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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원정대]
9구간 수통골길
국립공원의 위엄, 수통골

2019. 09. 25 by 이기준 기자

튼튼한 다리와 말(馬) 말고는 교통수단이라는 게 없었던 시절, 일본은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아시아 본토로 진출하기 위해 철도연결을 시도했고 노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서울-수원-충주-문경-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기존 주요 루트를 포기하고 충남을 선택했다. 산을 최대한 피해야 철도건설에 따른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충남의 최대 도시는 공주였지만 경부선 철도가 대전을 지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낱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대전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나타난 변화는 대단했다. 1904년 6월 대전역이 설치됐는데 철도공사와 맞물려 일본인이 대전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엔 이들을 위한 관청과 학교 등 낯선 시설들이 들어서게 됐고 공사인력들이 모여들면서 촌락이 급속도로 커졌다.

1914년 회덕군·진잠군과 공주군의 일부가 합쳐져 대전군이 신설됐고 기존 회덕군과 회남면 지역(일본인이 주로 거주했던 원동·중동·정동 등)을 중심으로 대전면이 설치돼 이곳이 현재 대전광역시의 모체가 됐다. 이후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했고 1935년엔 대전부로 승격돼 우리나라의 중추 도시로 거듭났다. 광복 후 1949년엔 대전시가 됐고 1989년엔 대덕군 전역을 편입하면서 대전직할시(광역시)가 됐다.

2019년 올해는 대전시가 출범한 지 70년, 광역시로 승격한 지 30년이 되는 해여서 그 의미가 더 크다. 대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분지지형이다. 대전둘레산길이 완성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쪽에 식장산·계족산, 서쪽에 계룡산 줄기, 남쪽에 보문산·구봉산, 북쪽에 금병산이 병풍처럼 솟아 ‘한밭’을 감싸고 있다. 한밭의 ‘한’은 ‘크다’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인데 이를 한자화한 것이 바로 대전(大田)이다.

대전둘레산길 9구간은 계룡산국립공원의 동쪽 끝부분이다. 그래서 계룡산국립공원둘레길과 맞닿아 있다. 대전에서 공주로 넘어가는 삽재에서 출발해 도덕봉, 자티고개, 금수봉, 빈계산을 거쳐 수통골에 도착한다. 구간 공식 거리는 10㎞로 약 6시간이 소요된다. 이번 산행에선 구간 막바지(빈계산 정상-수통골주차장)가 10구간과 겹치는 점을 고려해 성북동삼거리에서 수통골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삽재-도덕봉(1.6㎞), 가리울삼거리(0.8㎞), 자티고개(1.9㎞), 금수봉삼거리(0.8㎞), 금수봉(0.6㎞), 성북동삼거리(0.9㎞), 수통골주차장(2㎞)으로 이어진다. 9구간은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아 큰 무리 없이 산행을 즐기면서 계룡산국립공원의 웅장하고 수려한 자연풍경과 빌딩숲이 우거진 대전시 전경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쉴 새 없이 조망이 터지기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다.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쉼터도 조성돼 있어 데이트 코스로도 적합하다.

도덕봉으로 가는 길, 산줄기가 파도처럼 일렁이고 계룡산국립공원 동학사지구 초입을 볼 수 있다.
도덕봉으로 가는 길
도덕봉에서 바라본 대전 전경.

  대전에서 만나는 국립공원  

9구간에서 가장 긴 오르막은 역시 삽재에서 도덕봉에 오르는 길이다. 약 1시간 40분정도 소요되는데 중간에 나무테크계단 끝자락에서 첫 조망이 나타난다. 장군봉 능선을 배경으로 한 계룡산국립공원 동학사지구 초입을 볼 수 있다. 조금 더 힘을 내 오르면 본격적으로 대전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길게 뻗은 낮은 산줄기가 파도처럼 일렁이고 그 사이 사이에 국립대전현충원과 아파트를 비롯한 회색 빌딩들이 들어차 있다. 이곳에서 보면 유성구와 타 자치구의 차이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유성의 경우 대전에서 가장 급속도로 발전한 곳이지만 자연녹지가 여전히 많은 부분을 차지해 좀 더 삶의 여유가 묻어난다.

