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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 원정대]
7구간 금병산길
대전, 과거와 미래의 공존

2019. 07. 17 by 이기준 기자
금병산에서 바라본 대전시

대전은 동구와 중구를 중심으로 한 원도심에서 점차 서북쪽으로 도시의 규모를 키웠다. 동구, 중구, 서구, 유성구·대덕구 순으로 자치구가 출범하면서 인구 150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대전천과 유등천, 갑천 등 대전 3대 하천은 이 과정에서 자양분 역할을 했다. 대전의 북부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대전경제의 심장과도 같다. 대전산단과 대덕산단은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철도를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돼 지역 전통산업의 요람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했고 이제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산업단지가 대전의 미래를 밝힐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대전둘레산길 7구간에선 이 역사적 흐름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굴뚝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대전시는 ‘4차산업혁명특별시로의 도약’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공간적 배경, 핵심 기반이 바로 이곳이다.
 

 

둘레산길의 ‘북극’에 서다

대전둘레산길 7구간은 대전의 북쪽에서 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다. 남쪽에 있는 보문산이나 식장산에서 바라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오봉산, 보덕봉, 금병산을 차례로 오르면서 녹지와 어우러진 대전의 신도시들을 조망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산 고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큰 힘 들이지 않고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다만 도시개발과 군사시설 등을 이유로 당초 구간 코스가 끊겨 애를 좀 먹어야 한다. 유성구 봉산동 버스기점에서 오봉산(∼1.9㎞), 구룡고개(∼0.7㎞), 보덕봉(∼1.2㎞), 용바위고개(∼3㎞), 금병산 정상(∼1.4㎞), 노루봉(∼1.5㎞), 거칠메기고개(∼약 6㎞)를 거친다. 7구간 공식거리는 12.2㎞로 돼 있는데 실제 약 15㎞정도 되고 군사시설 철책 신설로 인해 약 5㎞를 우회해야 하기 때문에 구간 길이는 훨씬 더 길다. 이 점 유념해서 산행 계획을 세워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오봉산 전망대
오봉산에서 바라본 대덕구

 

다섯 봉우리를 간직한 오봉산

북쪽에 있던 장마전선이 내려오면서 요 며칠 장맛비가 내리더니 반짝 해가 나왔다. 습기는 금세 증발해 뜨거운 하루가 시작된다. 대전 유성구 봉산동 버스기점에서 7구간을 시작한다. 불무교로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100m가량 걷다 오봉산 등산로로 접어든다. 햇살은 뜨겁지만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햇살은 기를 못 편다. 시원한 산바람에 실린 숲내음을 음미하며 산을 오른다. 그리 가파르지 않아 산책하듯 가볍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쉬엄쉬엄 약 40분, 오봉산(五峯山) 정상에 이른다. ‘오봉정(五峯亭)’이라는 소박한 정자가 가장 먼저 등산객을 맞이하고 확 트인 전망은 등산객이 이곳을 찾는 이유를 이야기 해 준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그리고 갑천과 어우러진 도시의 한 조각이 작품처럼 눈에 들어온다. 이 맛에 산에 오른다. 잠시의 수고로움은 경치에 금세 잊히고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은 힐링의 씨앗이 된다.

 

승천할 준비하는 대전의 최북단


오봉산에서 다시 길을 잡는다. 구룡고개로 향한다. 구룡고개까진 0.7㎞, 내리막이 이어진다. 그런데 구룡고개에 도달하는 순간, 산길이 끊긴다. 이 고갯길은 대전의 최북단인 신동·둔곡·구룡과 도심권인 송강을 잇는 왕복 2차선 도로인데 도로 확포장공사가 진행되면서 산길이 완전히 단절됐다. 도로(고갯길) 폭이 더 넓어지면서 산허리가 끊기게 된 거다. 산 절개면을 따라 내려가 도로를 건넌 뒤 다시 반대쪽 절개면을 따라 올라 산행을 재개한다. 공사가 완료되는 2020년 이맘 때 쯤 단절된 7구간 길도 새롭게 정비될 것으로 보인다.

보덕봉으로 오르는 길, 경사가 다소 가파르다. 구룡고개에서 보덕봉까진 약 1.2㎞, 약 35분이 소요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보덕봉에 오르면 다시 한 번 조망이 터진다. 오봉산에서 바라보는 조망과 비슷한데 갑천을 경계로 나뉜 대덕구와 유성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쪽은 전통산업의 집적지(대전3·4산업단지, 대덕산단), 다른 한 쪽은 최근 개발된 첨단산업의 집적지(대덕테크노밸리)다. 관평·용산·탑립동 일대에 조성된 대덕테크노밸리는 대덕연구단지의 기술을 상용화하는 벤처의 요람이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대전경제의 주춧돌이 될 차세대 기업들이 성장의 사다리를 차곡차곡 오르는 중이다.
 

