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소비가 행복이라는 착각, 그리고 공멸의 길

2023-12-25     금강일보

온 국민이 근검절약을 미덕으로 여기고 살던 때가 있다. 아끼고 모아서 풍요로운 내일을 위한 자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모든 물자가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소비를 줄여 최대한 아끼고 모았다. 불과 한 세대 전인 30년 전의 상황이다. 당시의 상황은 정부가 절약을 강조한 것도 맞지만, 빈곤 속에 살아가던 국민이 자발적으로 절약에 나섰다. 풍요롭지 못했으니 마음껏 소비할 수 없었고, 아끼는 게 당연했다. 절약은 미덕이었고, 모두의 생활 속에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불과 30년 사이 세상은 너무도 변했다. 모든 게 풍족하다 못해 넘쳐나는 상황이다. 근검절약이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소비가 미덕인 시대다. 무엇이든 풍족하게 준비하고, 남으면 미련 없이 버린다. 누가 더 많이 쓰고, 누가 더 많이 버리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필요 이상으로 준비해서 풍족하게 쓰고, 남는 것은 과감하게 버리는 게 요즘의 소비 풍속이다. 특히 내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 것이라도 체면을 위해서라면 절대 아끼지 않는다.

과거처럼 없어서 못 쓰는 시절도 아닌데 원 없이 소비하겠다는 게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가난이 삶을 짓눌렀던 지난날에 못 먹고 못 쓴 설움을 분풀이라도 하듯 과소비가 일상이 됐다. 없는 것도 아니고 물자가 넘쳐나는데 못 쓰는 게 바보라는 생각이다. 근검절약이란 말을 우리 생활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근검절약은 모든 걸 아끼는 게 습관이 된 노인들의 생활습관일 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과는 무관한 개념이란 생각이 강하다. 물자가 넘쳐나는데 못 쓰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다.

과거의 절약은 물자의 부족에서 비롯됐다. 부족하니 아껴야 했고, 아껴야 오래 쓸 수 있었다. 오늘날은 그 결핍에서 탈출했다. 오늘날의 한국인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마구 생산하고 마구 소비하며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소비력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경쟁이라도 하듯 소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비가 행복이라 여기며 소비가 안겨주는 달콤함에 빠져있다. 누구도 못 말릴 지경이다.

이제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소비를 줄여야 한다. 과거처럼 부족해서 줄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늘날 소비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예전과 다르다. 모든 생산과 소비는 자연의 파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실로 엄청난 자연 파괴가 지속하고 있고, 그로 인한 재앙이 성큼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가장 큰 재앙은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진행됐고, 조금만 더 지구 온난화가 가속하면 지구는 우리가 더 살 수 없는 행성이 된다.

지금 지구가 앓고 있는 중병은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자연 파괴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소한만 자연을 파괴하고,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생산과 소비를 하는 것이 맞다. 지금처럼 탐욕에 이끌려 마구 생산하고, 마구 소비하며, 마구 버리는 생활을 이어간다면 공멸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선각자들은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지만, 대중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특히 심각한 소비중독에 빠져든 대한민국은 브레이크가 없는 폭주 상태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는 경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더 잘살기 위해 더 많은 파괴를 일삼고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은 공멸로 가는 길임을 알고 생산과 소비를 줄여가는 길로 선회해야 한다. 이미 때는 늦었지만, 그래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하지 않았던가. 미래를 위해 후세를 위해 소비를 줄여야 한다. 없는 것도 아닌데, 풍족한 가운데 소비를 줄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