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산업화·민주화 넘어 국민행복시대로
123개 핵심 국정과제 첫머리는 ‘개헌’ 국민주권 공고히 해 성장의 디딤돌로 공정한 성장 전략으로 혁신경제 견인 행정수도 완성, 5극3특체제 기반 조성
이재명정부의 5년을 규정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윤곽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반영한 핵심 국정과제를 도출한 것인데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이라는 국정비전 속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123개 과제가 포함돼 있다. 이 과제들은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온 경청과 통합, 공정과 신뢰, 실용과 성과의 가치를 실현할 주요 방법론들이기도 하다.
◆국민행복 시대로 도약
국정기획위원회는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보고대회’를 갖고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정부 수립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저력을 기반으로 이제 국민과 공동체의 행복을 실현할 ‘국민행복시대’의 문을 열어가자는 비전을 담고 있다. 국민의 주권 의지를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하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에 기초해 각자도생을 넘어 공존동생의 새로운 성장·발전 패러다임을 만들자는 게 핵심 메시지다. 이 같은 이재명정부의 시대정신을 구체화할 국정 5개년 계획은 5대 국정목표, 23개 추진전략, 123개 국정과제, 564개 실천과제로 집약됐다. 국정기획위는 5개년 계획 중 국민적 관심이 높고 체감효과가 큰 12대 중점 전략과제도 설정했다. 코리아 프리미엄 실현을 통한 코스피 5000시대 개막, AI 3대강국 도약을 통한 ‘모두의 AI시대’, 에너지고속도로를 통한 경제성장 도모 및 탄소중립 달성, 지속·균형성장을 통한 인구위기 극복, 글로벌 소프트파워 5대 문화강국 실현, 자치분권 기반 5극3특 중심 국가균형성장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최고의 가치는 ‘국민주권’
이재명정부 국정과제의 첫 머리는 ‘개헌’이 장식했다. 시대정신 구현을 위한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을 고치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거다. 이는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국민주권 확립의 근간이기도 하다. 개헌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라 현재 우리 헌법은 40년 가까이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고 더욱 급변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이재명정부는 문재인정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개헌안을 마련하기 보단 국민이 직접 참여해 국회와 함께 개헌안을 만들어나가는 방법론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또 개헌과 함께 국방에 대한 민주적·제도적 통제 강화와 검찰·경찰·감사원·인권위 개혁, 사법개혁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친위쿠데타를 비롯한 윤석열정권의 과오에서 발견된 민주주의의 제도적 취약점을 보완하는 작업이다. 검찰경찰개혁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정권에 충성하는 정치검찰의 고리를 끊어내는 게 핵심이다.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법무부의 탈검찰화, 경찰국 폐지,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해 제대로 쓰여지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AI 집중투자 등 혁신경제 견인
이재명정부의 성장 전략은 첨단기술로 도약하되 모두를 위해 공정하고 균형있게 성장하는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이 핵심이다. 더이상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성장은 안 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기업 투자와 규제 개선엔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지만 기업 혼자만 득을 보는 구조적 취약점엔 메스를 대겠다는 거다.
국정기획위는 우선 혁신경제를 이끌 ‘3+1 진짜성장전략’을 제시했다. 기술선도 성장, 모두의 성장, 공정한 성장에 더해 지속가능성장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키워드는 ‘AI-에너지 고속도로’다. 10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와 미래성장펀드를 조성하는 등 AI(인공지능) 산업과 관련한 인프라(GPU·AI데이터센터 등) 투자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이를 뒷받침할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공급 인프라 투자도 획기적으로 늘릴 방침이다. 이와 맞물려 지역균형성장을 통한 국토공간 혁신, 창업·벤처 붐 조성,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 및 소비자주권 강화, 일한 만큼 보상받는 공정한 노동시장 구축 등을 통한 공정한 성장의 기반도 다질 계획이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을 통한 자본시장 불공정 거래 엄단, 공정·상생의 플랫폼 생태계 구축, 한국형 증거개시제도 도입을 통한 중소기업의 소송 입증 부담 완화, 기술 탈취 제재 강화 등이 국정과제에 포함됐다.
◆행정수도·5극3특 균형성장 도모
이재명정부는 5극3특 체제를 구체화 하는 데 균형발전의 방점을 찍었다. 다만 그간 통용돼 온 ‘균형발전’ 대신 ‘균형성장’이라는 용어를 쓴다.
