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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둘레산길원정대]
11구간 구봉산길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서

2019. 11. 06 by 이기준 기자
대전 서구 구봉산 위에서 헬리캠 촬영으로 바라본 대전시 전경.

[대전둘레산길원정대] 11구간 구봉산길 :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서

대전시가 광역시로 발돋움한 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다. 198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전시를 둘러싸고 있던 대덕군이 편입되면서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서는 중부권 최대도시로의 도약을 예약했다. 이와 맞물려 서구가 1988년 출범하면서 비약적인 도시개발이 이뤄졌다. 대전의 정중앙, 둔산신도시 개발로 정부 외청들이 모이는 정부대전청사가 마련되고 대전시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전시청까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 서구는 대전의 중심도시로 거듭났다. 둔산신도시 개발과 같은 시점에서 주목받았던 또 다른 택지개발지구가 있다. 바로 관저지구다. 대전서남부권개발의 첫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지금도 택지개발이 이어지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관저2동은 2019년 대전시 79개 행정동 가운데 처음으로 인구 5만 명을 돌파했다. 둔산신도시는 월평공원이라는 녹지를 배후로, 관저신도시는 구봉산을 배후로 대전 도시개발의 새 역사를 썼고 이를 기반으로 서구는 150만 대전인구의 3분의 1을 품은 대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 했다.
 

◆ 여유롭게 산길 따라 물길 따라

대전둘레산길 11구간은 유성에서 서구로 넘어가는 구간이다. 유성구 성북동 방동저수지에서 서구 봉곡동 구봉산(264m) 등산로 초입에서 등산을 시작해 구봉산의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섭렵한 뒤 괴곡동 고리골마을로 내려와 다시 갑천을 따라 걷다 효자봉, 쟁기봉까지 오르는 코스다. 전체 구간은 9.4㎞, 6시간이 소요된다. 구봉산을 비롯해 산 해발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산책하듯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살짝살짝 엿보이는 구봉산 봉우리들의 아기자기한 자태와 흑석동 노루벌 전경이 조망 포인트다. 구간 3분의 2 지점에 위치한 괴곡동 새뜸마을에선 언뜻 봐도 범상치 않은 느티나무 한 그루와 만나게 되는데 이 나무가 바로 대전의 유일한 천연기념물인 ‘괴곡동 느티나무’다.

 

구봉산 등정 초입길에서.
구봉산의 첫번째 봉우리를 넘어

 

◆ 유성과 서구의 경계에서

10구간의 종착지이자 11구간의 출발점인 방동저수지는 갑천의 지류인 금곡천과 성북천의 중간지점에 1971년 조성됐다. 이곳에 모인 물은 성북동과 봉곡동 너른 들판의 대지를 적신다. 저수지 위를 지나는 방동대교 아래 터널길을 타고 11구간을 시작한다. 세점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유성구의 경계를 넘어 서구로 진입하고 호남고속도로 아래 터널을 지나 봉곡동에 이르면 구봉산 등산로가 시작된다. 방동저수지부터 여기까지가 약 1.3㎞, 아스팔트길이다.

산 정상에 도달하려면 가파른 오르막길은 필연적이다. 등산로 초입에 마련된 ‘구봉산 등산안내도’를 찬찬히 둘러본 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나무계단과 자연 능선길을 타고 대고개를 가로질러 약 10여 분 오르면 첫 번째 조망 포인트를 만난다. 방동저수지 위로 시원하게 뻗어 있는 호남고속도로가 계룡산 천왕봉을 호위하는 위왕산과 약사봉 사이를 유유히 지나간다.

능선을 따라 유유자적 가을 산의 정취를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한천골갈림길을 지나 어느새 구봉산의 첫 번째 봉우리와 마주한다. 자연 암봉인 탓에 경사도가 가파르니 로프에 의지해 올라야 한다. 이곳에선 북쪽 방면으로 10구간의 봉우리들은 물론 계룡산의 주요 봉우리들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봉우리 하나 넘으면 또다시 봉우리다. 두 번째 봉우리에선 구봉산의 꼭대기에 자리한 구봉정이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봉산 산행의 재미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집넘어골갈림길의 이정표

 

등산객을 맞이해준 다람쥐. 
성애원 갈림길에서
구봉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루벌.
저멀리 보이는 구봉정.
구봉정 가는 길에 지나게되는 구름다리.

 

◆ 구봉산에 오르는 궁극의 목적

산에 오르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구봉산이라면 십중팔구 하나다. 쉽게 오를 수 있는데 산이 가진 매력을 두루 다 갖추고 있다는 거다.

