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2] 248. 대만 신베이 스펀(十分)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5-03-18     금강일보
▲ 철교에서 본 스펀 전경

대만의 최북단 지역인 신베이시(新北市)는 2010년 12월 직할시로 승격되었는데, 경기도가 서울시를 에워싼 것처럼 수도 타이베이시를 둘러싸고 있다. 종래 10시(市). 4진(鎭:읍), 15향(鄕:면)이 모두 29개 구(區)로 개편되었고, 주민은 약 400만 명이다. 그렇지만, 타이베이 서쪽인 단수이강(淡水) 건너편 지역과 신뎬천(新店川) 남쪽은 사실상 타이베이 생활권이다. 신베이에서 관광 필수코스는 ‘예스진지(野十金九)’ 네 군데라고 하는데, 예스진지란 해안가에서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예류 지질공원(野柳地質公園)(자세히는 2025. 3. 12. 예류 지질공원 참조), 천등(天燈) 날리기로 유명한 스펀(十分), 황금 광산으로 알려진 진꽈스(金瓜石), 광산촌의 먹거리 골목이 유명한 지우펀(九份) 등 4곳 지명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철도 위에서 천등 날리는 여행객들

‘스펀’이란 지명은 ‘충분히 만족한다’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1929년 일제강점기에 일본 광산회사가 채굴한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하여 개설한 핑시선(平溪支線) 철도의 약 12㎞ 구간에 대화(大華), 스펀, 완구(萬古), 링자오(嶺脚), 핑시, 징퉁(菁桐) 등 6개의 역을 만들었을 때,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과 광산에 기대고 벌어먹는 주민들이 역 주변에 마을을 이룬 곳이다. 그렇지만, 2차 대전 후 일제가 물러나고 탄광업이 몰락하자, 역 주변의 마을주민들도 하나둘 도시로 떠나자, 대만 정부가 1992년 이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해서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단선인 핑시선 철도는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다.

천등 가격표

스펀까지는 타이베이에서 도시철도와 시내버스로 갈 수 있다. 도시철도는 타이베이 중앙역에서 북회선(北迴線) 철도를 타고 약 1시간가량 가다가 루이팡역(瑞芳車站)에서 핑시선(平溪支線) 열차로 갈아타고, 약 30분 정도 가야 한다. 요금은 68대만달러(한화 약 3000원)이고, 시내버스는 타이베이 MRT 무자역(木柵站)에서 1076번 버스를 타면 스핀까지 직행한다. 우리 가족은 택시 투어로 예류 지질공원을 둘러본 뒤 스핀으로 갔다. 갈대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던 택시가 마을 입구에서 멈춰 섰는데, 이것은 비좁은 마을로 많은 택시가 진입하면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인 것 같다. 무성하게 자란 갈대숲은 이 지역 일대가 바닷가임을 말해준다.

하늘로 날아가는 천등

핑시선 철로는 스펀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가는데, 그 집들은 지금 대부분 천등을 팔거나 먹거리, 기념품 가게들이다. 스펀을 찾은 여행객들은 울긋불긋한 수많은 천등 가게에 놀라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천등에 소원을 비는 문구를 작성하며 천등 날리기에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간다. 한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찾아오는지, 가게마다 온통 한글 간판이어서 마치 국내 어느 관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다.

