동에 접어드는데 이곳에 대전시 기념물 제8호 질현(산)성이 있다. 질티(고개) 북쪽 정상의 산세를 이용해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약 800m에 이른다. 동·서·남벽 3곳에 성문터가 남아 있는데 이 중 남문터는 너비가 3.8m로 성을 드나드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이 성을 백제부흥운동군의 거점 중 하나인 지라성으로 보기도 한다.

이곳은 백제와 신라, 최후의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였지만 지금은 마냥 평화롭기만 한 휴식처다. 그래서 이곳에서 바라보는 절경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대전의 젖줄 대청호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론 대전 도심이 한 눈에 들어온다. 대전이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대청호의 존재가 절대적이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대청호 덕분에 대전시민은 전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물을 이용한다.

대청호의 풍경은 언제 어디서 보더라도 절경이다. 회색 빌딩 숲과 대청호의 자연이 어우러지는 콜라보레이션은 흔치 않은 산행의 경험을 선사한다.

 

5구간 계족산성길을 걷다보면 기괴한 암석과 돌탑들을 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계족산 황톳길. 산행으로 지친 발의 피로를 촉촉한 황토 위를 맨발로 걸으며 풀 수 있다.

 

대전 관광의 새로운 메카


가양비래공원에서 추동 방면으로 넘어가는 길치(고개)를 지나 확 트인 대청호반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조금씩 질현성에서 멀어지면 본격적인 계족산 산행이 시작된다. 산봉우리 하나 지날 때마다 고갯길이 나오고 산봉우리 하나하나 넘을 때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대청호반은 절로 감탄사를 부른다.

대청호와 벗하며 슬슬 발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절고개에 도달한다. 계족산이다. 계족산은 몇 해 전부터 황톳길로 유명해졌다. 대전·충남 향토 주류 제조 회사인 맥키스컴퍼니(옛 선양)가 계족산 둘레길 약 14㎞ 구간에 황토를 깔아 맨발로 산행을 할 수 있게 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맥키스컴퍼니는 매년 봄 계족산 맨발축제를 열어 더 건강한 산행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하고 숲속 야외 공연장도 조성해 등산객들에게 아름다운 오페라 공연도 선사한다. 계족산 황톳길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대전관광의 대표 아이콘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계족산 또 하나의 명소인 계족산성은 최근 새단장을 마쳤다. 옛 산성을 복원해 고풍스러운 멋을 발산한다. 대청호반을 배경으로 한 일출과 대전 도심에 드리워지는 석양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어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시민들도 많다.

절고개에서 산성 방향으로 오르막을 탄 뒤 대청호와 대전 시내 전경을 다시 한 번 눈에 담고 임도삼거리 방향으로 하산해 다시 봉황정이 있는 계족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을 타야 정상(429m)에 도달하는데 이곳 역시 탁월한 조망을 선사한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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