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2] 275. 튀르키예 부르사 ①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5-09-23     금강일보
▲ 부르사 지도

튀르키예의 북서쪽 마르마라해 연안에 있는 부르사(Bursa)는 부르사주의 주도(州都)이자, 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에 이어 튀르키예 제4의 대도시다, 주 전체 인구는 약 300만 명 중 부르사시에만 190만 명이 살고 있다. 부르사란 지명은 도시의 실질적인 창건자인 비티니아 왕국의 군주 프루시아스 1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톱하네 공원에서 바라본 부르사 전경

이슬람 세력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의 요청으로 벌어진 십자군 전쟁 중 1204년 제4차 전쟁 때 십자군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유혹으로 목적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가 아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자, 동로마 제국은 부르사로 천도했다. 1261년 콘스탄티노플을 수복했지만, 크게 기울어 명성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렇게 동로마 제국이 점점 쇠약해지던 1323년 오스만 1세가 동로마를 공격하다가 전사하자, 1326년 그의 아들 오르한 1세가 마침내 부르사를 정복했다. 그리고 국력을 키운 오스만 제국은 마침내 200년 뒤인 1453년 메흐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수도를 이스탄불로 옮겼다. 오스만제국의 초기 수도였던 부르사는 외침을 받지 않고 보존되어서 오스만 1세와 그의 아들인 오르한의 무덤(Tomb of Osman Gazi), 술탄 메흐메트 1세의 무덤인 녹색 영묘(Yesil Türbe) 등 오스만 제국의 유적이 많아서 201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울루산 케이블카

부르사는 이스탄불에서 약 150㎞ 거리여서 이스탄불의 근교 도시 정도로 취급받고 있고, 여행객들도 대부분 이즈미르나 파묵칼레로 가는 경유지 정도로 여기고 있기거나 당일치기 여행코스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을 때는 실크로드의 종착지로서 왕실에 비단 물품을 공급했으며, 이스탄불로 천도 후에도 오스만 왕실에 비단 물품을 공급했던 실크 제품 생산지다. 오늘날에는 피아트, 르노 등 자동차 제조공장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 공장, 철강 산업으로 튀르키예에서 가장 산업화한 도시이자 대학 교육의 중심지, 온천 휴양지로 유명하다. 특히 도자기와 찻잔, 주방기기 등 다양한 튀르키예의 전통 수공예품이 많고, 가격도 매우 저렴해서 이스탄불에서 일부러 쇼핑하러 오는 여행객도 많다.

울루산 케이블카

이스탄불에서 부르사까지 직행버스는 약 3시간 걸리는데, 우리네 공항버스처럼 이스탄불 공항 지하 주차장 17번에서 출발한다. 부르사에서 종점은 시내에서 약 10㎞ 정도 떨어진 외곽이어서 시내까지는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만일 렌터카를 이용한다면 2시간이면 갈 수 있어서 쇼핑과 주요 유적지를 돌아보고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것도 넉넉하다. 당일치기 여행을 하거나 거쳐 가는 도시라고 생각한다면, 실크로드의 종점으로서 대상들이 묵었던 숙소였다가 쇼핑가로 변신한 코자 한(Koza Han), 오스만 제국 초기의 최대 사원인 울루자미(Ulu Camii), 그리고 오스만 1세와 그의 아들 오르한의 영묘가 있는 톱하네 공원(Tophane Park)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이스탄불의 에미뇌뉘 선착장(Emiönǔ)에서 출발하는 페리는 약 2시간이면 부르사의 무다냐항(Mudanya)에 도착하는데, 마르마라해의 풍광을 눈요기하는 것은 덤이다.

코자 한 입구

부르사의 남서쪽에 있는 울루 산(Uludag Mt : 2543m)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산이라고도 하는데, 부르사는 오스만 제국 시대의 건물과 구불구불한 도로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트램, 버스 등을 운행하여 시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시내 중심지에는 튀르키예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초대 대통령이었던 케말 파샤의 청동 기마상이 우뚝 서 있고, 오스만 1세의 청동 기마상도 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첫 수도답게 이슬람의 모스크가 많은데, 그중에서 시내 중심지에 자리 잡은 울루자미(Ulu Camii)가 가장 크고 아름답다. 1421년 바예지드 1세 때 건축된 울루자미의 ‘울루’는 튀르키예어로 ‘큰'이고, ’자미‘는 '모스크’라는 의미여서 영어로는 ‘부르사 그랜드 모스크(Bursa Grand Mosque)’라고 불린다.

코자한 상점

중국 한나라 때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무역로는 도자기, 향신료 등과 함께 비단이 대상무역(隊商貿易) 물품 중 가장 중요한 상품이어서 실크로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부르사에는 대상(隊商)들이 묵던 숙소 ‘한(Han)’이 많다. 시내 남쪽 울루자미와 오르한 자미 사이에 있는 ‘코자 한(Koza Han)’은 비단을 상징하는 ‘누에고치의 집’이란 의미인데, 1490년 술탄 바예지트 2세(Bayezid Ⅱ)가 압둘 울라 빈 풀라드 샤(Abdul Ula Bin Pulad Shah)에게 명령하여 지은 2층 건물이다. 1층은 물건을 운반하는 낙타가 묵고, 2층은 대상들의 숙소로 쓰였는데, 이것은 중세 서유럽에서 로마로 가는 교통로인 피렌체 등지에서 마차의 말은 1층, 여행객의 숙박은 2층인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지금 코자 한은 주변의 여러 한과 연결하여 거대한 전통시장을 형성하고, 1, 2층 모두 비단은 물론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100여 개의 상점이 있다. 마치 고대의 성문처럼 출입문이 한 개뿐인 코자 한 쇼핑가의 중정(中庭)에는 중앙의 분수대 주변으로 간이카페가 많아 부르사에서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다.

전통마을

부르사 시내를 감싼 올루산은 국립공원이자 튀르키예에서도 유명한 겨울 스포츠 리조트다. 해발 1870m 스키장까지 올라가는 9㎞의 케이블카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인데, 중간에서 한 차례 갈아타야 할 정도이다. 고도가 놓은 만큼 탑승 시간이 길고, 그만큼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부르사의 경치도 볼만하다. 산 정상에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흘러 내려서 울루다흐 산 이름을 딴 생수도 판매하고, 로마 시대부터 온천이 유명해서 산 동쪽 체키르게(Çekirge)에는 공중목욕탕 ‘하맘(Hamam)’이 있다. 하맘은 전기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에 돔 건물 지붕에 수많은 구멍을 뚫어서 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은 조명 시설이 되고, 또 온천의 수증기가 배출되는 역할도 했다.

아타튀르크 기마상
부르사 시내 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