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승리의 함성

[광복 80주년 독립운동의 심장 독립기념관에 서서]

2025-01-01     이재영 기자

 

독립기념관 상징 겨레의 탑 지나니
일제 탄압의 순간과 실상부터 
‘독립만세’의 함성·목소리까지

독립기념관, 누군가에게는 가까우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먼 곳이다. 그저 책장 속 흑백사진처럼 느껴지는 독립이라는 단어. 손끝으로 만져볼 수 없는 시간 속에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물과 한숨이 깃들어 있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처럼 광복 후 8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고난과 감동은 상상하려야 할 수가 없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에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전시관 속 낡은 사진 한 장, 바래진 편지 한 장에도 그들의 숨결이 살아있다. 독립운동가들의 굳은 의지가 담긴 유물들을 바라보면 가슴 한켠이 먹먹해진다. 이곳은 단순한 박물관이 아니다.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혼이 깃든 공간이다. 전시실마다 울려 퍼지는 애국가 소리, 독립선언서의 힘찬 글자들, 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쓸쓸한 뒷모습까지.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시간은 흘러갔지만 이곳에서는 여전히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이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독립기념관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희생을 가슴에 새기며 잠시나마 그들과 같은 시간 속을 걸어보고 싶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이곳에 있다.

◆겨레의 탑을 지나면

해가 중천에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기차와 택시를 거쳐 도착한 독립기념관은 천안 흑성산 아래에서 자리하고 있었다. 많은 곳 중 천안이 독립기념관의 부지로 선택된 이유로는 교통이 편리한 위치이기에 선정됐다고 한다. 다만 동쪽의 병천면에 유관순 열사가 참여했던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가 있는 것을 물론 이동녕, 조병옥 등 여러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장소라는 이유가 더 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머릿 속에 스쳤다.

여하튼 드넓은 벌판 한 가운데 들어서면 겨레의 탑이 우람하게 서있다. 독립기념관의 상징답게 높이며 크기며 자태며 그 위엄이 차마 끝까지 올려다볼 수 없을 정도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비상하는 한민족의 기상과 자주, 독립, 통일과 번영에의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의미가 절로 납득이 된다.

그렇게 겨레의 탑을 지나면 새파란 지붕을 한 겨레의 집이 이곳을 찾은 이들을 반긴다.

여기에 열사들의 독립정신과 굳센 한국인상을 표현한 불굴의 한국인상은 아무 말 없이 겨레의 집 입구를 지키고 있다. 동상 군데군데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일부 색이 바래지는 등 곱진 않았다. 그러나 동상이 가리키고 있던 것은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았으리라.

겨레의 큰마당을 지나 도착한 제1전시관에는 약 50만 년전 선조들이 사용했던 주먹도끼부터 조선시대의 앙부일구까지 1860년 이전까지의 민족사의 뿌리와 문화가 고이 전시돼 있다. 독립기념관을 찾은 노부부부터 군인들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주먹도끼와 같은 익숙한 도구와 여러 역사적 사건을 둘러보며 말이다.

◆절망의 순간

이어 들어간 제2전시관에서는 우리 민족에 다가온 시련이 펼쳐져 있다. 19세기 동아시아가 서양 열걍에 의해 개항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는 잊을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됐다.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많은 침략과 더불어 불법 조약 체결을 강요하면서 한국은 결국 1910년에는 나라를 잃었다. 그 과정과 결과가 제2전시관 ‘겨레의 시련’에 빼곡이 담겨있다.

강화도조약으로 널리 알려진 조일수호조규, 우리나라 식민지화의 서막을 알린 한일의정서 등에 담긴 치욕은 물론 을사늑약 체결의 순간 찍힌 흑백사진까지 수많은 좌절의 순간이 전시관 곳곳에 배치돼 있다.

제1전시관에서 수다스럽던 이들은 어느새 생각에 잠겨있다. 모두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독립운동가들이 태극기와 함께 만세삼창을 부른 후 순사둘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그러나 알지 못했다. 이리도 모진 고문을 당했을 줄은 말이다.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못상자 등의 고문기구와 고문방법은 가히 경악할 만하다.

