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이어온 백악관 평화시위, 트럼프 지시로 철거

2025-09-11     송승현 대학생 기자
사진=연합뉴스

40년 넘게 백악관 앞을 지키며 반핵과 반전을 외쳐온 ‘백악관 평화시위’ 천막이 철거됐다.

철거 명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CNN은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시 당국이 라파예트 광장 내 시위 시설을 새벽에 철거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거리 노숙자 시설 정리’ 조치의 일환으로 알려졌다.

철거 당시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자원봉사자 필리포스 멜라쿠벨로는 당국이 철거 사유로 “노숙자 캠프로 오인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고 전했다.

“시위 시설이 노숙자 캠프와 다른 점은, 노숙자 캠프는 노숙자가 사는 곳이라는 점. 보시다시피 여긴 침대가 없다. 내가 가진 것은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피켓이다”

멜라쿠벨로는 이번 조치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백악관도 철거 사실을 인정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해당 시위 시설이 “백악관과 그 주변을 찾는 방문객에게 위험요소였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백악관 평화시위’는 지난 1981년 윌리엄 토마스라는 활동가가 핵무기 폐기와 전쟁 반대를 외치며 시작한 시위다. 이후 44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져왔으며,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랜 반전 시위로 기록됐다.

토마스가 지난 2009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멜라쿠벨로를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은 시위 천막을 지키기 위해 교대로 자리를 지켜왔다. CNN은 이들이 철야 농성을 이어가며 당국의 철거 시도를 막아왔고, 시위 구호로는 “폭탄으로 사는 자 폭탄으로 죽으리라” 등이 사용됐다고 전했다.

이 농성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들어온 건 지난 5일이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수성향 매체 ‘리얼아메리카스보이스’ 소속 기자가 이 시위 시설을 언급하며 “반핵 집회였던 것이 이제는 반미, 때로는 반트럼프 집회로 변질된 것 같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천막의 존재를 몰랐다며 즉석에서 참모진에게 “철거해. 오늘, 지금 철거해”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워싱턴DC의 치안이 불안하다며, 연방정부가 직접 도시 치안을 관리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시 경찰은 연방 통제 하에 놓였고, 주방위군 병력도 도심 치안 유지에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곳곳의 노숙자 텐트촌도 함께 철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