봉우리 넘어 금세 또 만나는 봉우리, 그러나 경치는 다 다르다. 그래서 봉우리 하나 넘을 때마다 재미도 다르다. 저 넘어 보이는 봉우리가 끝일 것 같은데 그 봉우리에 오르면 또 다른 봉우리들이 기다린다. 세 번째, 네 번째 봉우리를 넘어 집넘어골갈림길을 지나 로프에 의지해 가파른 암봉에 오른다. 먹을 것을 입에 문 다람쥐 한 마리가 등산객을 맞이한다. 구봉정이 더 가까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도시와 농촌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구봉산 능선도 이채롭다.

성애원갈림길을 지나면 구봉산의 절경 중 하나인 노루벌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갑천에 둘러싸인 노루벌은 하나의 섬처럼 산 중에 살포시 감싸여져 있다. 노루벌의 운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은 수없이 이곳에 오른다. 구름다리 하나 지나 봉우리를 넘고 또다시 구름다리 지나 또 다른 암봉에 오른다. 쉴 새 없이 반복되는 봉우리, 이쯤 되면 구봉산의 봉우리가 몇 개인지 헤아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 구봉산(九峰山)의 한자음은 아홉 개의 봉우리를 뜻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많다. 예부터 10, 또는 100이라는 숫자는 왕 이외에는 쓸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숫자다. 아무리 힘 있는 권문세가의 대저택이라도 아흔아홉(99)칸을 넘지 못 했다. 그래서 구봉산 역시 봉우리가 많다는 의미에서 이름지어졌다는 설도 전한다.

구봉산엔 노루벌 조망 쉼터가 널찍하게 마련돼 있다.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까지 있을 정도다. 노루벌은 새끼노루가 어미노루를 좇아서 뛰는 형국이라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노루의 엉덩이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는 말도 전한다. 이곳은 캠핑장으로 최근 각광받기 시작했고 특히 ‘노루벌 구절초와 반디의 숲 체험원’ 조성사업을 통해 대전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노루벌 끝자락에서 갑천을 건너면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21호 상제집략판목(喪祭輯略版木)이 있는 고택(구봉제사)도 눈에 들어온다. 상제집략판목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권순경(1676∼1744)이 우리나라 전통예절에 관해 정리한 문집을 판각하기 위해 만든 판목이다.

노루벌 조망 쉼터에서 암봉을 하나 지나 아찔한 구름다리를 건너면 구봉산의 정점에 있는 구봉정을 지나게 된다. 보통 팔각정이 일반적인데 구봉정은 구봉산 아홉 봉우리의 의미를 따 구각정 형태로 만들어진 게 특이하다.

위엄이 느껴지는 암봉이 아기자기하게 호응하는 산세와 대전에서 가장 유명하기로 정평이 난 가을단풍, ‘산 중 섬’의 몽환적인 노루벌 풍경, 그리고 자연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회색빛 도시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 구봉산은 대전시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 충분한 매력을 유감없이 뽐낸다.
 

오두막 쉼터를 지나 다시 산행시작.
괴곡동 고리골 이정표
하산길에 보이는 괴곡동 느티나무.
넉넉한 그늘을 선사한 느티나무 아래서 산행을 마무리.

 

◆ 둘레산길에서 만난 천연기념물

구봉정에서 구봉산의 매력을 다시 한 번 오감으로 느낀다. 또 이곳이 대전의 서남부지역 관문이라는 것도 새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철도가 구봉산의 처음과 끝을 지난다.

구봉정에서 잠시 사색에 잠긴 뒤 발걸음을 옮긴다. 한적한 산 능선길을 따라 오두막 쉼터를 지나고 또 하나의 암봉에 올라 가수원동과 정림동, 저 멀리 원도심을 눈에 담는다. 구봉근린공원과 빼울약수터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 하산길에 접어든다. 괴곡동 고리골마을에 다다를 무렵 호남선철도와 한적한 시골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괴곡동 새뜸마을이다. 마을의 중심에 자리 잡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특히 인상적이다.

2013년 7월 17일 천연기념물 제545호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높이 16m, 근원의 둘레는 9.2m나 된다. 나이는 700살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줄기 하나가 웬만한 나무기둥만큼 크다. 나이에 비해 키가 좀 작지만 대신 옆으로 넓게 가지를 펴 마을 사람들에게 넉넉한 그늘을 선사한다.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그늘이 400㎡나 된다. 피서 명당이 따로 없다. 마을 사람들이 칠월칠석이면 제사를 지낼 만큼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해 왔다. 이 느티나무와 관련해선 홍수가 났을 때 갑천 상류에서 떠내려 온 어린 느티나무가 땅에 뿌리를 내린 것이란 전설이 구전돼 왔다. 이 신통방통한 놈이 자라서 어느새 온 마을 사람의 희로애락을 품어주는 구심점이 됐다. 그러고 보니 이곳 괴곡동도 느티나무 ‘괴(槐)’자를 쓴다. 느티나무 근처엔 파평윤씨 서윤공파 고택이 있는데 미루나무에 둘러싸인 옛기와집의 안온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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