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공회당, 존치의 보존서 ‘활용의 보전’으로 거듭난다
1937년 완공된 현존 유일한 지방 공회당으로 가치 재조명 90년 세월 동안 이름·역할 바꿔가며 도시의 변화상 담아 단순 보존 넘어 시민이 만드는 ‘문화플랫폼’으로 활용해야
1937년 대전부 중심지에 세워진 한 건물이 있다. ‘공회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름과 역할을 바꿔가며 도시의 변화를 품어온 이 건축물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도, 낡았다는 이유도 아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공공집회시설이자 현존하는 유일한 지방 공회당이기 때문이다. 대전공회당은 그 존재만으로도 이 도시가 어떻게 형성됐고, 무엇을 지우고, 어디까지 잊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지난 2일 ㈔도코모모코리아가 주최한 ‘대전 근현대건축유산의 가치발굴과 활용: 첫 대전시청사의 보존가치와 활용’ 학술세미나에서 이 건축물은 단지 과거의 유산을 넘어 도시의 얼굴을 다시 마주하는 장소로 소환됐다. 전문가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대전공회당을 새롭게 해석했다. 건축사·구조기술·도시문화·보존 철학·해외 시민참여 사례까지 서로 다른 관점은 하나의 방향을 향했다. 공통된 인식은 이 건물이 지금 다시 써야 할 도시의 문장이란 점이었다.
◆도시는 어디에 ‘기억’을 남기는가
이날 옛 충남도청사 대강당에서 발표에 나선 고윤수 대전시 문화유산과 유산관리팀장은 ‘1930년대 공회당 건축과 대전공회당’이라는 제목으로 이 건축물의 복합적인 의미를 짚었다. 그는 ‘도시는 스스로의 기억을 어디에 남겨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대전공회당이 단순한 노후 건축물로 치부할 수 없는 도시 정체성과 공공성의 기원을 간직한 상징적 장소라고 했다.
1937년 준공된 대전공회당은 조선총독부 기술자인 사사 게이이치(笹慶一)가 설계한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지어진 마지막 공공집회시설로 평가된다. 경성부민관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유일한 지방 공회당이자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조성된 최초의 도시계획시설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대전 시가지의 방사형 도로축 중심에 놓인 이 건물은 도시 권력의 상징성과 공공건축의 위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말했다.
이 건물은 대전부와 충청남도의 예산, 그리고 대전상공회의소가 주도한 시민 성금이라는 민관 공동 재정으로 세워졌다. 공회당건립준비위원회가 구성돼 상공인과 행정이 함께 설계와 공사에 참여한 사실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협력 방식이었다. 고 팀장은 이 점을 들어 “대전공회당은 식민 권력만의 산물로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지역사회가 함께 빚어낸 공공 공간”이라고 봤다.
건축적으로도 대전공회당은 1930년대 근대건축의 특성을 잘 담고 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 커튼월 형식의 채광창, 대칭적 입면 구성, 단순한 매스 디자인 등은 당시 모더니즘 건축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특히 정면 중앙의 주출입구와 기단부, 상부 코니스 구성은 신고전주의적 요소와 절제된 장식이 혼합된 모습이다. 고 팀장은 “보존은 도시가 자기 얼굴을 다시 바라보는 작업이며 대전공회당은 도시 공간 형성의 기원을 시각화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과거를 남기는 법, 다시 쓰는 법
세미나에는 건축·구조·도시문화·보존 철학·해외 사례를 다룬 발표자들도 참여해 각자의 시각으로 대전공회당을 살펴봤다. 다양한 의견 속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된 점은 이 건물이 과거의 흔적을 넘어 지금 다시 써야 할 도시 이야기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안재철 ㈜상지건축부설연구소 본부장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의 보존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근대 RC조 건축물은 일반 환경에서는 중성화가 곧바로 철근 부식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적절한 조건에서는 부식 자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축유산의 생명은 단순한 연수가 아니라 사회적 수명, 즉 어떻게 관리되고 활용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대전공회당 역시 정확한 열화 평가와 정밀 진단을 거치면 100년 이상 충분히 유지 가능한 구조적 내구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순연 ㈜로바로 대표는 공공건축이 지닌 사회적 역할과 공간의 재구성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보존은 물리적 상태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과 로컬 창작자가 함께 실천을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공회당은 중심성과 장소성, 역사성을 모두 갖춘 공간으로서 로컬 브랜딩과 아카이브 중심의 복합문화 공간으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다고 봤다. 이를 위해서는 민관이 함께 운영하는 지속가능한 구조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카사하라 카즈토 일본 교토공예섬유대 교수는 시민 참여형 보존 사례를 들어 ‘공감 중심 보존’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보존은 단지 건물을 남기는 행위가 아니라 그 공간을 매개로 인간 관계와 공동체를 다시 짜는 일이다. 기술보다 공감, 구조보다 관계가 유산의 지속성을 좌우한다”고 전했다. 교토와 고베 등에서 진행된 모던건축축제는 건물 소유자와 시민이 함께 기획하고 운영한 대표적 사례로 건축을 도시 문화운동의 장으로 확장시킨 계기가 됐다.
이처럼 구조 안정성, 공간 활용성, 공동체 참여라는 서로 다른 관점들이 모였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대전공회당은 지나간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도시가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할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