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 2] 187. 빈 호프부르크 궁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는 국력이 커지면서 인스브루크의 호프부르크 궁을 모방하여 100여 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빈의 호프부르크 궁을 완성하여 1440년 수도로 옮겨왔다. 이후 빈은 신성 로마 제국의 실질적인 수도이자 예술, 과학, 음악, 요리의 중심지가 되었다. 1차 대전 후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호프부르크 궁은 여러 왕을 거치면서 다양한 양식으로 증개축되어 지금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변했다.
962년 교황 요한 12세는 프랑크족인 작센 왕조의 오토 1세에게 ‘신성 로마제국(Holy Roman Empire: 962~1806) 황제’의 관을 씌워주었는데, 신성 로마제국이란 그리스도 교회와 일체라는 뜻에서 신성(神聖)이라는 말을 붙였고, 고대 로마제국의 부활·연장이라고 여겨서 로마제국이라고 했다. 이후 역대 독일 국왕은 1806년 나폴레옹 전쟁 때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지위를 누렸다. 그런데, 1250년 프리드리히 2세(1212~1250)의 사후에 19년 동안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는 대공위(大空位)시대를 맞았다. 그동안 독일 본토는 제후들이 사실상 독립해 나갔고,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왕국의 많은 도시도 자치도시로 성장했다.
1273년 10월 7명의 제후가 독일 왕을 선출하는 선제후(選帝侯)가 강력한 보헤미아 왕 오타카르 2세를 배제하고, 가장 미약한 합스부르크가(Habsburg)의 루돌프 1세(Rudolf I: 1218~ 1291: 재위: 1273~1291)를 독일 왕으로 선출했는데, 루돌프 1세는 빈을 수도로 삼았다. 하지만. 루돌프 1세의 사후 장남 알브레히트 1세는 독일 왕, 차남 루돌프 2세는 오스트리아 왕으로 나뉘었다. 알브레히트 1세의 아들인 루돌프 3세는 1306~07년 보헤미아 왕이 되고, 오스트리아는 프리드리히 3세의 아들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493~1519) 1483년부터 1493년까지 아버지와 공동 황제로 있다가 합스부르크가의 영향력을 유럽 전 지역으로 크게 확산시켰다. 즉, 막시밀리안 1세는 결혼정책으로 오늘날의 네덜란드, 벨기에 지방을 합스부르크가의 영토로 하고, 또 1493년 아들 필리페와 에스파냐 공주 후아나와 결혼으로 스페인을 통치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막시밀리안 1세는 인스브루크의 호프부르크 궁(Hofburg)에서 살았다(자세히는 2023.11.1. 인스브루크 황금 지붕 참조).
빈의 호프부르크 궁은 크게 영웅광장 → 반달 모양의 건물이 신 왕궁(Neue Brug) → 구왕궁(Alte Brug)으로 나뉘는데, 영웅광장(Helden Platz)에는 두 개의 기마상이 있다. 오이겐 공작 기마상과 나폴레옹과 싸워 승리를 거둔 카를 대공의 기마상이다. 이탈리아 북부를 통치했던 사보이아 가문 출신인 프란츠 오이겐 폰 사보엔 카릭난(Franz Eugen von Savoyen- Carignan: 1663~1736) 공작은 오스트리아군 총사령관이 되어 스페인 왕위 계승전쟁과 오스만튀르크 전쟁 때 큰 공을 세우고, 헝가리 왕국을 통째로 넘겨주었다. 또, 신성로마제국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카를 대공(Erzherzog Karl: 1771~1847)은 1813년 나폴레옹의 침략군을 물리친 장군이다.