 

대전의 신성장동력, 대덕특구

대전을 흔히 과학의 도시라고 한다. 과학기술 분야 국책연구기관들이 대부분 이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연구원과 표준과학연구원, 전자통신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속속 터를 잡았고 이들은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토대를 마련해 첨단산업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곳에서 개발된 세계 최초의 원천기술들은 세계 표준으로 속속 자리매김하며 우리 기업들이 패스트 팔로어가 아닌 퍼스트 무버로 도약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2005년 도약을 발판을 마련했다. ‘과학기술의 상용화’라는 미션을 부여받고 대덕연구개발특구로서 공간적 범위를 넓혔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개발된 기술이 비즈니스로 연결돼 기술창업이 물꼬를 틀 수 있도록 하는 혁신공간이 곳곳에 조성됐다. 대덕테크노밸리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기술 하나로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이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7구간 산행을 하다 보면 공사장 소음이 끊이지 않는데 바로 신동·둔곡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사업 때문이다. 이곳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로 현재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르네상스를 열 인프라 중 하나인 중이온가속기 ‘라온’이 구축되고 있다. ‘월드 클래스’ 수준의 인프라인 만큼 가속기가 2021년 구축되면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이용한 연구를 위해 대전을 찾게 된다.

 

금병산에서 바라본 대덕특구와 자운대

 

대전 북쪽에 펼쳐진 비단병풍

보덕봉에서 잠깐 쉬었다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는다. 용바위고개로 향하는 길인데 금병산(錦屛山) 산행의 시작이다.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린다는 의미다. 또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금병산에 접근한다. 원자력연구원과 자운대 등을 차례로 거치며 미래 창출의 숨소리를 듣는다. 산 정상부에 도달하면서 유성 노은지구 아파트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금병산 12봉 가운데 7구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봉우리는 제2봉 일광봉(日光峯, 348m)으로 이곳이 바로 용바위고개다. 이곳에선 용이 되기 위해 승천을 기다리던 이무기 세 마리에 대한 전설이 전해진다. 제1봉 옥련봉(玉輦峯)은 적오산에서 오르는 길에 있으니 7구간에선 볼 수 없다. 이무기 전설을 뒤로 하고 차례로 금병산의 봉우리들을 섭렵한다. 이따금 만나는 큰 바위들의 틈바구니에서 승천을 준비하는 이무기가 있는지 살펴보며 계속 발걸음을 옮긴다. 제6봉 연화봉(蓮花峯)에 도달하면 동학을 일으킨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를 교조(敎祖)하는 수운교(水雲敎) 사람들이 금병산 12봉을 소개하고 표지석을 세운 배경을 담은 비석이 서 있다. 금병산 아래엔 수운교천단이 있다. 수운교천단(水雲敎天壇)은 1929년 세워진 목조건물로 수운교의 상징이다.

용바위고개에서 약 30분, 금병산 정상에 도달한다. 제7봉 운수봉(雲水峯) 표지석과 함께 372m 정상석이 있고 이곳이 바로 7구간의 클라이맥스다. 자연녹지의 품에 살포시 안겨 있는 대덕특구와 자운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빼곡이 들어찬 도심 회색 빌딩들이 펼쳐진다. 식장산에선 치열해 보이는 빌딩숲이 압권이라면 금병산에선 녹지와 어우러진 한결 여유로운 도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12봉 창덕봉(彰德峯)까지 능선이 이어지는데 노루봉(365m)으로 불린다. 여기서부턴 거칠메기고개를 거쳐 구간을 마무리하게 되는데 군사시설 철책이 새롭게 생기면서 구간이 늘었다. 바로 악명(?) 높은 철책길이다. 철책을 따라 2.5㎞ 정도 하산했다가 다시 그만큼 올라온 뒤 거칠메기고개로 향해야 한다. 다만 풀이 우거지는 여름엔 피하는 게 좋다. 철책길을 따라 군사시설 후문이 있는 세종시 봉천마을(금남면 축산리)까지 내려왔지만 다시 오르는 길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풀이 자라 ‘중탈’ 결정. 노루봉까지의 기억만 안고 구간을 종료한다. 거칠메기고개는 산등성이를 넘어 고개 통로를 거쳐 들어오는 바람이 몹시 강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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