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대전둘레산길원정대]
12구간 동물원길
원점 회귀, 새로운 시작

2019. 11. 20 by 이기준 기자

‘국토의 중심’,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 ‘과학기술의 도시’라는 타이틀과 함께 급성장한 대전시에 있어 2019년은 의미 있는 해다. 시가 된 지 70년, 광역시로 승격한 지 30년이 되는 해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메카인 대덕특구를 기반으로 4차산업혁명과 맞물린 새로운 시대를 열 준비를 하고 있고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 산업인 관광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도 하고 있다. 물론 전통산업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을 이끌어 가기 위한 노력에도 투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새로운 대전의 미래를 시민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출발점에 서게 됐다는 점이다. ‘분권’과 ‘자치’를 통해 성숙된 민주주의의 기반을 만들고 여기서 대전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거다.

이 같은 맥락에서 대전둘레산길 원정과 3대 하천 탐험을 통해 대전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밭 대전’에 대해 더 깊숙이 들여다 본 것은 지속가능한 도시 발전을 위한 소중한 경험이자 자산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1. 마지막 구간, 힘찬 발걸음

대전둘레산길의 마지막 구간인 12구간은 대전 중구 안영교에서 시작해 쟁기봉, 장안봉, 해철이산 등 중구와 서구의 경계를 따라 걷다 다시 중구로 진입, 침산(만성산), 언고개, 국사봉을 거쳐 둘레산길의 시발점인 보문산 시루봉에 도달하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공식구간은 약 12㎞, 7시간이 소요된다. 봉우리들의 고도가 높진 않지만 오르내림이 많아 산행이 만만찮다. 그러나 대전둘레산길 마지막 구간이라는 상징적 의미는 발걸음을 옮기는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종착지인 시루봉이 457m로 비교적 높지만 능선이 완만하게 형성돼 있어 큰 무리가 따르진 않는다.

#2. 경계와 경계의 연속

안영교 유등정(柳等亭)에서 유등천 정비사업 준공 기념으로 세워진 유등천 유래비와 12구간 안내판의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서 산행을 준비한다. 파란하늘, 환한 햇살이 습지의 생태계를 깨우고 가을의 운치를 더하는 억새가 갈바람에 출렁인다. 버드내를 따라 약 600m,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등산객을 맞이한다.

‘안영동 왕버들 보호수’다. 높이는 12m, 둘레는 2.5m에 이르는 수령 약 100년의 버드나무로 대전시 보호수 2005-1호로 지정돼 있다. 암벽을 끼고 버드내와 벗하며 조금 더 워밍업을 한다. 안영교 기점 1㎞ 지점에서 송전탑을 만나는데 여기부터가 본격적인 산행이다.

이정표상 쟁기봉(194m)까지 거리는 0.4㎞, 중간중간 대전 서구 도심의 정남쪽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복수동과 12구간 초반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쟁기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정림동과 가수원동, 관저동 등 서남부 아파트단지들을 눈에 담으면서 장안봉(171m)으로 향한다. 급하게 내리막을 탔다가 다시 한 번 오르면 장안봉이다. 갑천을 가로지르는 대전남부순환도로 모세골교와 관저동 개발과 맞물려 새로 놓인 정림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구봉산의 아름다운 능선과 저 멀리 도덕봉을 비롯한 10구간 산줄기는 물론 계룡산의 웅장한 능선도 눈에 담을 수 있다. 장안봉 아래로는 대전남부순환도로 안영1터널이 지난다. 이곳에선 대전의 유일한 천연기념물인 괴곡동 느티나무(11구간)를 발견하는 묘미도 있다.

중구와 서구의 경계를 따라 계속 남쪽으로 이동한다. 이정표상 거리는 1.9㎞, 갑천과 유등천을 잇는 고갯길을 지나 급경사를 오르면 해철이산(봉)을 만나게 된다. 이 구간의 나머지 능선들이 쫙 펼쳐지고 식장산 정상까지 눈에 들어온다. 해철이산과 침산, 만성산 골짜기에 살포시 안겨 있는 검바우마을이 인상적이다. 검은 바위와 거북바위가 있다고 해서 검바우골이란 지명이 전한다. 쟁기봉부터 해철이산까지 산 정상부는 서구에 속하고 그 반대편은 중구에 속한다.

