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인생수상록] 베풀어야 할 것, 맺지 말아야 할 것

인문학교육연구소장

2025-10-26     금강일보

인간사 세상사 모두가 인간관계에 의함이 아닌 것이 없지요. 따라서 살면서 맺는 100여 명과의 인간관계, 그것이 곧 나의 인생사가 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지요.

인간관계에서 널리 베풀어야 할 것 그리고 맺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옛글에서는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어라 사람이 어느 곳에서 산들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마라. 길이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하였지요. 인간관계에서 베풀어야 할 것은 은혜와 의리요 맺지 말아야 할 것은 원수와 원한이라는 것입니다. 인과응보의 이치에 의하면 은혜와 의리는 복으로써 보답을 받고 원수와 원한은 화로써 그 갚음을 받는다 하였습니다.

죽어서도 은혜를 갚는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 고사성어를 볼까요.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에 ‘위과’라는 사람이 아버지가 죽자 서모인 아버지의 첩을 함께 묻지 않고 개가시켜서 목숨을 살려주었다. 세월이 지나 전쟁터에서 ‘위과’가 적군에 쫒겨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는데 이때 쫓아 오던 적군의 말이 첩의 아버지 혼령이 묶어놓은 풀에 걸려 넘어졌고 때문에 위과는 위기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로서 은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보답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지요.

실제 있었던 일화입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어렸을 때는 아주 나약한 소년이었지요. 한번은 강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 직전 정원사의 아들에 의해 구출되었지요. 처칠의 아버지는 정원사의 아들에게 은혜의 뜻으로 대학 학비를 대주었고 덕분에 의과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총리가 된 처칠이 이란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만 급성폐렴에 걸리고 말았지요. 이때 처칠을 치료해 준 폐렴의 최고 전문의가 플레밍 박사, 그는 물에 빠진 어린 처칠을 구해 준 정원사의 아들이었지요. 이처럼 은혜는 은혜를 낳으니 이것이 은헤의 선순환 인연법이라 하겠습니다.

구한말 탁지부 대신이었던 어윤중은 자신의 권세를 부려서 남의 묘터를 강제로 빼앗아 자신의 조상묘를 써서 큰 원한을 샀지요. 권불십년, 정변으로 실각하여 고향으로 피신하러 가던 어윤중은 용인에서 빼앗긴 묘터 주인한테 몽둥이로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지요. 동학혁명 당시 평소에 노비들을 학대해 왔던 양반 대가들은 그 노비들에 의해 참혹하게 당한 사례가 참 많았지요.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법, 자기가 지은 척은 세상끝까지 따라 다니니 절대 척지고 살지 말라 했지요. 이처럼 은혜·의리 그리고 원수·원한의 인연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다 주지요.

도가 경전에 보면 ‘은혜는 원수에서 나오고 원수는 은혜에서 나온다’(恩生於害,害生於恩) 하였지요. 은혜가 원수가 되고 원수가 은혜가 된다는 것으로 은혜와 원수의 그 근원은 같다는 것이지요. 남을 위하는 이타적 마음 작용으로 은혜를 베풀고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적 마음으로 원수와 원한을 맺게 되는 것이지요. 은혜와 원수는 동전의 앞뒤 같아서 은혜가 원수가 되고 원수가 은혜가 되기도 하는 이것이 은혜와 원수의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박정희와 김재규, 윤석열과 한동훈의 관계가 이를 말해 주고 있지요.

인간의 감정은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하기에 영원한 은혜, 영원한 원수는 없지요. 그래서 ‘밤샌 원수 없고 날샌 은혜 없다’ 하였습니다. 밤을 자고 나면 원수같이 여겼던 감정이 풀리고, 날이 새면 은혜에 대한 고마운 감정이 식어짐을 경험하게 되지요. 이처럼 원수와 은혜는 영원히 머물러 있지 못하고 이해 감정에 따라 변한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의리는 돌에 새기고 원수와 원망은 물에 흘려보내라 했습니다.

왼손으로 물건을 주고 오른손으로 값을 요구하는 것은 장사꾼이지요. 은혜는 베푸는 것이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서 불교에서는 보시라 하지요. 은혜나 보시는 받는 사람만 누리는 행복과 고마움이 아니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누리는 행복과 고마움이라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살면서 널리 베풀어야 할 것은 은혜와 의리요 맺지 말아야 할 것은 원수와 원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