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독립기념관장,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자리
이준섭 취재2부 차장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의 이름이 처음 언론에 등장한 건 지난해 8월 윤석열정부가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하기 전후였다. 그리고 논란은 거의 예고된 듯 뒤따랐다. “8·15는 광복절이 아니다”라는 과거 발언, 친일 인물 재조명 시도, 독립운동가 후손과 보훈단체의 공개 반발까지 임명 직후부터 수장으로서의 적합성을 묻는 질문은 피할 수 없었다.
독립기념관은 독립운동의 기억을 보존하고 기념하는 공간이다. 그곳은 역사의 무게가 내려앉은 자리이며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기호 중 하나다. 그런 공간의 수장을 누구로 삼을지는 단지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한 국가가 어떤 기억을 품고 누구를 기억의 대표로 세울지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권은 바뀌었다. 대통령도 바뀌었고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역사기관의 운영 정상화를 약속했다. 국정철학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김 관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절차와 임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가능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김 관장이 임명됐을 당시부터 금강일보는 줄곧 그 부적절성을 지적해왔다. 그것은 단지 해석의 문제도, 이념적 시비도 아니었다. 독립기념관장이라는 자리에 요구되는 기준, 곧 공적 기억을 감싸안는 감각과 공동체적 책임감이 그의 언행과 조응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판단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해 8·15 광복절 정부 기념식이 독립기념관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열렸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행사의 장소는 바뀔 수 있지만 그 이유가 관장의 존재와 무관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이미 취임 전에 결정된 사안이었다”는 해명은 행정의 언어일 수는 있으나 기억의 윤리 앞에선 부적절한 회피다. 기념이 사라진 장소에서 상징은 무력해진다.
지난 21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정부가 극우 성향 교육단체와의 유착했다는 문제와 뉴라이트 인사들의 역사기관 장악 논란을 함께 거론됐다. 특정인을 콕 짚지는 않았지만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만둘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 최근 천안시의원들도 정권 교체 이후 처음 김 관장의 자진 사퇴를 공식 요구했다. 지역에서도 물러나라는 목소리가 분명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종찬 광복회장도 “뉴라이트 기관장 스스로 거취를 결단하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후손과 시민사회 역시 같은 요구를 반복하고 있다. 이는 사퇴를 종용하는 게 아니라 공공성의 윤리 앞에서 자리를 내려놓을 줄 아는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 기관의 수장은 법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절차의 정당성만으로는 자리를 지킬 수 없다. 기념은 기능이 아니라 상징이다. 김 관장은 지금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가, 그의 존재는 여전히 공공의 기억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답할 시간은 길지 않다. 판단의 무게는 오롯이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