‘고문이 시작되면 일단 천장에 매달아 놓고 때리기 시작한다. 불로 담금질 하기를 8시간이나 지속하고 자백을 하지 않자 산에 끌고 가 소나무에 매어놓고 칼로 위협하기도 했다.’ 조선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독립운동가 최제우는 이러한 고문을 겪었다.

더욱이 ‘감옥의 고통은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이 더욱 심하니, 여름에는 감방에서 수인들의 호흡과 땀이 증기가 발생해 서로 얼굴을 분간 못하게 된다. 가스에서 불이 나서 수인들이 질식이 되면 방안으로 무소대를 들어 쏘아 진화하고 질식된 자는 얼음으로 찜질해 살리는데 죽는 것도 여러번 보았다’고 회고한 백범 김구 선생의 글도 적혀 있다.

그런가 하면 정체불명의 약물을 코 안에 넣고 가슴에 주사를 놓기도 하는 등 온갖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탄압이 이뤄졌던 듯하다. 특히 강제징용과 더불어 당시 일본군위안부에 동원된 이들을 나타낸 모형 중 여럿은 성장이 채 끝나기도 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마 입으로도 읊기도, 이렇게 글로 새기기에도 고통스럽다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다. 이렇게 재현된 일제의 만행은 오늘날 들어서 많이 순화된 채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더한 고문도 이뤄졌을 것이라는 점이 마음을 짓누른다.

이외에도 일제가 수탈해간 곡식과 일반 가정집에서 쓰던 놋그릇, 솥뚜겅, 수저 등 철광석이란 철광석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쓰일 군수품을 위해 사람은 물론 손에 들 수 있는 것들이라면 보이는 대로 족족 쓸어갔던 모양이다. 여기에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조차 차별적이었다’고 쓰여진 글이 일제 탄압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승리의 함성

제3전시관 겨레의함성에서는 1919년 3월 1일 일어난 3·1운동의 흔적과 독립운동가들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열망이 가득하다. 발을 딛는 곳마다 역사의 순간 속에 들어와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라는 3.1독립선언서를 중심으로 한 소년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 등 일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 전시관 안에 울려 퍼졌다. 내가 밟고 있는 지금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요, 그토록 염원하던 단 두 글자를 외쳤던 장소라 생각하니 괜시리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렇게 독립이라는 진정한 의미를 곱씹은 채 정신없이 걷다 보면 국내외 각지에서 전개된 항일무장투쟁과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관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다. 그 당시 일제에게 총을 겨누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독립군의 모습이 생생히 전시돼 있다. 비록 그림과 모형일지라도 세상을 끌어안을듯한 승리의 함성이 들리기도 한다.

타국에서 움직였던 독립운동가들의 노력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제6전시관에서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새롭게 세워진 임정의 역사가 이어진다. 상하이부터 충칭까지, 의열투쟁부터 외교활동까지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뛰어다닌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묵, 아우들과 빌렘 신부에게 유언을 남기는 장면을 머릿 속에 되새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그가 남긴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의 정신은 아직까지도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광복 80주년인 오늘날에도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이렇게 독립기념관의 전시관만 돌아도 해는 뉘엿뉘엿 떨어진다. 겨울 햇살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동안 전시관 외부에 위치한 통일염원의 동산을 바라본다. 그곳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가슴 깊은 곳을 울린다. 조선총독부 잔해 앞에 서면 부서진 돌벽 하나하나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속삭인다. 하루는 너무나 짧다. 이곳의 모든 이야기를 듣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강물처럼 깊고도 길다. 전시관을 지나며 마주치는 모든 것에 그들의 절절한 염원이 살아 숨쉰다. 해질녘, 독립기념관의 창문으로 스며드는 붉은 노을은 마치 그날의 함성을 담은 듯하다. 이곳에서 우리는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그들의 꿈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늘도, 이 길고도 깊은 이야기 속을 걸어간다.

겨레의 집 가운데 불굴의 한국인 상이 전시돼 있다.
정미조약과 한일의정서 등이 전시돼 있다.
을사늑약 체결 당시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일제 시절 강제 동원된 아이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안중근 의사가 유언을 남기고 있는 모습이 전시돼 있다.
3·1 독립선언서가 전시돼 있다.
안중근의사의 유묵이 쓰여있다.

글·사진=이재영 기자 now@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