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파면에 조기 대선…개헌론 셈법 분주

우 의장 “개헌으로 국민통합” 제안 국면전환 절실 국힘도 이재명 압박 李 “필요하지만…내란 종식이 우선” 民 대선 딜레마 개헌론 콘트롤 변수

2025-04-07     이기준 기자
사진 = 국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일단락 되면서 정국은 이제 조기 대선 체제로 접어들었는데 ‘개헌’이라는 거대 담론이 또다시 정국을 뒤흔들 뇌관으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의 치명적 헛발질로 정국 주도권을 쥐고 조기에 정권 재탈환의 기회를 잡았는데 또다시 ‘개헌론’을 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 개헌론을 어떻게 콘트롤하느냐가 정권교체의 마지막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담론
개헌, 즉 헌법을 고치는 일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로 우리 사회에 자리매김 했지만 1987년 9차 개헌 이후 38년간 단 한 차례도 성사되지 못했다.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두 거대 양당의 당리당략에 가로막혀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문재인정부의 경우 집권 초기에 드라이브를 걸어 실제 개헌안까지 내놓고 국회에 논의를 요청했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이 반대해 무산됐다. 국민적 논의와 사회 공론화가 결여됐다는 게 이유였다.

이후 국회에선 의장이 바뀔 때마다 개헌 논의에 시동이 걸리긴 했지만 모두 흐지부지 됐다. 개헌 내용과 절차 등에 있어 이견이 많아서다. 합의 가능한 이슈부터 여야 합의로 개헌을 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역시 여야는 개헌보단 정쟁에 몰두했다. 이런 개헌의 역사가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개헌 요구가 최고조에 달했던 건 2022년 치러진 제20대 대선 과정에서였다. 대선 후보 1위와 2위의 격차가 0.73%p(포인트)에 불과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이 정점에 도달하면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커졌고 윤 전 대통령과 야당의 갈등이 증폭되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해 변화된 시대상과 미래 비전을 담은 새로운 헌법 질서가 필요하다는 게 개헌론의 골자다.

◆우 의장, 개헌 뇌관에 점화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4일 ‘尹 파면’ 헌재 선고 직후인 지난 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조기 대선과 맞물린 개헌을 제안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엿보인 일련의 과정들에서 개헌의 당위성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니 이제는 개헌을 실천으로 옮기자는 게 우 의장의 의견이다. 우 의장은 “극단적 대결 정치를 끝내자는 정치개혁 요구, 국민의 삶을 바꾸는 민주주의를 하자는 사회개혁 요구가 개헌으로 집약되고 있다. 개헌은 지난 4개월, 극심한 갈등과 혼란으로 온 국민이 겪은 고초를 대한민국 대전환의 기회로 바꿔내자는 시대적 요구”라며 시급성과 그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사태는 막았지만 근본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 의장은 개헌 로드맵도 제시했다. 개헌투표를 위한 ‘국민투표법’을 개정하고 국회 내 개헌특위를 구성해 개헌안을 도출 한 뒤 조기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시행하자는 거다. 일단 권력구조 개편을 반드시 하고 기한 내 합의할 수 있는 부분만 개헌안에 담아 1차 개헌을 하고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추가 개헌 내용을 담아 2차 개헌을 하자는 게 우 의장의 제안이다. 우 의장은 그간 많은 논의들이 축적돼 있으니 선택만 하면 될 일이니 의지만 있으면 시한을 넘기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국힘, “이재명은 답하라” 압박
국면 전환이 시급한 국민의힘은 이미 ‘윤 탄핵 정국’에서 개헌론을 띄웠다. 헌재 선고 결과와 관계없이 개헌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다만 개헌의 명분과 지향점이 정략적이라는 점에서 더불어민주당과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7일 열린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개헌 의지를 거듭 드러냈다. 권 위원장은 “낡고 몸에 맞지 않는 87년 체제를 넘어야 한다. 개헌은 대한민국의 국가 시스템을 새롭게 짜는 일이다. 단지 권력구조를 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 만큼이나 국회의 권한도 균형 있게 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반적인 정치인의 화법인데 이 멘트가 도출된 이유, 즉 개헌에 대한 문제인식에 있어선 여전히 적대감의 틀에 갇혀 있다. “이재명이 행정부까지 장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섬뜩할 지경”이라 개헌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헌재도 대화와 타협의 노력을 다하지 않은 야당을 질책했으니 이재명의 민주당이 만들어 놓은, 1987년 개헌 당시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왕적 국회’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개헌안에 담아내겠다는 거다.

◆李, “내란 종식이 먼저”
더불어민주당의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게 됐다. 조기 정권 교체의 판이 깔렸는데 국민적 이슈 선호도가 높은 개헌론이 ‘윤 파면 정국’을 뒤덮고 있어서다. 민주당 입장에선 윤 전 대통령 파면 뒤 ‘내란 종식’이 조기 대선의 구호여야 하는데 국힘은 그렇다치더라도 우 의장이 나서 개헌을 촉구하고 있으니 당장 일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내란 종식이 먼저”라는 논리로 개헌론을 적당히 요리하면서 조기 대선을 치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계엄 요건 강화와 같은 내란 종식‧극복을 당장 중요한 과제로 추진한다면 개헌의 발목을 잡고있는 국민투표법 개정안에 신속히 합의해 개헌을 하는 것엔 일단 동의하고 권력구조 개편안 등 복잡한 주제들에 대한 개헌 논의는 대선 뒤 최대한 신속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를 이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방향성의 기저엔 국힘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 대표는 “개헌, 해야지요”라면서도 “개헌 문제를 가지고 일부 정치 세력들이 논점을 흐리고 내란의 문제를 이 개헌 문제로 덮으려고 하는 시도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국힘과 민주당, 양당이 모두 개헌에 대한 접근법이 다르니 국민적 열망이 담긴 개헌은 다음을 기약해야 할 공산이 큰 상황이다. 이번 대선에서 개헌 관련 공약이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정권을 잡은 쪽에서 개헌론을 띄워도 상대 당은 또 다른 이유를 들어 개헌론을 무산시키는 전례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재로선 중론이다.  

이두영 국민주도상생 개헌행동 공동대표는 “이번 대선에선 개헌국민발안권을 담은 원포인트 개헌안을 국민투표로 실현하고 이후 국민이 참여하는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를 통해 개헌안을 마련,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정한 개헌을 이뤘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