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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원정대]
10구간 성북동산성길
대전의 마지막 미개척지, 서남부권

2019. 10. 09 by 이기준 기자

[ 대전둘레산길 원정대 ] 
10구간 성북동산성길

대전은 1904년 대전역 신설과 맞물려 현재의 동구와 중구에서 도시개발이 시작됐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했고 1949년 대전시가 됐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가 뚫리고 대전에서 분기하면서 대전은 교통의 요지로 거듭났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기점으로 서구 개발이 본격화됐고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로 1989년 광역시로 승격했다. 그 후로 정확히 10년 뒤, 둔산동 개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대전시청은 둔산동 현 청사로 이전해 21세기의 문을 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2005년 대덕특구 승격, 그리고 국가 차원의 백년대계인 세종시 건설계획 발표 등을 거치며 유성구와 대덕구지역까지 도시개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재 도안신도시 개발이 한창이고 대전교도소가 방동저수지 인근으로 이전하면 이제 대전의 마지막 미개척지인 서남부권에 대한 개발도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 이색적인 대전의 가을풍경

‘대전의 야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식장산이다.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 그래서 대전시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특히 화려한 조명이 수놓은 도시의 모습은 장관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면 대전의 건축물들은 대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어 대도시의 위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있는 빈계산에서 바라보면 대전의 도시 풍경은 그야말로 반전이다. 도심에선 전혀 상상도 못 했던 대전의 농촌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대전둘레산길 10구간은 수통골주차장에서 출발해 빈계산(414m)에 오른 뒤 성북산성, 산장산(265m)을 거쳐 방동저수지 입구까지 이어지는 약 8㎞ 코스다. 소요시간은 대략 쉬엄쉬엄 6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둘레산길 전체 12구간 가운데 가장 짧고 빈계산에 오르는 초반 약 1시간을 제외하면 그 이후론 산줄기가 완만하게 펼쳐져 있어 수월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오른쪽으론 계룡산 줄기가 장쾌하게 펼쳐지고 왼쪽으론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대전의 새로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고단한 오르막길. 돌계단의 끝은 어디인가 
밤송이를 나르느라 분주한 청솔모.
빈계산 정상 즈음에서 바라본 봉우리들.
널찍한 평상에서 쉬어가는 사람들.

 

#. 계룡산의 동쪽 끝, 빈계산

계룡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수통골은 대전시민의 휴식처로 오랜 기간 사랑받아 왔다. 빈계산-금수봉-도덕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대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산행코스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국립공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대전도심도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계산 오르는 길은 그리 만만치 않다. 1.8㎞ 산행 구간 내내 가파른 오르막이 형성된 탓이다. 돌계단과 나무계단 등 등산로가 잘 정비돼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산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은 언제나 녹록지 않다.

가을태풍의 영향으로 수통골의 주요 봉우리들이 안개에 휩싸였다. 산 정상 조망을 맛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후부터 차차 갠다는 기상청의 예보를 믿어보는 수밖에. 고단한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진다. 돌계단 한 번 오르고 쉬고, 나무계단 한 번 오르고 쉬고, 나무 벤치를 만나면 또 한 번 쉬고, 열심히 밤 까먹는 청설모 구경하며 쉬고, 이렇게 쉬엄쉬엄 산을 오른다. 1시간 정도 오르다 보면 계룡산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난다. 다행히 안개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파란 하늘 사이사이 뭉게구름이 가을의 정취를 더한다. 9구간에 속한 도덕봉과 금수봉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고 저 멀리 희미하게 계룡산 천황봉도 조망된다. 도덕봉의 암벽은 어디서 봐도 압권이다. 다시 힘을 내 빈계산 정상으로 향한다. 마지막 3분 젖 먹던 힘을 다해 오르막 한 구간으로 오르면 빈계산 정상 표지를 만난다.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찾기 때문에 정상 주변엔 널찍한 평상도 많이 준비돼 있다.

 

벼가 익어가는 노란 들판과 아파트 숲이 오묘하게 펼쳐진다.
봉덕사 조망터에서.
휴식을 취하는 호랑이 모습의 범바위.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지켜준다.
산아래 70m가 넘는 바위.용이 자세를 잡고 있는 모양새란다.

