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통과된 양곡법·농안법…“생존권 후퇴”

예산 부담에 ‘평년가격’서 ‘생산비 보장’으로 완화 지역 농민들 “자동발동 삭제로 실효성 의문” 반발

2025-08-06     정은한 기자
사진 = 국회 본회의장

쌀과 농산물 가격 폭락의 안전장치로 여겨져온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수정·통과하자 지역 농민들은 생존선이 후퇴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두 법안을 의결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2023년 3월 23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로 개정안의 핵심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수확기의 미곡가격이 평년가격보다 5~8% 이상 하락 시 정부가 자동으로 쌀을 매입(시장격리)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같은 해 11월 9일 국회를 통과한 농안법은 농산물 가격이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가 시장 격리나 수매 등 개입 조치를 ‘자동 발동’하도록 설계된 법이다.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지나친 행정 개입으로 재정 낭비와 가격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두 번째 거부권을 행사했다. 두 법안 모두 국회에서 재의결 요건(재석 2/3 이상 찬성)을 충족하지 못하며 폐기됐고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농민 생존을 외면했다”며 전국적인 대규모 규탄 시위에 나섰다.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법안들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다만, 예산 문제를 고려해 법안 내용을 전면 조정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동의했다. 양곡관리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자동 수매’ 조항은 삭제됐다. 대신 시장 상황이 악화될 경우 정부가 조건부로 수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수매 기준도 ‘평년가격’이 아닌 ‘생산비 보장’으로 조정해 가격 하락 시 농가의 손실을 보호하되 국가 재정이 과도하게 소요되는 것을 막았다. 농안법 역시 ‘자동 발동’이라는 표현 대신, 농산물 가격이 평년 대비 일정 비율 이상 하락하거나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경우로 한정됐다. 이로써 양곡관리법의 재정소요액은 기존 1조 4000억원에서 5000억 원으로, 농안법의 재정소요액도 1조 원 미만을 밑돌 것으로 예상됐다.

농민단체는 당초 입법 목적에서 크게 후퇴했다고 반발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관계자는 “평년가격 기준이 삭제됨으로써 쌀 가격 폭락 시 정부의 수매가격 기준이 모호해졌다”며 “충청권 쌀농가가 가격 하락 위험에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충남 예산의 한 쌀조합 관계자는 “법률에 명확히 정하지 않고 시행령으로 위임하면 결국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농민들이 불이익을 볼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농안법 개정안 역시 비판이 거세다. 충남도연맹 관계자는 “이번 농안법 개정안에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할 경우 정부의 자동 개입 조항이 사라지고 장관의 판단에 따라 조건부로 시행되도록 변경됐다. 시장 격리 조치의 자동성과 신속성을 제거한 것”이라며 “정부는 현장 농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시행령과 예산 편성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정은한 기자 padeuk@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