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이이김김] 넓고 넓은 세상, 쉬운 일은 없다

2025-02-09     이준섭 기자

차가운 새벽공기가 내 마음을 적시는 순간, 그들의 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신문 한 장에 담긴 수많은 희망처럼 이른 아침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숨결을 만났다. 도시가 깨어나기 전 그들의 소리 없는 발자국을 따라가본다.

새벽을 달리는 신문배달
속속들이 지국에 도착하는 신문들
분주한 손길로 배송지별 분류 거쳐
고요한 새벽, 집집마다 배달하는건
누군가의 아침을 여는 소소한 행복

▲ 자정에 가까워질 때쯤 금강일보 신문이 지국으로 배송되고 있다.

왜 하필 폭설이 내리는 날이었을까. 후회가 막심하다. 전날 모 편집국장님과의 거한 음주로 인한 숙취는 신문배달할 시간이 다가올 때까지 쉬 풀리지도 않고 졸음만 쏟아진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결국 그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내디뎌 도착한 대전 서구 탄방동의 신문유통원 대전둔산센터. 맡은 구역은 탄방동과 둔산동이란다. 밤 11시 30분 줄기차게 내리던 함박눈이 멈추고 달빛이 어깨를 토닥인다. 달빛의 위로에 마음이 놓이던 순간을 못 참고 그 사이 각 신문사에서 인쇄된 신문들이 속속 지국으로 도착했다. 분주한 손길로 신문별 분류작업이 시작됐다. 신문은 짐칸에 넣는 순서, 접는 방향까지 모두 정해져 있다. 동선과 그에 따른 배달 신문 종류 등을 고려한 방식이다. 곧 도착할 배달원들이 각자 담당하는 부수만큼 챙겨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리된 신문들은 각 배송지별 부스로 옮겨져 그들의 손에 맡겨진다.

신문배달 체험에 나선 기자가 금강일보 신문을 배송지에 맞춰 분류하고 있다.

드디어 신문배달이 시작됐다. 폭설이 내린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은 마치 별처럼 길을 밝혀준다. 오늘은 신문배달부가 돼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만난다. “이 시간이 참 좋아요. 세상이 조용할 때….” 배달원 아저씨의 말씀이 가슴을 적신다. 눈 내린 대전의 새벽,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그의 주름진 손등에서 읽히는 삶의 무게는 새벽 공기보다, 눈보라보다 더 차갑게 다가온다. 이 작은 대화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다.

둔산동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길. 오토바이 바퀴 소리가 심장 소리와 섞인다. 각 현관 앞에 신문을 놓으며 작은 기도를 올린다. ‘이 종이 한 장이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해주기를.’ 새벽바람이 귓가에 속삭이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작은 희망에 화답한다. 신문을 배달하는 방식은 집마다 제각각이다. 잠긴 여닫이문을 잡고 틈을 만들어 그 사이로 신문을 밀어 넣는 곳이 있는가 하면 대문 안으로 신문을 던져야 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다니다 목마름에 들어간 24시간 카페. 그곳에서 만난 바리스타의 이야기는 특별했다. “새벽에 일하는 사람들은 다들 열정이 넘쳐요. 그게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죠.”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커피 향 가득한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 새벽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눈빛 속에서 피곤함 속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그와의 대화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고 그가 말한 열정은 단순한 일상이 아닌 삶을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

빌라촌을 지나며 만난 금강일보 구독자의 미소는 꽤 오래 가슴에 남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이렇게 신문을 받는 게 하루의 즐거움이에요.” 그의 말에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한다. 새벽배달이 단순한 직업이 아닌 누군가의 하루를 여는 소중한 연결고리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그 미소는 마치 따뜻한 햇살처럼 온몸을 감싸고 돈다. 이 작은 일들이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신문배달 체험에 나선 기자

체험을 마무리하며 돌아보는 대전의 새벽은 특별했다. 어둠 속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그들의 일상이 모여 도시의 아침을 만든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제 동이 트기 시작하고 도시가 깨어난다. 거리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큰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울린다.

신문배달이라는 경험은 기자로서의 소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기자가 해야 할 일임을 깨닫는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만난 따뜻한 마음들이 오늘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대전의 새벽은 말이 없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숨쉰다.

금강일보 신문을 실은 오토바이 배달원이 지국을 떠나고 있다.

오늘 누군가의 아침을 밝히는 작은 빛이 돼 본다. 이 경험이 기사에 담길 때 독자들도 새벽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새벽배달의 시간은 짧았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삶의 진정성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둠을 밝히며 걸었던 그 길에서 진정한 아침의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제 해가 떠오르고 도시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자로서의 발걸음을 이어간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연결은 큰 힘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은 까닭에서다. 이 작은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도 함께다. 오늘의 새벽, 또 다른 시작이 다가오고 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