#3. 만추(晩秋)의 고즈넉함 속으로

발걸음을 옮겨 중구 방향 샛(새)고개로 향하는데 이 능선은 대전과 충남 금산의 경계다. 바스락 바스락, 바짝 마른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여름 내내 울창했던 활엽수들은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겨 등산객들에게 파란 가을하늘을 허락한다. 샛고개에 이르기 전 해철이산을 되돌아본다. 울긋불긋 단풍과 하얀 억새 물결이 어우러져 만추의 고즈넉함을 선사한다. 파란하늘·뭉게구름이 늦가을의 정취를 완성한다. 샛고개에서 중반 산행을 시작한다. 샛고개는 안영동에서 금산 복수면 구만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를 말하는데 현재는 대전~복수 4차선 도로의 터널이 뚫려 있다. ‘옛날에는 진잠에서 진산으로 가는 길이 두리봉 쪽으로 있었는데 이곳에 새 길이 나게 되면서 새로 난 고개라는 의미로 새고개라 했다’고 전한다.

고갯길 지나 이정표를 따라 만성산에 진입한다.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군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알록달록 단풍낙엽은 산기슭을 온통 붉게 물들여 발길을 놓아주지 않는다. 일 년에 딱 한 번, 만추에만 만날 수 있는 이 풍경은 산 정상에서 만나는 탁 트인 조망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한다. 만추의 절경을 뒤로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전과 금산의 경계를 이루는 여울을 넘어 흐르는 유등천이 눈에 들어온다. 금산 발원지부터 지방2급 하천으로 분류되는 유등천은 여기서부터 국가하천으로 격상돼 갑천과 합류하기 전까지 15.5㎞를 흐르면서 중구와 서구의 경계 역할을 한다.

노랗게 물든 참나무숲과 벗하며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침산(267m) 표시가 나오고 또 5분 정도 더 가면 만성산(266m) 표지석과 함께 만성정(萬姓亭) 정자를 만난다. 원래 이곳은 ‘침산’이라는 지명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이 산에 국내 유일, 최대 규모의 효(孝)테마파크인 뿌리공원이 조성되면서 ‘만 가지 성씨가 모여있다’는 뜻의 만성산이란 지명이 새로 생겼다. 침산(砧山)은 ‘방아미산’ 이름에서 유래하는데 방아미는 산의 생김새가 방아돌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만성산에서 내려와 뿌리공원으로 들어선다. 대전남부순환도로 안영2터널 바로 위다. 시루봉 방향, 뿌리공원으로 진입하면 터널을 지지하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평행선을 그리는 메타세쿼이아 길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길은 뿌리공원 야영장으로 이어진다. 야영장에서 내려와 만성교를 통해 유등천을 건너고 다시 산행에 나선다. 본격적인 보문산 구간이다.

#4. 새로운 시작을 향해 한걸음 더 가까이

대전둘레산길 12구간의 종착지이자 둘레산길의 시작점인 보문산 시루봉까지 6㎞. 우선 언고개(교통광장)로 향한다. 나무계단길을 조금 올라 능선을 타면 장수봉(125m) 표지석을 만나고 장수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멋들어진 정자에 도달한다. 이곳에선 뿌리공원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실개천 같은 유등천이 만성산을 휘감아 돌아 뿌리공원에서 큰 물길을 형성하고 힘차게 뻗어 나간다. 시야의 끝자락, 침산교가 눈에 들어오고 그 위로 안영2터널을 빠져나온 대전남부순환도로 침산2교가 서 있다.

장수봉을 넘어서면 언고개다. 사정동 오월드삼거리에서 침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여기서부터 국사봉 등정이 시작된다. 이 구간은 대전오월드 경계 철책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 ‘오월드가 이렇게 넓은가?’ 할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다. 이 길에서 봉우리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국사봉(245m)이다. 이곳엔 제사 등의 용도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사봉 유적이 남아 있다. 봉우리에선 서대산의 웅장한 자태가 조망된다. 국사봉 아래 무수동엔 유회당 건물들이 고풍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국사봉을 넘으면 차가 지날 정도로 잘 정비된 임도가 펼쳐진다. 보문산을 순환하는 행복숲길인데 이 길을 조금 걷다 다시 등산로를 이용한다. 10여 분 정도 오르면 임도와 다시 만나고 여기서 다시 시루봉을 향해 계속 오르막을 탄다. 나뭇가지 사이로 대전 원도심이 조금씩 엿보인다.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엔 대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까치고개를 지나 마지막 힘을 다해 계단을 오른다. 193계단의 끝, 보문정(寶文亭)을 영접한다. 보문산 정상 시루봉이다. 불덩이처럼 달궈진 붉은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대전 도심도 하루를 정리할 준비를 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글·사진=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새로운 시작을 위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