국정기획위는 우리나라는 현재 수도권 초집중과 지역산업의 위기, 인구구조의 급변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같은 위기의 타개책으로 5극3특 체제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여기엔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통한 행정수도(세종) 완성 과제가 포함돼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공공기관 2차 지방이전 등 국민적 바람은 크지만 실행되지 못했던 주요 과제들도 시행할 계획이다. 주민참여 실질화, 자치분권 확대, 지자체 자주재정권 강화를 통한 지역주도 성장 기반 마련 등 문재인정부에서 기반을 다졌지만 윤석열정부에선 시동만 걸고 손도 못 댄 과제들이다. 이재명정부는 지방시대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고 국가균형성장전략회의를 신설하는 한편 지방시대위에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에 대한 사전조정권을 부여하는 등 균형성장 거버넌스를 내실화하고 지특회계 규모 확대, 정부부처 보조금 지특회계 자율계정 이관, 지특회계 초광역권계정 신설 등 지자체 재정분권을 지원하는 과제들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지역 SOC와 R&D 적기 추진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을 상향(500억→1000억 원)하고 R&D사업은 예타에서 제외하는 한편 예타 평가항목에 균형성장 부문을 신설할 방침이다.
지방소멸대응기금 확대, 복수주소제 단계적 도입, 생활권 중심 집약형 도시시범사업 등을 통해 인구소멸위기지역에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준다. 5극3특 체제와 연계해 난립하고 있는 특구를 단계적 정비하고 정부부처 칸막이식 공모사업도 지정공모제·통합플랫폼 방식으로 개선한다.
이 대통령의 지역공약을 구체화하는 데도 속도를 낸다. 이 대통령의 17개 시도별 공약은 광역공약 124개와 시도 연설문을 통한 공약 164개를 비롯해 226개 시군구별 ‘우리동네 공약’ 1260개다. 지역공약은 지방시대위 내 지역공약특위 등을 통해 구체화 된다.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인 기후에너지부 신설 등 정부조직개편은 국정과제에서 제외됐다. 5극3특 체제와 맞물려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을 통한 K-해양강국 건설만 포함됐다. 해수부 이전 문제가 지역 간 갈등을 촉발한 상황에서 정부조직개편이 이슈화되면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유치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같은 분란의 소지를 일단 잠재우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더욱 튼튼해지는 사회안전망
123개 국정과제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5대 국정목표 중 하나인 ‘기본이 튼튼한 사회’ 분야다. 이재명정부는 특히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드는데 집중한다. 국민안전 보장을 위한 재난안전관리체계 확립, 재난 피해 최소화를 위한 예방·대응 강화, 일하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안전한 나라, 안전을 담보한 해양주권 확립 등이 이 분야 주요 과제다.
보건의료 분야에선 보건의료 인프라 지역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 1차의료 기반 건강돌봄,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 등을 추진한다. 지역사회통합돌봄, 발당장애인 국가책임제, 장애인연금 대상 확대, 아동수당 지급 대상 확장(13세), 위기 아동·청소년 지원 강화, 출산·육아지원 확대, 상병수당 도입,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 확대 및 기준 개선, 청년 국민연금보험료 지원, 군복무 크레딧 확대, 출산크레딧 사전 지원 등 복지 기반 확대를 위한 정책들도 이번 계획에 망라됐다.
최근 이 대통령이 주목하는 ‘안전한 일터’ 조성과 관련해선 차별과 배제 없는 일터 조성, 산재보상 국가책임제 등을 추진하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관계법 단계적 적용,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명문화 등도 노동기본권 강화 방안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평화·공존 지향…K-방산 육성
이재명정부 외교안보의 정책기조는 ‘실용주의에 기반한 국익 도모’다. 우선 3축 방어체계 고도화를 통한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독자적 억제력 확보,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방첩사 폐지 및 필수기능 분산·이관, 국방개혁(방비병력 감축, 군구조 및 병과 개편, 예비전력 정예화 등) 등을 추진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받는 강군을 만든다. K-방산 글로벌 4강 도약도 중점 과제다. 범정부적 방산 추출 지원을 강화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통해 안보 자강력을 키운다. 벤처·중소기업 육성과 연구개발(R&D) 확대로 AI·드론·첨단엔진·국방우주 등 방산 첨단전략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무기획득체계도 혁신한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선 정대적 대결 구도에서 화해·협력 기조로 전환한다.
국정기획위는 핵심 공약과 주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5년간 210조 원을 투자하는 재정투자계획도 마련했다. 다만 추가적인 재정 부담 없이 세입 확충(94조 원)과 지출 절감(116조 원)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보고대회에 참석해 향후 국정운영 방향과 관련해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로 갈등과 대립을 넘어 통합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혁신경제를 도모하고 결실을 모두가 나누는 균형성장을 추진하겠다. 국민의 삶을 지키는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구축하고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로 국제무대에서 당당히 국익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정위가 마련한 안을 면밀하고 신속하게 검토해 최대한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다만 “국정위의 기획안은 확정된 정책은 아니다. 앞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국민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 많은 분이 의견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