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2] 272. 튀르키예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5-09-02     금강일보
▲ 파묵칼레는 튀르키예어로 파묵(목화)과 칼레(성)의 합성어로, 온천수의 석회 성분이 쌓여 만들어진 하얀 석회층이 목화로 만든 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튀르키예의 남서부 에게해 연안에서 가장 큰 도시 데니즐리(Denizli)는 데니즐리주의 주도(州都)로서 약 65만 명이 살고 있다. 셀주크 제국 시대의 사원과 분묘들이 있는 고대도시인 데니즐리 북쪽으로 약 20㎞쯤 떨어진 곳에 온천으로 유명한 파묵칼레(Pamukkale)가 있다. 튀르키예어로 파묵(pamuk)은 목화(木花), 칼레(kale)는 성(城)인데, 파묵칼레는 1만 4000년 전부터 멘데레스 계곡의 지질변화로 분출된 석회 성분의 온천수가 흘러내리면서 하얀 결정체가 거대한 암벽을 뒤덮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목화로 만든 성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만년설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학자들은 온천수가 암반 위를 흐르면서 1년에 약 2㎜ 정도씩 쌓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의 석관들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해발 200m의 구릉지대에는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있다. 히에라폴리스는 BC 180년경 페르가몬(Pergamon)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가 페르가몬을 건국한 필레타이로스(Philetaerus)의 아내 히에라(Hiera)를 기리며 도시 이름을 히에라폴리스라고 했는데, BC 133년 페르가몬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가 왕국을 로마 제국에 헌납했다. 로마 제국도 히에라폴리스를 그리스어로 ‘성스러운 도시’라 하여 히에라폴리스라고 했는데, 이것은 이곳에서 용출되는 섭씨 35도의 온천수가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 온갖 질병에 탁월한 효험이 있어서 수많은 로마의 귀족과 전쟁터에서 부상한 군인, 환자와 노인들에게 큰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에는 공동목욕탕이 많았고, 네로 황제는 아고라와 원형 경기장을 만들었다. ‘제2의 네로’라고 하는 폭군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 51~96)는 예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필립보(St. Phillip)를 처형했으며, 그의 방문을 기념하여 도미티아누스 황제 문을 세웠다. 빌리보의 순교탑도 있다. 로마 문화가 발달한 국제도시 히에라폴리스는 11세기에 후반 소아시아를 점령한 셀주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파묵칼레’로 지명이 바뀌었다.

아고라

도시는 1354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굴을 시작했다.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와 파묵칼레는 온천, 숙박업소, 기념품 판매점이 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일대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원형경기장 내부

데니즐리까지는 이스탄불과 앙카라, 그리고 카파도키아에서도 여객기가 운항하고 있다. 또,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10~12시간, 앙카라에서는 7시간, 이즈미르에서는 4시간쯤 걸린다. 데니즐리에서 약 20㎞ 거리인 파묵칼레까지 버스요금은 4.5터키리라(한화 약 900원)이고, 약 25분쯤 걸린다. 사실 파묵칼레는 작은 관광촌이고,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기 때문에 히에라폴리스를 통틀어서 파묵칼레라고 말하기도 한다. 에페소를 둘러본 우리 가족은 곧장 파묵칼레로 가서 예약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원형경기장 입구

산 중턱에 있는 히에라폴리스는 파묵칼레의 도로 왼편에 있는 수영장을 통과해서 목화의 성까지 올라가는 길과. 산 중턱의 북문 주차장과 남문 주차장이 있다. 입장료는 30유로(한화 약 4만 8000원)로 다소 비싸다. 넓은 남문 주차장 매표소에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3개의 아치문으로 들어가는 울퉁불퉁한 산길까지는 인공 덱을 설치해서 그다지 불편하지 않지만, 이후부터는 온통 울퉁불퉁한 산길이다. 사방에 발굴한 큼지막한 석재들을 수북이 쌓아놓았는데, 무너진 성벽 사이를 지나면 왼편의 넓은 공간이 아고라(Agora)다. 길 오른쪽에는 대지진으로 무너진 로마 황제의 목욕탕 터에 히에라폴리스고고학박물관이 있다. 3개의 전시관에는 2~3세기 로마 시대의 유물인 석상과 석관이 즐비하고, 토기, 등잔, 동전, 액세서리 등도 있다. 그리스의 건축양식은 시대에 따라서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으로 바뀌었는데, 대체로 도리아식은 장중하고, 이오니아식은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코린트식은 화려하다.

야외수영장

박물관에서 왼쪽 구릉은 북문 매표소에서 들어오는 길로서 ‘죽은 자의 공간’인 네크로폴리스(Necropolis)다. 히에라폴리스는 오랜 고대도시인 데다가 치료차 온천에 왔다가 불행하게 죽은 자들이 많아서 이곳에 약 1200기의 공동묘지 석관이 있는데,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라고 한다. 수많은 석관의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된 채 여기저기 널려 있다.

도미테우스 기념문

가장 고지대에 있는 원형 경기장은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처음 건립되었다고 하고, 무대 건물은 3세기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때 완공되었다. 45줄의 객석에 약 1만 5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경기장의 보존 상태가 좋아서 지금도 이곳에서 연극이나 음악회를 열고 있다. 원형 경기장 아래로 가까이 있는 ‘테르메 온천욕장’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로마의 장군 안토니우스와 함께 자주 목욕했다고 해서 ‘클레오파트라 온천(Cleopatra's Pools) 또는 파묵칼레 고대 온천’이라고도 한다. 수영장 앞에 세워진 커다란 수탉 동상은 데니즐리주의 심볼이고, 입장료는 200리라이다. 수영장은 히에라폴리스의 유명한 온천수의 발원지로서 냉.온탕은 물론, 대규모 운동시설, 호텔과 같은 귀빈실 등이 있다. 파묵칼레의 석회수 성분의 온천수가 유명하다는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국내외 여행객과 환자들이 붐벼서 파묵칼레에 간다면 수영복이 필수품이다. 수영장 물속에 로마 시대의 무너진 석주들이 신기했다.

사도 빌립의 무덤 입구에 있는 분수대. 성지 순례자들은 무덤과 교회를 방문하기 전에 이 곳에서 몸을 씻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히에라폴리스에서 암벽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용출된 온천수는 수십 개의 계단식 논처럼 물웅덩이를 만들면서 절벽 아래로 흘러내린 하얀 결정체가 멀리서 보면 목화꽃과 같다고 해서 목화의 성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인데, 고대도시 유적과 사이는 돌을 깔아서 구분했다. 온천수 웅덩이는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전까지 일반인들이 온천욕과 수영을 했으나, 지금은 수영을 금지하고 발만 담글 수 있다. 그런데도 수영복을 입은 관광객들이 많다. 이 물은 칼슘과 이산화탄소를 다량 함유하여 튀르키예에서 유명한 카펫과 비단 표백제로 널리 사용된다고도 하는데, 산 아래에는 절벽에서 흘러내린 온천수를 저장한 거대한 일반수영장이 있다. 수영장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고, 음료수며 기념품을 파는 유원지 분위기다. 수영장의 수심도 1m~2m 정도로 얕아서 걷는 것이 불편한 노약자나 어린이들에게 인기다. 수영장 길 건너에 호텔이 있기 때문이다. 호텔에 돌아와 노천 수영장에서 몸을 씻고 피로를 풀었는데, 호텔 곳곳에 로마 시대의 항아리며 유물들을 장식처럼 설치해 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파묵칼레에도 카파도키아처럼 열기구를 띄우고 있지만, 그다지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아서 눈 구경만 했다.

파묵칼레 전경
파묵칼레 온천 웅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