도덕봉(道德峰·535m)은 계룡산 천황봉에서 황적봉을 지나 민목재를 넘은 뒤 관암봉, 백운봉에서 좌측으로 갈라진 산으로 계룡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이 산줄기가 대전둘레산길 8구간, 7구간으로 이어져 금강까지 도달한다. 예부터 이곳 마을 주민들은 이 산을 흑룡산(黑龍山)으로 불렀다고 한다. 봄엔 진달래가 붉게 물들고 산벚꽃도 많이 핀다. 도덕봉이란 이름은 옛날 이 골짜기에 도독이 많이 살았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지명의 유래야 어떻든 이곳은 깊은 골짜기를 품고 있고 계룡산 줄기를 두루 조망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고 눈이 즐겁다. 도덕봉, 금수봉, 빈계산이 품은 수통골 깊은 골짜기는 대전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국립공원이다.

도덕봉 이정표. 9구간은 대전둘레산길 표지판이 없다.이정표에 붙어있는 둘레산길 표시를 잘 확인해야 한다.
수통골길은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수려한 자연풍경과 빌딩숲이 우거진 대전시 풍견을두루 감상할 수 있어
잠시 정상루트를 벗어나 쉬어가는 재미가 있다.
깊은 골짜기에 푹 파묻혀 있는 쉼터. 아늑하니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선사한다.

   녹색힐링 쉼터로의 외도  

공식 구간은 도덕봉 정상석과 이정표를 확인하고 가리울삼거리로 향하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잠시 '외도'를 권한다. 수통골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에 쉼터가 조성돼 있다. 깊은 골짜기에 푹 파묻혀 있어 제법 운치가 있고 마음을 내려놓고 싶을 정도로 아늑하다. 도덕봉 암벽 위에서 바라본 녹색 숲속 쉼터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안구를 정화하고 지친 마음에 힐링를 선사한다. 회색빛 바쁜 도심의 일상과 녹색빛 평온한 자연의 극명한 대비가 주는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감동이 바로 대전둘레산길에서만 접할 수 있는 가장 큰 매력 가운데 하나다.

달팽이 처럼 생긴 소나무 한 그루. 

  비단에 수놓은 듯 '금수봉'  

다시 도덕봉에서 가리울삼거리로 길을 잡는다. 오른쪽으로 계룡산 천황봉에서 이어지는 웅장하면서도 변화무쌍한 산줄기기 장쾌하게 펼쳐지고 왼쪽으론 대전시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가리울삼거리에서 본격적인 금수봉 산행이 시작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데 곳곳에 암릉이 형성돼 있어 다이내믹한 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자티고개에 이르기 전 사연이 많아 보이는 달팽이처럼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자티고개를 가로질러 젖 먹던 힘을 다해 오르막을 타면 마침내 정자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금수봉(錦繡峰, 532m) 정상임을 말해준다. 금수봉은 대전 유성구 성북동 새뜸마을 북쪽에 있는 산이다. 이 산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면 온 산이 비단을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금수봉이라 이름 지어졌다. 금수봉에서 조금 내려오면 조망이 터지는데 계룡산 천황봉과 대전 전경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금수봉삼거리 이정표.
성북동 삼거리에서
수통골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수통저수지.
수통골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수통저수지.

  대전의 핫 플레이스 '수통골'  

금수봉에서 빈계산으로 향하는 길, 대전의 모습이 더욱 선명해진다. 몇 발자국 움직였을 뿐인데 조망은 금세 대전의 서남부지역에 더 가까워졌다. 방동저수지가 눈에 들어오고 이제 남은 10∼12구간 산 능선이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금수봉에서 약 1㎞ 내려오면 성북동삼거리가 나온다. 원래 코스로 직진하면 빈계산에 오른 뒤 수통골주차장으로 하산하는데 어차피 수통골주차장에서 빈계산에 올라 여기서 10구간 산행을 시작해야 하니 이번 산행에선 성북동삼거리에서 수통골주차장으로 하산하는 길을 선택한다. 하산하는 길은 약 2㎞에 이른다. 졸졸졸 계곡물 소리 벗 삼아 천천히 발길을 옮기면서 자연이 선물을 만끽한다. 수통폭포와 수통저수지를 차례로 지나 산행을 마무리한다. 도착지점엔 계룡산국립공원 수통골네이처센터가 있는데 이곳에선 아이들과 자연생태에 대해 체험하고 책도 읽을 수 있다.

수통골은 몇 년 새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땅값이 치솟더니 어느새 카페를 비롯한 휴게음식점들이 빼곡이 들어섰다.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화산천을 따라 등산객의 발길을 잡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수통(水通)골은 ‘길고 크게 물이 통하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유성구 덕명동 화산마을 남서쪽에 있는 긴 골짜기로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유원지로 개발됐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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