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 2] 202. 스위스 루체른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4-03-05     금강일보
▲ 루체른 전경

스위스 루체른(Luzern)은 북유럽의 젖줄인 라인강 상류와 롬바르드 지방 사이에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알프스산맥에 걸쳐 있는 스위스의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다. 루체른은 루체른 주의 주도(州都)이지만, 인구는 겨우 6만 명의 작은 도시이다. 루체른은 8세기경에 베네딕투스의 수도회의 장크트 루시아리아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형성된 마을로서 루체른이란 ‘빛의 도시’라는 의미이다. 루체른은 1178년 자치시(自治市)로 인가받았으나, 1291년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4세가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수도원과 도시를 매수하자, 주민들은 자유동맹에 가입하여 거세게 저항했다. 1386년 젬파흐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군대에 승리하여 독립을 얻은 루체른은 종교개혁 강풍이 스위스 전역에 불어닥쳤을 때도 가톨릭을 고수하여 1579부터 300년 동안 로마 교황청 대사가 주재했다. 루체른은 1798년 유럽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했으나, 1803년에 회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루체른은 스위스의 관문인 취리히와 제네바 국제공항과 비교적 가깝고 사방으로 교통이 편리해서 물가가 비싼 취리히나 제네바로 스위스에 입국하더라도 루체른에 숙소를 정하는 여행객이 많다.

화재 후 복원한 카펠교 지붕과 판화들

루체른은 알프스 계곡에서 흘러내린 빙하수를 수원으로 하는 로이스강(Reuss River)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강 위에는 7개의 다리가 주민을 사통팔달 편리하게 해준다. 로이스강은 우르너호수(Urner), 알프나흐 호수 등 4개의 숲과 호수가 있어서 ‘피어발트 슈테더(Vierwald stätterse)’라고도 하며, 루체른을 ‘호반의 도시’라고도 한다. 루체른 호수에는 알프스의 리기산(Rigi: 1797m)과 필라투스 산까지 운항하는 크루즈 선착장과 유럽 여러 도시와 연결되는 여객선 선착장도 있다. 여행객은 이곳 선착장에서 크루즈를 타고 리기산까지 가서 스키나 패러글라이딩, 등산하거나 고풍이 가득한 시내를 돌아볼 수 있다. 유레일패스 소지자라면 크루즈도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또, 루체른 호수에서는 매년 카지노, 노 젓기 대회, 경마 및 장애물 경기, 국제음악제 등 수많은 전통 축제 등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알프스의 융프라우(Jungfrau: 4158m)를 등정한 뒤 버스로 루체른에 도착한 우리 가족은 리기산 등산을 포기하고 시내 관광만 했다.

루체른에서는 호수를 중심으로 반경 1km 이내에 볼거리가 집중되어 있어서 도보로도 관광할 수 있지만, 중앙역 앞의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투어를 할 수도 있다.

카펠교

루체른의 7개 다리 중 204m의 카펠교(Kapellbrücke)와 80m의 슈프로이어교(Spreuerbrüke)는 목조 다리인데, 1333년에 건설된 카펠 교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한다. 그런데, 카펠교는 직선으로 쭉 뻗지 않고 중간에서 약 60도가량 꺾인 데다가 고깔 모양의 삼각 지붕에 붉은 기와를 얹어서 행랑처럼 만들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비를 맞지 않게 한 다리의 천장에는 루체른의 역사와 수호성인을 그린 17세기의 판화 147개를 장식해서 마치 전시회장 같다. 1993년 화재로 카펠교가 불에 탈 때 판화도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이듬해 전면 복원됐다. 붉은색 고깔을 쓴 것 같은 목제 다리가 구부러진 중간쯤에 있는 팔각형의 저수 탑은 예전에는 망을 보던 망루였다고 한다.

카펠교

강 오른쪽 언덕에 있는 구시가지는 14세기에 쌓은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고, 성안에는 9개의 저수 탑과 광장, 역사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시청사, 암린하우스, 장크트 페터 성당, 8세기 대성당이자 장크트 레오데거 대교회인 호프트키르헤, 마리아 힐프 성당과 중세의 주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강 왼쪽에는 루체른 주 청사, 의사당 등이 있다. 특히 스위스에서 가톨릭 성지순례 코스로 꼽히는 루체른 호프 성당은 스위스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문화재인데, 르네상스식 건물인 성당과 파이프 오르간, 성모마리아 제단이 유명하다.

루체른역

그러나 루체른에서는 중앙역에서 카펠교 건너 호프 교회 북쪽 작은 호수공원 건너편 바위벽에 음각한 ‘빈사(瀕死)의 사자상(Löwendenkmal)’을 빼놓을 수 없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인 1821년 덴마크의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드젠(Torwaldsen)이 루체른 출신 용병대장 칼 폴(Karl Pole) 장군의 고향인 루체른의 암벽에 새긴 사자상은 부러진 창에 어깨가 찔린 커다란 수사자가 머리를 수그린 채 앞발로는 백합 문양의 방패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다. 백합은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문양이다.

식수대

사자 조각상은 조각 자체도 매우 훌륭하지만, 가난하고 불쌍했던 스위스인들의 고달팠던 옛날을 고스란히 보여주어서 스위스인은 물론 많은 여행객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지금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나라 중 하나이지만, 18세기까지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대로서 부존자원이 없는 가난한 나라였다. 종교개혁의 열풍 속에서도 가톨릭을 옹호하여 로마 교황청의 신뢰를 얻은 스위스인들은 1506년부터 로마 교황청의 경호를 맡았다.

호프성당

1527년 에스파냐 군대가 로마 교황청을 공격할 때, 스위스 용병 189명 중 147명이 전사하면서 교황 클레멘트 7세를 도피시켰다. 또, 나폴레옹이 로마를 침략하던 1798년에도 교황 피우스 6세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혁명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프랑스군 수비대가 모두 도망하고 스위스 용병들만 남게 되자, 혁명군은 용병에게는 책임이 없으니 퇴각하라며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지금 도망가면 우리의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만, 앞으로 우리 후손들은 신의 없는 사람들이라 하여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용병으로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끝까지 싸우다가 786명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구시가지 프레스코 벽화

이처럼 빈사의 사자상은 용감한 스위스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의무를 지킨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스위스 용병의 신의와 용기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황청을 지키는 계기가 되었다. 스위스 용병은 어쩌면 부존자원이 없던 우리가 1960년대 파독 광부나 베트남전 파병, 그리고 1970년대 중동개발 붐을 탄 근로자들의 해외 취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고, 또 2000년대 이후 한국인들이 꺼리는 이른바 3D업종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취업하려고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제3국인의 신세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