스펀 폭포

스펀에서 천등의 유래는 옛날 관공서와 멀리 떨어진 이 지역에는 도적 떼가 자주 출몰했는데, 그때마다 주민들은 숲으로 피신했다가 도적 떼가 사라지면 사발통문처럼 안심하고 귀가하라는 의미로 날린 주민들 간에 보내는 신호였다고 한다. 그 천등이 지금은 여행객들이 소원을 빌어 하늘로 날려 보내는 놀이기구가 됐는데, 천등은 청사초롱이나 단지 모양 등 여러 형태이고, 색깔도 단색과 여러 색이 있다. 가격은 형태와 크기에 따라서 150 대만달러에서 250 대만달러 정도여서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한화 5100원~8800원). 가게들이 담합을 했는지 천등 가격이 모두 똑같고, 천등을 사면 먹물과 붓을 제공한다. 그리고 천등에 각자의 소원을 적고 나면 글자를 쓴 먹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또 천등을 날릴 때 그 모습을 카메라나 휴대전화로 찍어주는 서비스도 해준다. 참고로 천등의 색깔은 노란색(금전, 재수), 파랑(사업번창), 보라(취업, 학업), 흰(장래 희망), 주황(사랑, 연애), 보라(사랑, 연애)를 상징한다고 하지만, 천등으 네 면마다 각각 다른 색상지를 이용할 수도 있다. 우리 가족도 천등을 사서 제각각 먹을 묻힌 큰 붓으로 삐뚤빼뚤 각자의 소원을 적자. 가게 주인이 선풍기로 글씨를 말려주고 철도 변에서 하늘에 날리자, 휴대전화로 찍어주었다. 스펀이 천등날리기로 유명하지만, 워낙 관광객이 붐비고 천등이 바람이 불 때를 기다려야 하는 점도 있어서 핑시역에서도 천등 날리기를 하고 있다.

출렁다리

스펀은 100년 전 핑시선 철로가 개통되면서 형성된 마을인데, 그때부터 있었다고 하는 쌀국숫집이 많다. 또, 관광객의 입맛을 자극하는 매콤한 닭 날개살 안에 꼬들꼬들한 볶음밥도 인기다. 우리도 길게 줄을 진 행렬 뒤에 기다리다가 닭 날개를 몇 개 사 먹기도 했다. 또, 석탄 채굴을 위해서 물길을 따라 개설된 핑시선 철도는 ‘철도’, ‘폭포’, ‘탄광 유적’이 “핑시선의 3가지 보물”이라고 하는데, 탄광으로 올라가는 계곡의 폭포는 12m 높이에서 세차게 떨어지면서 햇빛을 받은 물안개가 무지갯빛을 내면 환상적인 풍경을 만든다. 다화역에서 스펀역까지 사이에 철교는 6개의 터널을 통과하는데, 철도 가까이에 있는 정안출렁다리(靜安吊橋)는 여행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핑시선의 6개 역 전부를 둘러보는 젊은이들도 많아서 타이베이나 루이팡 기차역에서 핑시선 1일권을 사면, 하루 동안 핑시선의 어느 역이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고 했지만, 택시 관광에 나선 우리는 천등 날리기와 맛집에서 닭 날개 구이를 사고, 정안 출렁다리까지 다녀본 것이 전부였다. 사실 철로 주변에 서민들의 주택이 밀집해 있고, 철로는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다가 기차가 지나갈 때만 딸랑거리는 신호를 듣고 잠시 피하는 풍경은 일제강점기에 철도 호남선 익산역에서 군산까지 쌀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 부설한 군산시 경암동 철길이 그랬다. 지금 ‘경암동 철길’은 영화촬영지가 되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다.

철교와 열차

이렇듯 폐촌이 된 시골 마을 스펀을 알리기 위해서 후호현(侯孝贤) 감독은 1986년 이곳을 배경으로 영화 ‘연연풍진(戀戀風塵)’을 제작했다. 신수분(辛树芬), 왕정문(王晶文)이 주연한 영화는 이곳 광산촌에서 자란 ‘완’이 15살 되던 해 타이베이로 나가서 인쇄공장에서 일하고, 여자 친구 ‘후엔’도 타이베이로 와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며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완이 영장을 받고 입대한 후 제대할 무렵부터 후엔의 편지가 끊기더니, 완이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후엔은 우체부로 근무하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 하는 격동기의 시골 마을 젊은이의 첫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그린 영화다. 후호현 감독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 이후 1947년 2월 타이베이에서 2‧28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4년 동안 산간 오지마을에서 살던 임씨(林氏) 일가를 주인공으로 하여 대만의 격동과 혼란을 그린 영화 비정성시(非情城市)"로 1989년 제46회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10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한 명감독이다(자세히는 2024. 2. 5. 2.28. 평화 기념공원 참조).

철로변 산책로
땅콩가게와 약재상
기념품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