 

#. 범바위-용바위 억새길

빈계산 정상부터 성북동산성까지 약 3.5㎞ 구간이 10구간의 하이라이트다. 산 능선이 비교적 완만하게 형성돼 있어 큰 힘 들이지 않고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빈계산에서 능선을 하나 넘어 1.3㎞, 성북동과 대정동을 잇는 임도를 만난다. 조금 더 가면 또 다른 성북동과 대정동 갈림길을 만나고 조금 더 힘을 내 오르면 봉덕사 조망터에 도달한다. 성북동 산뜸마을 동북쪽 산중턱에 있는 봉덕사가 보인다고 하는데 어디쯤인지 잘 가늠이 되진 않는다. 원래 유성구 원내동 돌샘골에서 이곳으로 절을 옮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이곳엔 고려시대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석조보살입상과 5층탑이 조성돼 있다.

조망터 인근에 있는 거대한 암릉 위에 서면 대전의 서남부 끝자락에 위치한 성북동과 둘레산길 나머지 구간의 능선들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대전의 마지막 대규모 도시개발현장인 서남부지역이 한 눈에 들어온다. 월평공원과 도솔산 너머로 회색 빌딩숲이 가득 들어차 있고 그 반대편인 갑천변에서 새로운 도시개발의 손이 뻗쳐오고 있다. 도안신도시 개발이 완성되면 그 다음은 서남부권 개발이다. 지금은 벼가 익어가는 농지지만 조만간 이곳 용계동과 대정동, 교촌동 일원에서 도시개발이 시작된다. 이렇게 되면 호남고속도로에서 바라보는 대전의 풍경은 논이 아니라 아파트 숲으로 바뀐다.

눈길을 사로잡고 발길을 붙잡는 끝내주는 조망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잡는다. 10분 정도 발걸음을 옮기면 범상치 않은 거대한 바위를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범바위’다. 산 아래 마을에서 바라보면 용맹한 호랑이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라는데 이 호랑이 바위가 마을을 지켜보면서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지켜준다. 5분 정도 더 가면 범바위보다 더 큰 바위를 만나게 된다. ‘용바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엔 산장산 용바위에서 계룡이 나왔다고 쓰여 있는데 이 바위 역시 산 아래서 바라보면 70m가 넘는 웅장한 바위가 마치 용이 자세를 잡고 있는 모양새라고 한다. 한 여인이 이곳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나중에 커서 장군이 됐다는 전설도 전한다. 1805년 발간된 충청도읍지엔 용바위와 범바위의 위치가 명확하게 표기돼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범바위-용바위 구간에선 억새가 뽀얀 솜털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성북동산성 가는 길.
성북동산성 앞 임도.
대부분 허물어져 산성의 형태를 파악할 수 없는 성북동 산성. 아쉽지만 표지판으로만 확인.
산장산에서 바라본 대전 둘레산길 능선
정자에서 바라본 11구간 구봉산 능선.
10구간의 마지막 코스 방동저수지.

 

#. 성북동산성 지나 산장산

용바위에서 잠시 내리막을 타면 성북동과 대정동을 잇는 또 다른 고갯길(임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에서 성북동산성을 만나게 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산성에 대한 설명 표지판이다. 대부분 허물어져 산성의 형태를 파악할 순 없다. 이 산성은 해발 약 230m 정상에 테를 두르듯 돌을 쌓아 만든 백제시대 산성이다. 성 둘레는 약 450m 정도 되는데 성벽은 거의 다 허물어졌고 북벽과 서벽 일부만 남았다. 동벽과 남벽은 돌을 쌓지 않고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경사면을 깎아내는 방법으로 성을 조성했는데 다 무너져 그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성 안에선 여러 개의 건물터가 발견됐고 백제시대 토기와 기와 조각들이 출토됐다. 삼국시대, 이곳은 대전 동쪽의 산성들과 연결되는 군사 요충지로 대전에서 연산으로 향하는 길목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성북동엔 ‘잣뒤’라는 지명이 있는데 성 뒤에 있다는 뜻이다.

성북동산성에서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산장산에 오르는 길인데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크게 힘들진 않다. 약 25분 정도 소요된다. 산장산 정상엔 정자가 멋스럽게 조성돼 있다. 여기선 진잠동과 관저동이 바로 앞에 펼쳐진다. 하산하는 길, 널찍한 너럭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로 방동저수지가 보인다. 500m 정도 더 내려가면 또 다른 정자를 만나게 되는데 11구간 구봉산 능선이 뚜렷하게 조망된다. 계속 내리막, 방동저수지에서 구간을 마무리한다. 계룡산 금수봉과 백운봉 골짜기에서 발원한 성북천 물길은 방동저수지에서 평온하게 잠시 머무른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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