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姓)·입향성씨(入鄕性氏) 10 )금산김씨(錦山金氏) ⑨

김 감, 병자호란 의병장으로 큰 활약

2012-11-23     김진우

지난 1370년(공민왕 19) 문과(文科)에 급제한 김지(金摯)는 김광유(金光宥)의 증손(曾孫)으로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를 거쳐 사의대부(司義大夫)로 좌사간(左司諫,정3품)을 지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開國)하자 태종(太宗)이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품계)로 예조 참판(禮曹參判,종2품 차관)을 제수(除授)해 그를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충절을 지켰다.

선조11년에 문과(文科:대과로 3년마다 초시, 복시, 전시3단계로 실시함)에 급제한 김희옹(金希雍)은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정2품 서울특별시장)과 이조판서(吏曹判書:정2품 장관)를 지냈다.

김감(金鑑)은 김광유의 11세손으로 광해군 때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정랑(禮曹正郞:정5품)을 거쳐 성절사(聖節使:중국황제의 생일 축하사신)의 서장관(정, 부사를 수행해 기록을 맡은 임시직)이 돼 명나라에 다녀와, 이조참의(吏曹參議:정3품 차관보)를 역임한 후 1636년(인조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곡성지역에서 의병장으로 아들 김남식(金南植), 김남억(金南億)형제와 함께 큰 활약을 했다.

그외 인물로는 김남억의 6세손으로 병조참판(兵曹參判:종2품 국방차관)을 지낸 김언장(彦章)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왕명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하던 중추부의 2품) 김언태(金彦兌), 좌승지(左承旨:승정원의 정3품) 김언익(金彦翊)이 유명했고, 김언익의 아들 김의흥(金義興)은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종2품 서울특별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해 부호군(副護軍:종4품)을 지낸 김평(金平),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정3품) 김대휘(金大輝), 김인해(金仁海)등과 함께 금산가문을 빛냈다.

[계 파]
도사공파(都事公派:도사는5품):고부, 도제공파(都制公派):장수 남해 진주, 사간공파(司諫公派:사간은 정3품):금산, 사인공파(舍人公派:사인은 정4품): 창녕, 상호군파(上護軍派:상호군은 정3품):회령, 생원공파(生員公派:생원은 사마시에 급제한 선비): 곡성, 진사공파(進士公派:진사는 사마시에 급제한 선비): 산청, 청백리공파(淸白吏公派): 동래 영산 영광 교리공파(校理公派:교리는 홍문관 등의 5품):곡성, 남원 임실 등이다.

청백리로 유명했던 9세 김희옹 묘소-전남 영광군 영광읍 연성리 소재
황풍리 소재 김지묘소와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