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경태의 문학산책] 백곡 김득신의 독서와 문학세계
문화 칼럼니스트·문학박사
어느덧 맹위를 떨치던 가마솥더위도 가을바람에 시나브로 사라지고 독서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 본고는 독서의 계절을 맞이하여 온전하게 독서의 가치를 보여준 참된 지식인이며 우리 대한민국 역사에서 길이 빛날 독서의 왕으로 추앙되는 자랑스러운 충청인 김득신의 독서와 문학세계를 산책하고자 한다.
◆독서왕 김득신의 생애
김득신은 1604년(선조 37년) 10월 18일 부친 남봉 김치와 사천 목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니까 임진왜란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의 손자이자 경상도 관찰사와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김치의 아들이다. 자는 자공, 호는 백곡·백곡노인·괴강노옹·귀석산인 등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그는 어린 시절 태몽에 노자(노담)가 나타났다고 하여 몽담이라 불리며 대학자로 성장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아둔한 아이가 되었다. 10세가 되어 겨우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첫 단락이 26자에 불과한 ‘십구사략’을 사흘 동안 배우고도 읽지 못했다. 또 글을 배운 이후에도 책을 석 달 내내 읽어도 첫 구절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이런 김득신을 놀리는 주변의 조롱과 수군거림에도 아버지 김치는 언제나 아들의 편이었다. “학문의 성취가 늦다고 성공하지 말란 법이 없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대문장가가 될 것이다.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라.”라며 느리고 아둔한 아들을 나무라거나 질책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믿고 다독이며 격려했다.
김득신은 이런 아버지에 보답하고자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책을 잡으면 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며 정진하였다.
예부터 독서백편의자현이라 했는데, 김득신의 시문집인 백곡집 ‘독수기’에 의하면 김득신이 1만 번 이상 읽은 책은 사기 백이전이 11만 3000번, 노자전이 2만 번, 중용 서문이 1만 8000번 등 모두 36편이 있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서량이다. 이에 다산 정약용은 그의 ‘여유당전서’에서 "문자가 만들어진 이래 종횡으로 수천 년과 3만 리를 다 뒤져도 대단한 독서가는 김득신이 으뜸"이라며 김득신을 독서왕으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김득신은 과거에서 낙방을 거듭했고 39세에 겨우 진사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쉼 없는 도전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59세에 증광시에 급제하고 당대를 대표하는 명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시 1588수와 산문 182편이 실린 ‘백곡집’과 시 비평집 ‘종남총지’ 등의 저서를 남기며 대기만성의 인간승리를 보여주었다.
◆괴산 취묵당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산 4번지에 자리한 취묵당은 1662년(현종 3)에 백곡 김득신이 59세에 독서재로 짓고 이곳에서 책을 읽고 시를 지으면서 만년을 보낸 곳이다. 백곡이 이곳에서 사기의 백이전을 11만 3000번을 읽었다고 하여 일명 억만재라고도 불린다.
괴산군지에 의하면 “취묵당 안에 백곡 김득신이 쓴 취묵당이라는 현판과 후손 김교현이 쓴 억만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라고 했으나 아쉽게도 현재는 그 어느 것도 걸려 있지 않은 상태이다.
다만 취묵당 앞에는 아름다운 괴강이 말없이 사시사철 변화하며 흐르고, 한국 정자 건축의 전형적인 미를 보여주는 취묵당 안에는 중건기와 이곳을 소재로 한 각종 시문을 새긴 13개의 액자가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줄 뿐이다. 또 괴강 쪽 네 개의 기둥에는 당시 왕이었던 효종이 “당나라 시에 넣어도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평하며 이 아름다움을 병풍에 담으라고 명한 백곡의 대표 시 ‘龍湖(용호)’가 양각으로 주련되어 감동을 전하고 있다.
古木寒雲裏: 차가운 구름 속 고목
秋山白雨邊: 가을 산에는 비가 내린다
暮江風浪起: 저문 강바람에 물결 일어
漁子急回船: 어부는 급히 배를 돌린다
-김득신, 용호 한시 전문
◆김득신 문학공원과 묘소
독서왕 김득신은 충청북도 증평에서 태어나 증평에서 성장하고 증평읍 율리 밤티마을 좌구산 자락 아래에 영면해 있다.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율리 산8-1에 자리한 김득신 묘역에 이르면 먼저 조그마한 규모로 조성된 김득신 문학공원이 눈에 띈다. 공원에는 김득신에 관한 일화와 후대의 평가 등을 간단하게 소개해 놓은 조형물과 이곳을 찾는 참배객들이 잠시 쉬면서 백곡의 일화나 독서 토론을 할 수 있는 팔각 정자가 있다.
