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칼럼-길을 걷다] 사회를 지탱해주는 힘, ‘극한직업’

2024-08-12     금강일보
▲ 멸치잡이 선단. 사진=연합뉴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세일즈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은 예외겠지만 대부분 교류의 범위는 자신의 생업과 관련되어 상대적으로 제한된 영역에 머물기 쉽다. 대학에서 30여 년 봉직한 필자로서는 강의실과 연구실을 오가는 세월 동안 관심과 교유의 반경이 협소했음을 새삼 느낀다. 이 넓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누가 어느 분야에서 어떤 전문성으로 경륜을 쌓아 가는지 궁금했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하여 알아볼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EBS TV ‘극한직업’이라는 프로그램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사회 각 분야 특히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강도의 활동과 집중력 그리고 남다른 기술, 특히 인내심이 요구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생업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본방송과 여러 케이블 TV 채널로 반복되는 재방송까지 즐겨보고 있다. 오랜 기간 방송이 지속되다 보니 소재와 기획력 고갈 때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극한’ 직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직종과 작업장을 소개하면서 피상적인 업무 공정과 제품 설명에 그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생각 밖의 직종에서 헌신하며 노고를 아끼지 않는 분들의 힘든 일상에 감사한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그간 방송목록 가운데 그야말로 고도의 기술과 초인적인 노력이 필요한 영역이 여럿 있어 더 눈여겨 보았다. 화상병동, 홍어 잡이, 천일염전, 머구리, 수지접합병원, 긴급수해복구현장, 대동맥 응급수술팀, 쇳물주조공장, 수직발파 등 이름만 들어도 작업의 어려움이 떠오르는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는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심정(深井)중대’라는 군 특수조직의 존재도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시추대대 소속 중대인데 문자 그대로 물이 부족한 각 부대에 급수를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한해에 8개월, 시추기계와 어마어마한 장비를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물을 뚫는 일을 한다. 150dB에 가까운 소음과 흙먼지, 제대로 공급되기 어려운 급식 그리고 격, 오지 체류로 인한 심신의 고달픔이 화면 곳곳에 묻어났다. 통상적으로 대위가 맡는 중대장을 소령으로 보임하는 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조직인데 방송 내내 울려 퍼진 시추기 굉음에서 이분들의 노고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생업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는다. 말하자면 모든 직업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의 ‘극한직업’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특히 3D업종 기피현상이 나날이 심화되면서 고단하고 집중력이 필요한 직업, 번듯한 외양과 쾌적한 작업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직종 지망자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즈음이다 보니 특히 인구감소, 인력난 추세와 맞물려 지금까지 노동집약적으로 형성되어온 우리 사회 발전의 저변이 뿌리째 흔들린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AI, 로봇 등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에는 누군가 인력이 투입되어 어려운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노고로 세상이 조화롭게 움직여 간다면 향후 인력 재배치, 특히 어려운 직역에 대하여 특단의 배려와 혜택을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대표적인 ‘민생’ 의제인 이런 책무를 짊어진 입법기관과 정치권에서는 여기에는 눈 돌리지 않고 또 다른 차원의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그들도 ‘극한직업’ 대열의 말석을 차지하고 싶어서 고성과 욕설, 몸싸움, 비방과 고소고발 같은 극한, 극렬행동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부디 국민의 일상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극한직업 종사자들의 땀과 헌신에 관심을 가져보기 바란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