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칼럼 - 길을 걷다] 우리 이웃나라, 부러운 다른 이웃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2025-07-07     금강일보
▲ 독도. 사진=김창근

54개 나라가 자리 잡은 아프리카 대륙은 대체로 국경선이 직선에 가깝다. 아시아, 유럽대륙에 비해 국경의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게 곧게 뻗어있다. 아프리카 대륙을 식민지배 했던 영국, 프랑스, 벨기에,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포르투갈 같은 유럽 각국들이 이리저리 금을 그어가며 나누어 통치한 흔적인양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한 1960년대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 흔적은 선명하고 강렬하다.

반면 유럽 각국 국경선에서는 중세 이후 좁은 대륙에서 그들이 벌였던 각축과 침략-피침의 역사가 내비친다. 여섯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독일 쪽 국경의 굴곡, 요철이 두드러진다. 1870년 시작된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의 결과 독일 영토가 된 마을, 학교의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그린 알퐁스 도데 단편 「마지막 수업」은 하루아침에 국적이 바뀐 국경인근 주민들의 애환을 보여준다. 프랑스, 독일 접경지역은 두 나라 국기를 준비하고 있다가 여차하면 바꿔달아야 했을 만큼 역사의 부침에 시달려 왔다. 벨기에-네덜란드 국경마을에서는 집 한 채가 각기 다른 나라로 쪼개지는 기이한 풍경도 볼 수 있다. 과거사를 거론하며, 지리적 위치를 주장하며 자기 땅이라고 우길만도 한데 스물 일곱개 나라는 유럽연합을 이루어 나름 협력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잊을만하면 역사왜곡, 망언에 독도영유권 주장을 일삼는 우리 옆 나라 수준을 보기 어렵다.

세계 곳곳에서 영토분쟁, 무력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즈음 유럽이라고 영토 확장 욕심이 없을 수 없겠지만 큰 나라는 큰 나라대로, 작은 나라는 그들 나름으로 현실적인 삶의 질 향상과 국력신장에 주력하니 도발이나 트집은 다른 대륙에 비하여 그리 흔치 않다. 영국과 프랑스는 중세 이래 숱한 전쟁을 치렀고 프랑스와 독일 역시 2차 대전 중 독일이 몇 년간 프랑스를 점령했던 만큼 편한 이웃이 되기 어렵다. 그러나 영국-프랑스는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고 독일-프랑스는 역사교과서를 함께 집필하는 등 현실적인 우의를 증진시켜왔다. 두 나라 청소년들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공동 역사교과서 작업은 그 이전부터 양국 간 진행되었던 관련 협의와 대화의 결실로 볼 수 있다. 그간 형성된 두 나라의 역사인식을 피력하면서도 의견이 대립되는 부분에서는 각국의 입장을 서술하는 등 현실적인 차원의 공동 역사교과서라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 교과서가 본질적으로 ‘유럽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관점과 해석이 일치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각기 입장을 병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대립과 갈등을 겪은 인접국가에서 이루어진 소산물이라는 점 그리고 이후 여러 나라들이 과거사 청산을 위한 효과적인 작업의 마중물로 확산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 중, 일 세 나라의 복잡다단했던 과거사 청산과 진정한 우호선린의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우리에게는 상당히 부러운 대목이다.

고통과 피해, 민족자존심 훼손으로 얼룩진 과거를 정리하고 공존번영의 길로 나아가려면 쌍방향의 열린 자세가 필요한데 일본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광복 이후 끊임없이 반복된 그들의 망언 오만 월권에 제대로 대처, 응징하지 못하고 공허한 외교적 수사 등으로 유야무야 넘어온 결과 갈등과 과제는 증폭되었다.

한일국교 정상화 60년이 되는 올해, 오래전 일왕의 ‘통석(痛惜)의 념(念)’ 운운을 사죄의 표현으로 간주했던 우리의 아전인수, 지나치게 너그러웠던 해석의 대가로 봐야할까.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