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10) 금산 김씨(錦山金氏) ⑤

황풍사, 후손들이 시조 김신 모신 사당

2012-10-26     김진우

황풍사는 성곡서원이 훼손되고 후손들이 새로이 세운 김신의 사당이다.
금산군 남일면소재지에서 금산읍으로 가는 봉황로를 따라 3㎞ 정도 가면 도로 왼쪽으로 황풍리 원황풍 마을이 나온다. 이곳의 주유소 오른쪽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마을회관에서 100m 떨어진 북쪽산 하단부에 황풍사가있다.

이 사우는 고려시대에 학행과 효행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금산김씨 중흥조인 김신(金侁)을 배향했다.
1617년(광해군 9) 김신을 배향했던 성곡서원(1663년 사액)이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자 김신은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배향한 부리면 불이리의 청풍사에 배향됐다.

그러다 후손들이 사우 건립을 추진한 끝에 1946년 황풍사를 건립해 김신을 배향했다. 1969년 황풍사 앞에 만리황풍비를 건립했다.

황풍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외삼문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에 ‘皇風祠’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황풍사의 왼쪽으로 황풍당(皇風堂)이 있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에 삼문과 담장으로 구획돼 있으며, 황풍당 안에는 후손 현칠(鉉七)이 기(記)한 ‘황풍사중수기(皇風祠重修記)’가 걸려 있다.

황풍사 입구에는 1969년에 은진(恩津)인 송재성(宋在晟)이 찬(撰)하고 여산송씨 송용(宋鏞)이 서(書)한 만리황풍비(萬里皇風碑,높이 320㎝,너비 90㎝,폭 55㎝)가 있다.

중흥시조 김신을 모신 사당이다.
사당 앞에 ‘만리황풍’비가 있는데 글씨는 원나라 성종의 글씨라 한다.
금산김씨 중흥시조 김 신(金侁)의 선조인 김은열(金殷說)은 신라 경순왕의 제4자로 공부시랑(工部侍郞:정4품 차관)을 거쳐 대안군(大安君)에 봉군됐으며 김은열의 후손이 크게 현달해 경주김씨를 대종(大宗)으로 하고 여러 본관으로 분관됐다.

김은열의 8세손인 김봉모는 외국어에 능하여 외국의 사신이 오면 관반사(館伴使:외국사신을 접대하기위하여 임명한 정3품 장관)로 천거되었으며 국가의 큰 일에는 항상 전례(典禮:왕실 또는 나라의 의식)의 일을 맡아보았다.

김봉모의 아들이 김태서(金台瑞)로 그는 고려 고종때 한림학사(翰林學士:고려때 문신가운데 뽑힌 뛰어난 학자로 수문전.한림원 등의 정4품.종3품)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정2품부총리)에 이르렀고 아들 김약선은 공부시랑(工部侍郞:정4품 차관), 김기손(金起孫)은 평장사(平章事:정2품), 김경손(金慶孫)은 추밀원부사(樞密院 副使:정령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하던 추밀원의 정3품)를 지내 3형제가 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