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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3대하천 탐험대 with 타슈]
① 대전 생명의 모태, 대전천

2019. 11. 17 by 이기준 기자

물은 생명이고 그래서 강은 도시의 젖줄이다. 강이 흐르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며 문명을 싹틔우고 그 문명이 켜켜이 쌓여 도시를 만든다. 대전엔 모두 116개 하천이 흐른다. 소하천이 87개가 있고 지방하천은 26개가 있으며 국가하천은 3개다. 이 하천들의 길이를 합하면 346㎞에 이르고 종국엔 모두 금강으로 수렴된다. 하천은 규모에 따라 소하천, 지방하천, 국가하천으로 나뉘는데 대전을 흐르는 금강과 갑천, 유등천이 국가하천으로 분류돼 있다. 2020년부턴 대전천도 국가하천에 포함된다. 이로써 대전의 3대 하천(갑천·유등천·대전천)은 모두 국가재정으로 통합 관리된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 편집=장미애 기자 / 그래픽=김선아 기자    

[대전 3대하천 탐험대 with 타슈] 
① 대전 생명의 모태, 대전천 : 시간을 달려 마주한 도시의 기억
② 대전 도약기의 원천, 유등천 : 휴식같은 친구, 버드나무 바람 속으로
③ 대전 3대 하천의 으뜸, 갑천 : 갑천, 그 비타민詩

  [3대하천 탐험대 with 타슈]  
① 대전 생명의 모태, 대전천

#1. 대전시의 태동

일제시대 전까지만 해도 대전은 회덕(지금의 대덕구)의 변두리였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지 자원 수탈과 맞물려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선철도가 계획되고 1904년 지금의 자리에 대전역이 설치되면서 일본인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대전역을 중심으로 촌락을 형성했고 대전은 점차 도시로 발전했는데 그 중심이 바로 현재 ‘대전의 원도심’으로 불리는 곳이다. 일제는 대전역을 중심으로 가로축, 세로축으로 신작로를 만들었다. 각각 지금의 대전로와 중앙로다. 일제는 특히 경부선철도 건설과 맞물려 호남선철도도 개통했는데 대전을 그 분기점으로 삼았다. 최대한 산지를 피해야 철도건설이 빨라지기 때문에 선택한 곳이 바로 대전이다. 대전이 일약 교통의 요지로 급부상하자 대전에 정착한 일본인들은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까지 대전으로 이전(1932년)시켜 대전을 충남의 수부도시로 만들었다. 충남도청이 다시 충남으로 환원돼 내포신도시로 이전한 게 2012년이니 꼬박 80년간 충남의 심장부가 대전에 있었던 셈이다.

 

# 대전천 발원지 만인산 봉수레미골
# 대전천-유등천 합류지점
# 대동천-대전천 합류지점(보문중고 앞)
# 목척교
# 목척교 야경
# 으능정이거리
# 대동하늘공원
# 대전천-유등천 합류지점

 

#2. 원도심 발원의 원천, 대전천

대전이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천은 대전천이다. 이 물길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았고 시민 생활에 필요한 용수를 대전천이 공급했다. 대전천은 유등천·갑천과 달리 발원지가 대전에 있다. 대전과 충남 금산의 경계에 있는 만인산 봉수레미골(동구 하소동)에서 발원해 대덕구 오정동에서 유등천으로 흘러들어간다. 하천연장은 22.4㎞에 이른다. 발원지부터 중구 옥계동 옥계교까지 14.6㎞ 구간은 지방2급 하천이고 여기서부터 다시 유등천 합류지점까지 7.8㎞은 지방1급으로 분류되는데 지방1급 하천 구간 유역이 ‘대전시내’로 불린다. 유등천과 합류하기 전 보문중·고등학교 앞에서 식장산에서 발원한 대동천을 흡수한다.

대전천에서 가장 유명한 건 목척교다. 지금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옛 향수를 자극하고 추억을 소환하는 주요 얘깃거리다. 대전천의 생태하천을 복원을 위해 2008년 복개구간(목척교) 위에 세워졌던 중앙데파트를 폭파·해체하고 목척교를 다시 건립했을 때 대전천과 목척교에 얽힌 수많은 추억담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대전역과 함께 대전천·목척교가 대전 원도심의 상징, 구심점인 이유다.

2008년 중앙데파트 철거. 대전시 제공

대전천 복개와 더불어 목척교가 사라지고 그 위에 중앙데파트가 건립된 건 1974년의 일이다. 이후 중앙데파트는 대전 최초의 백화점으로서 명맥을 유지했지만 도시 성장과 더불어 초대형 백화점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옛 영화를 뒤로하고 2008년 10월 폭파·해체됐다. 그로부터 1년 뒤 중앙데파트 옆 홍명상가도 해체돼 대전천 복원이 본격화 됐으며 그 일환으로 2010년 새로운 목척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전천과 관련한 전설과 유래도 전해진다. 대전천의 물이 용머리를 적시는데 이것이 옥계수(玉溪水)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옥계동이다. 옥계동의 유명한 ‘애바우’는 옛날 이 바위에서 어린아이가 낚시질을 하다가 커다란 고기가 낚싯대를 끌고 가자 어린 아이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낚싯대를 잡으려다가 빠져 죽은 바위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부터 이 바위를 정성들여 위하면 자손이 없는 사람은 자손을 두게 되고 자녀를 둔 사람은 병이 없이 잘 자란다는 전설도 있다.