특히 조형물의 기록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마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 데 달려 있을 따름이다."라는 김득신의 묘비명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또 묘소와 공원 사이에는 김득신의 살아생전 삶을 회상이라도 하듯 밤티골을 소재로 한 ‘栗峽(밤티골)’이라는 칠언율시의 한시가 좌구산의 모형을 한 시비로 세워져 이목을 끌고 있다.
김득신의 묘역에는 위부터 ‘아버지 김치와 어머니 사천 목씨- 김득신과 부인 경주 김씨- 아들 김천주와 며느리 문화 류씨’ 이렇게 3대의 묘가 부인들과 함께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김득신 문학길과 시비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율리에 위치한 삼기저수지 주변에는 김득신에 얽힌 스토리가 즐비하다. 그런데 여기에 김득신의 인생 스토리를 가미한 조형물 건립과 함께 김득신 문학길과 시비까지 조성하여 삼기저수지는 독서와 산책과 명상의 메카가 되었다.
삼기저수지 주변으로는 중계탑이 있는 두타산과 한남금북정맥에서 가장 높은 좌구산이 있다. 두타산은 백곡이 한시의 소재로 활용한 바로 그 산이고, 좌구산은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김득신의 아버지 김치가 죽을 뻔한 위기가 있었을 때 좌구산에서 개가 크게 짖어 위기를 면한 후 개 구(狗)를 쓰기도 한단다. 또 저수지 양옆으로는 귀석산과 구석산 능선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김득신이 만년에 ‘귀석산인’이라는 호를 사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삼기저수지 산책길에는 백곡 김득신이 저수지 쪽을 향해 앉아서 백이전을 독서하는 모습의 조형물이 있는 김득신 쉼터 등을 곳곳에 조성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독서왕 김득신에 대한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또 백곡 김득신이 이곳 출신임에 착안하여 산책길 옆에는 ‘頭陀寺(두타사)’, ‘票峽道中(밤티골 가는 길에)’, ‘向頭陀馬上有餐(두타 향하는 말 위에서 시구를 얻다)’ 등 이곳 고향을 소재로 한 한시 시비가 세 개씩이나 건립돼 문학의 장까지 펼쳐 놓았다.
조선 중기 한문 사대가로 불렸던 택당 이식이 백곡 김득신의 시를 보고 "그대의 시문이 당대 제일"이라고 평했다. 이로써 김득신의 이름과 시가 세상에 크게 알려졌고,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독서가로 자리매김했다.
◆독서왕 김득신문학관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송산리의 증평 군립도서관 옆에 ‘독서왕 김득신문학관’을 2019년 12월에 개관했다. 이곳 증평 출신으로 조선 중기 최고의 시인이자 독서왕인 김득신의 생애와 문학을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함이다.
독서왕 김득신문학관 앞에 새롭게 세워진 억만재 안에 걸려 있는 ‘억만재기’에 의하면 “증평의 지명은 삼기천의 옛 이름인 증자천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증자는 스승 공자로부터 노둔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학문에 힘써 결국에는 공자, 안자, 자사, 맹자와 함께 동양 오성으로 추앙받았다. 백곡 김득신 또한 어릴 적 천연두를 앓아 아둔했지만, 끊임없는 독서와 노력으로 결국에는 59세에 대과에 급제하는 대기만성의 이룸이 있었다”라고 하여 백곡을 증자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또한, 조선 시대 독서왕 김득신은 이곳에서 귀엽고 재치 있는 현대적인 캐릭터로 다시 살아나 사랑받고 있다. 독서왕답게 책을 머리에 이고 안경을 낀 재미있는 포즈와 유쾌한 팔자 수염 등이 친근감을 준다. 독서왕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조선 시대 김득신이 이곳에서 존경과 사랑의 대상으로 거듭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부디 이러한 시도가 전국적으로 널리 확산하여 독서 붐에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
이제 백곡 김득신 그가 그랬던 것처럼 나의 꿈을 향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야겠다. 조금 느릴지라도 훗날 후회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책을 통해 그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임을 확인하면서… 그리고, 이 가을에는 독서에 매진하여 마음의 양식을 가득 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