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심각한 마약류 식욕억제제 남용…5년간 10억 정 처방

여성이 전체 90%, 10대도 55만여 정 외국보다 느슨한 BMI 기준이 주 요인

2025-10-21     조현재 기자
사진 = 보건복지부

최근 5년간 마약류 식욕억제제가 10억 정이나 처방돼 관리 기준과 안전성 점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이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마약류 식욕억제제 누적 처방량은 10억 3365만 정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처방량은 2021년 2억 4342만여 정에서 지난해 2억 1713여 정으로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매년 2억 정 이상이 처방되고 있다. 올해도 상반기 동안 1억 653만여 정이 처방됐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위고비’, 지난 8월 출시된 ‘마운자로’ 등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 비만치료제 도입 이후에도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사용 추세는 거의 변하지 않은 거다.

주요 성분별로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불안 등 부작용을 동반하는 펜터민은 70만 명, 펜디메트라진은 50만 명, 암페프라몬은 7만 명 이상이 처방받았다. 미국 보건의료연구품질국(AHRQ)의 2023년 의료비지출패널서베이(MEPS)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펜터민 복용자는 약 107만 명, 인구 대비 0.31%로 추정된다. 반면 한국의 지난해 펜터민 복용자는 70만 명, 인구 대비 1.35%다. 인구 비율상 미국보다 한국이 약 4.3배 높다.

식욕억제제 처방환자 108만 명 중 여성이 96만 9341명으로 전체의 89.7%를 차지했다. 또 10대 이하 청소년 5899명에도 55만여 정의 식욕억제제가 처방됐다. 외국인도 2021년 3만 4063명에서 지난해 4만 3804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식욕억제제가 남용되는 주 요인으로는 외국보다 느슨한 체질량지수(BMI) 기준이 꼽힌다. 영국, 프랑스, 일본, 미국 등은 BMI 27~35 이상에서만 식욕억제제 처방을 허용하며 이 중 영국, 프랑스에서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자체가 금지돼 있다. 반면 한국은 대한비만학회 비만 진료지침상 BMI 23 이상을 비만 전 단계로 인정해 사실상 광범위한 처방이 가능하다.

마약류 식욕억제제는 불면, 두근거림, 어지럼증 등 부작용을 동반할 위험이 큰데 최근 부작용 신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불면 68건, 지각 이상 50건 등 이상 사례 보고가 455건에 달해 최근 5년 중 가장 많았다.

오남용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도 제재할 법·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수준이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마약류 식욕억제제 오남용 조치기준 외 처방으로 ‘사전알리미’ 경고를 받은 의사 3636명 중 단 11명(0.3%)만 행정처분 의뢰됐다. 사실상 관리·감독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식약처는 올해 마약류 수사 전담 특사경 인력을 충원했으나 일각에서는 처방 기준 자체가 느슨한 상태에서 사후 단속만 강화하는 건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여성, 청소년층의 식욕억제제 처방 실태에 대한 심층 조사와 기준 강화가 시급하다”며 “국민의 안전과 정신건강을 위해 마약류 식욕억제제의 처방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재정비하고 관리·감독 시스템을 시급히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현재 수습기자 chohj0505@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