호프부르크 궁은 외부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나, 내부는 유료다. 신 왕궁 입장료가 어른 16유로, 학생 15유로, 어린이 10유로이고, 구왕궁(황제의 아파트먼트+실버 컬렉션+시시 박물관)의 입장료는 성인 12.50유로, 어린이 7.50유로다. 통합입장권은 성인 40유로, 어린이 27유로다.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1740~1780) 호프부르크 궁전은 겨울 궁전으로 삼고, 쇤브룬 궁전을 여름 궁전으로 삼는 호사를 누렸다.
영웅광장 뒤에 있는 신 왕궁은 1881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합스부르크 왕가의 패망이 가까웠던 1913년에 완성되어서 사실상 궁으로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고 한다. 네오 바로크양식의 신 왕궁은 현재는 나라의 중요 행사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합스부르크가의 치세 때 아프리카·남미 등지에서 가져온 보물을 전시하고 있는 민속학 박물관, 고대 악기 박물관, 무기 박물관, 에페소스와 사모트라키 섬에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에페소스박물관 등이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 아르테미스 여신은 달의 여신이자 아름다움의 여신이지만, 에페소스박물관에 전시된 아르테미스 여신상은 지금의 튀르키예 에페소 지역인 아나톨리아 지방에서 다산의 여신으로서 젖가슴이 스무 개나 달린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에페소 현지에는 복제품을 전시하고, 호프부르크 궁의 전시물이 진품이라고 한다.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부르크 문을 통과하면 구왕궁(Alte Burg)인데, 구왕궁은 콜마르트 거리와 그라벤 거리, 슈테판 대성당으로 통하는 대로에서 미하엘 문을 통해서도 입장할 수 있다. 미하엘 문에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동상의 뒤편이 아말리엔부르크, 왼쪽이 레오폴트 동, 오른쪽이 대통령 관저다. 대통령 관저 입구에도 그리스시대의 천하무적인 헤라클레스상이 세워져 있는 점에서 합스부르크가가 얼마나 무력을 강조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구왕궁에서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 1830~1916, 재위 1848~1916)와 엘리자베트 황후가 자녀들과 함께 살았다. 빈의 쉔브룬 궁에서 태어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근친혼으로 간질을 앓던 큰아버지 페르디난트 1세의 양위를 받아 18세 때 즉위했는데, 그는 24세 되던 1854년 이종사촌인 바이에른 왕국의 공주 엘리자베트(애칭 Si Si)와 결혼했다. 원래 요제프 1세의 어머니는 엘리자베트의 언니인 헬레네(애칭 Ne Ne)와 결혼시키려고 했지만, 헬레네와 맞선 장소에서 요제프 1세는 곁에 있던 엘리자베트에게 매혹되어서 결혼하게 됐다고 한다. 요제프 1세는 16세의 엘리자베스와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는데, 그는 68년간 통치하다가 1916년 쉔브룬 궁에서 죽었다. 구왕궁은 황제의 아파트먼트(Kaiser- appartement), 실버 컬렉션(Silber kammer), 시시 박물관(Sis Museum), 레오폴트 관, 스위스 궁, 왕실 예배당(Burg kapelle), 왕실 보물관 등이 있다. 황제의 아파트먼트에는 황제의 침실, 알현실, 회의실, 큰 살롱, 황제의 서재, 흡연실 등 11개의 방이 있고, 실버 컬렉션에는 왕실에서 사용했던 식기, 촛대, 샹들리에 등이 보존되어 있다. 또, 시시 박물관에는 엘리자베트 황후의 일생에 관련된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프란츠 1세의 동상 맞은편에 있는 건물은 호프부르크 궁에서 가장 오래된 왕실 예배당이다. 13세기 후반에 건축된 왕실 예배당은 15세기 중반 고딕 양식으로 개축됐는데, 매주 일요일 아침 미사 시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빈 소년 합창단의 성가를 들을 수 있다. 빈 소년합창단은 4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2~3팀은 월드 투어를 다니고, 나머지 1~2팀이 매주 미사 때 이곳에서 성가를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7~ 8월에는 휴관한다. 왕실 예배당 아래층에 제국보물실이 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