#3. 대전근대문화유산탐방로

충남 논산 강경이나 전북 군산 등과 마찬가지로 대전 역시 일제시대 식민지 자원 수탈의 거점에 있었던 만큼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치하의 아픔을 생각하면 말끔히 청산해야 마땅하나 이 아픔 역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유산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이 건축물들은 근대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일지 몰라도 이 근대문화유산(건축물)들은 요즘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고 있다.

대전은 대전천을 중심으로 부흥기를 맞은 만큼 이 주변에 일제시대 주요 건축물들이 다수 남아있다. 그래서 대전시는 이 역사문화자원을 관광 콘텐츠로 재조명하면서 ‘대전근대문화유산탐방로’를 조성했다. 말처럼 거창하진 않아도 옛 건축물들을 둘러보면서 일제시대 대전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는 있다.

# 대전역 #철도트윈타워
옛 철도청보급창고 3호(등록문화재 제168호)
옛 산업은행 대전지점

탐방로는 대전역에서 시작해 원도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우선 대전역 근처엔 철도 관련 옛 유산들이 즐비하다. 역 바로 옆에 옛 철도청보급창고 3호(등록문화재 제168호)가 남아 있고 그 주변에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소제동은 요즘 예술문화 접목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새롭게 태어나 핫 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대전역에서 옛 충남도청 방향으로 걷다보면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건축물은 옛 조선식산은행(등록문화재 제19호)이다. 지금은 다비치안경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이 건물은 1937년 건립됐다. 당시 일본인 자본으로 운영된 조선식산은행의 대전지점으로 건립됐으며 광복 후 1997년까지 산업은행 대전지점으로 사용됐다. 화강석으로 기단을 쌓고 2층 상단에 화려한 테라코타로 수평 띠를 둘렀으며 그 밑으로 팔각형 기둥을 설치해 정면성을 강조했다. 만주와 독일에서 수입한 화강석과 테라코타 등을 사용해 간결하면서도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옛 대전부청사
옛 충남도청
옛 충남도관사촌(테미오래)

그 다음 만나는 건축물은 옛 대전부청사인데 지금은 현대식 건축자재를 뒤집어 써 옛 모습을 볼 수 없다. 다만 이 건축자재를 걷어내면 옛 건축물이 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다음은 옛 충남도청(등록문화재 제18호)이다. 이 건물은 도청 소재지를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면서 신축됐으며 한국전쟁 당시 임시 정부청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건립 당시에는 2층의 벽돌조 건물이었으나 1960년 무렵 넓은 창을 낸 모임지붕 형태로 3층 부분이 증축됐다. 외부 마감은 당시 유행하였던 밝은 갈색의 스크래치 타일을 사용했다. 옛 충남도청에서 보문산 쪽으로 방향을 틀면 옛 충남도관사촌(등록문화재 제101호)도 만날 수 있다. 1930~40년대 건립된 이곳은 당시 국장급 이상 고위 관료들을 위해 조성된 관사촌으로 일제 강점기 관사 건축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들 관사는 형태·재료·배치가 균일하며 주위의 경관과도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지금은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충남도지사 공관을 비롯해 4동의 관사와 3동의 창고가 남아 있다. 현재 ‘테미오래’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대전의 새로운 문화예술 명소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대흥동성당

원도심으로 조금 더 들어서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네빵집’의 타이틀을 갖게 된 성심당이 있는데 이 성심당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대흥동성당(등록문화재 제643호) 역시 근대문화유산이다. 지금의 성당 건물은 1962년에 완공된 것이지만 이 성당의 시초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흥동성당은 시대적 가치뿐만 아니라 성당 종소리의 비밀을 간직한 50년 종지기 조정형 씨의 삶도 품고 있다. 대전역 앞 포장마차에서 시작한 성심당은 대흥동성당과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혀 종국엔 성당 바로 앞까지 왔다. ‘성심(聖心)’의 결과다.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대흥동성당 바로 앞에 또 다른 근대문화유산이 있다.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등록문화재 제100호)이다. 1958년 건립된 이 건물은 20세기 중반 서양의 기능주의 건축에 영향을 받은 한국 근대 건축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99년 ‘건축문화의 해’에 ‘대전시 좋은 건축물 40선’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9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청사가 옮겨 간 뒤 2008년에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로 개관해 활용되고 있다.

옛 대전여중 강당

대전역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옛 대전여중 강당(등록문화재 제46호)도 남아 있다. 1937년 대전공립고등여학교 강당으로 신축된 이 건물은 대전에 남겨진 건물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아르누보형 지붕을 갖고 있다. 부드러운 지붕곡선이 특징인 이 건물은 고전주의적 벽돌 치형쌓기 기법을 사용해 처마선을 강조하는 동시에 장식성을 높였다. 측면에는 장방형으로 창을 넓게 설치해 실내를 밝게 하고 개방감을 강조했으며 정면과 뒷면에 아치형 창을 내 지붕선과 함께 유려한 선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몇 차례 보수공사를 거쳐 2003년 대전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대전갤러리로 리모델링 됐다.

옛 대전전기 제3발전소

이밖에 1951년 건립된 옛 한성은행(옛 조흥은행, 현 신한은행, 등록문화재 제20호)과 1922년 건립된 옛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등록문화재 제98호), 1930년 건립된 옛 대전전기 제3발전소(등록문화재 제99호) 등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대전근대문화유산탐방로는 최근 경관조명 설치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돼 야간 투어가 제격이다.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편집=장미애 기자
그래픽=김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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