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단축, 생산성 제고 전제돼야”
대한상의 보고서 통해 기업 입장 제시 인건비 부담 커지고 생산 실적도 저하
생산성 향상 없이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선진국과의 1인당 소득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가 박정수 서강대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해 22일 발표한‘임금과 노동생산성 추이, 그리고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생산성(취업자 1인당 GDP)은 6만 5000달러로 2023년 기준 OECD 36개국 중 22위 수준이다. 이는 주 4일제를 도입한 벨기에(12만 5000달러)·아이슬란드(14만 4000달러)의 절반 수준이고 시범 운영 중인 프랑스·독일(각 9만 9000달러)·영국(10만 1000달러)에도 크게 못 미친다. SGI는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의 직무 만족도 향상과 여가 확대를 통한 소비 진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도 “기업 입장에서는 시간당 노동생산성 향상 없이 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연간 생산 실적이 떨어지고 인건비가 늘어나 경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SGI는 2018년 이후 우리나라 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을 크게 상회한다는 점도 부각했다. SGI는 “2000~2017년엔 임금(명목)과 노동생산성(명목) 증가율이 연평균 각 3.2%로 균형을 유지했지만 2018~2023년엔 임금이 연평균 4% 오르는 동안 노동생산성은 1.7% 상승하는 데 그쳐 두 지표 간 괴리가 확연히 커졌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의 생산성 증가율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주력 제품의 가격경쟁력 약화로 둔화된 반면 임금은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초과수당 증가, 통상임금 판결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상승한 결과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보고서는 특히 인건비 상승이 노동생산성을 상회할 경우 노동집약적 산업일수록, 대기업보단 중소·중견기업일수록 수익성에 더 큰 타격을 준다고 강조했다. SGI 김천구 연구위원은 “대기업은 자본과 기술 투자를 통해 일정 부분 생산성 보완이 가능하지만 중소기업은 임금 부담을 가격에 전가하기 어렵고 연구개발 투자 여력도 부족하다”며 “경기 둔화, 인건비 상승, 생산성 개선의 한계가 겹치면서 중소기업의 경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높인다는 정책 방향엔 공감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선진국 대비 낮고 향상 속도마저 정체된 현실을 고려할 때 무엇보다 기업 경영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첨단산업 주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 등 근로시간의 탄력적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직무·성과 중심으로의 임금체계 개편, 취업규칙 변경절차 합리화, 교육·재배치 지원 노동시장 유연화 및 인력 재조정, 중소·중견기업 성장 지원 등 인력 활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장치 마련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이와 함께 연구개발 인센티브 확대, 불합리한 규제 개선, 맞춤형 금융·세제 지원을 통해 성장 사다리를 복원하는 한편 기업 규모에 따른 역진적 규제가 아닌 스케일업팁스(Scale-Up TIPS)와 같은 기술혁신·글로벌 진출·규모화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