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바꾼 현장들] ③ 대전 스쿨존 음주운전 사망사고
시설 설비만이 정답은 아니다
음주차량에 치여 숨진 아홉살 배승아 양
사고 당시 방호울타리 등 안전시설 없어
방호울타리·노란횡단보도 등 설치했지만
불법 주정차 등 안전의식은 여전히 부재
대전시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아홉 살의 고(故) 배승아 양이 학교 인근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난 뒤 스쿨존마저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이후 통학로는 방호울타리와 노란 횡단보도가 하나둘 갖춰지며 비교적 안전한 공간으로 구축되고 있다. 그러나 시설 설비만이 정답은 아니다. 스쿨존에서 발생하는 사고 대부분 원인은 불법 주정차 등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린이를 위한 곳에선 불편하더라도 어른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1. 비틀거리는 만취 차량
‘끼이익.’
2023년 4월 8일 오후 2시경 대전 서구 둔산동의 한 중학교 앞. 정규 수업이 없는 토요일 오후 인도에 행인은 거의 없었고 좌판을 정리하는 상인과 초등학생 4명 정도가 있었다. 평화롭기만 하던 주말 오후는 비틀거리는 하얀 차량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악몽으로 바뀌었다.
차량 한 대가 정적을 깨고 등장해 내달리듯 반대편 차선으로 급작스럽게 방향을 틀더니 이내 길 건너 보행로를 덮쳤다. 자동차 바퀴가 내는 커다란 마찰음과 이후 들려온 커다란 충돌 소리에 깜짝 놀란 행인과 상인이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몇몇 행인이 단숨에 차량 쪽으로 달려갔지만 현장은 참혹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운전자 A(66) 씨는 음주 상태에서 핸들을 잡았고 그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08%. 면허취소 수준. 경찰 조사 결과 A 씨는 낮 12시 30분경 대전 중구 유천동에서 지인과 모임을 가지며 술을 마셨고 유천동에서 둔산동 사고 지점까지 약 7~8㎞가량 운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주 반 병이었다.” 그는 그 말만 되풀이했다.
#2. 4명의 초등학생
같은 시각. 초등학생 4명이 중학교 운동장 펜스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는 차도를 끼고 걷고 있었다. 나란히 걸으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은 학용품을 사러 가던 참이었다. 그리고 불과 몇 걸음 후 아이들의 들뜬 움직임은 갑자기 등장한 하얀 차량으로 인해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배승아 양은 그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사고 당시 함께 있던 초등학생 3명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차량을 향하는 노란신호기와 30㎞ 제한 속도 표지판이 곳곳에 설치된 그곳은 스쿨존이었다. 그러나 차량 통행이 많은 4차선 도로가 있는 곳이었음에도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중앙분리대나 방호울타리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스쿨존은 당연히 안전할 줄 알았다.”
“어떻게 차량이 인도로….”
사고 이후 현장에는 추모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모객은 대낮 스쿨존 한복판에서 벌어진 참변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3. 1년이 지났다
지난 25일 오후 6시 다시 찾은 사고 현장은 퇴근하는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였다. 노면은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큼직한 글자와 함께 붉은색으로 도색됐고 횡단보도는 노란색으로 칠해져 먼 발치에서도 눈에 띄었다. 시설 정비도 이뤄졌다. 차도와 인도 사이에는 방호울타리가 들어섰고 4차선 도로에는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었다. 아홉 살 소녀의 안타까운 사고 이후 스쿨존에 대한 안전시설 정비가 시작된 것이다. 시에 따르면 관내 스쿨존은 모두 458곳이고 이 중 77곳(20㎞)을 대상으로 방호울타리가 설치 중이다.
시 관계자는 “승아 양 사망사고 이후 스쿨존 개선을 위한 예산이 교부되면서 자치구에서 방호울타리를 설치하고 있다. 방호울타리 구간을 연장하거나 방호울타리가 없었던 곳을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이와 별도로 매년 24억 원 규모로 스쿨존 내 안전시설을 설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에 설치된 태양광 속도표지판이 작동하지 않는 곳도 있었다. 스쿨존 내 불법 주정차 차량도 여전했다.
#4. 가장 필요한 건
전문가는 스쿨존 시설 정비·개선 이후 지속적인 관리는 중요한 사안이다. 스쿨존 내 차량 속도 저감을 유도하는 에폭시 바닥시공이 대표적이다. 에폭시는 포장면의 미끄럼 저항력을 높여 주지만 주기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오히려 더욱 미끄러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이고 더불어 아이들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한다.
박상권 한국교통안전공단 수석위원은 “에폭시 바닥시공은 지속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이와 함께 끊임없는 관심도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시니어 통학안전도우미가 아이의 안전한 등하교를 돕고 가까운 일본은 상급 학생이 저학년과 함께 등하교한다. 그만큼 안전한 스쿨존을 만들기 위해서는 통학로 환경을 고려한 시설 정비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 모두의 관심과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스쿨존 내 어른의 배려가 필요할 때다”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kjh010@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