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2] 279. 이집트 멤피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5-10-27     금강일보
▲ 이집트 지도

이집트는 BC 3100년경부터 30여 왕조가 나타나다가 BC 2925년경에 메네스(Menes) 왕이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통일하여 카이로 남쪽 약 25㎞ 떨어진 멤피스(Memphis)에 수도를 정하고 고왕국 시대를 열었다. 그렇지만, 멤피스는 훗날 그리스식 지명이고, 당시에는 이네브 헤지(Aneb-Hetch), 중왕국 시대에는 앙크타위(Ankh Taui)라고 불렀다. 이것은 ‘두 땅의 생명’이라는 의미로서 멤피스가 상·하 이집트의 중간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개방적인 하이집트인과 보수적인 상이집트인 간의 언어·생활 습관 등의 차이로 지금까지도 갈등이 심하다.

멤피스 박물관(미트루하히나 야외 박물관)

고왕국은 내부 갈등과 이민족의 침략 등 혼돈기를 거쳐서 500년쯤 지난 BC 2050년경 멘투호테프 2세(BC 2060~ 2009)가 테베(지금의 룩소르)에 중왕국 시대를 열고, 그 이후 이집트의 최고 전성기였던 신왕국 시대가 BC 320년경까지 1700년간 계속되다가 BC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패망하여 알렉산드리아가 새 수도가 되었다.

람세스 2세 석상

알렉산드로스의 부하이자 이집트 총독이던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300년 동안 지배하다가 BC 31년 클레오파트라 여왕이 악티움 해전 패배 후 700년 동안 로마가 지배했다. 이집트를 고왕국→중왕국→신왕국 시대로 구분한 것은 프톨레마이오스 1세 때 역사가 마네토(Maneto)인데, 그는 고왕국 제1·2왕조 때의 수도는 타니스(Tanis)였고, 제3· 4왕조 때부터 멤피스가 수도였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학자들은 중왕국 시대의 테베는 종교적 의식의 중심지였을 뿐 멤피스는 파라오의 대관식이 열리는 등 계속 이집트의 수도였다고 한다.

최초의 스핑크스

이처럼 실체가 애매한 멤피스는 640년경 아랍이 이집트 정복에 나섰을 때 군대 주둔지였던 지금의 카이로에 멤피스의 성채를 뜯어서 나일강을 건너는 곳에 바빌론 요새(Babylon Fortress)를 쌓으면서 사라지더니, 마침내 나일강의 범람으로 모래밭에 파묻혀 버렸다. 화산재에 묻힌 비운의 도시 폼페이처럼 4~5m 이상을 파헤쳐야 하는 멤피스는 이름만 남고 허상과 다를 바 없는데, 1821년 이탈리아 고고학자가 조반니 카빌리아가 프타(Ptha) 신전 남문 늪 속에서 람세스 2세 석상이 엎어진 채 있던 것을 발견하여 당시 이탈리아와 영국이 서로 반출을 시도하다가 83톤이나 되는 엄청난 무게와 비용 때문에 무산됐다.

람세스 2세 거상

1887년 영국인 랄프 배그놀드가 람세스 2세 석상을 프타 신전 터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동상을 보호하기 위해서 진흙 벽돌로 건물을 지은 것이 멤피스 박물관의 시초다. 프타 신의 신수(神獸)는 황소로서 사제들은 황소의 행동을 보고 길흉을 점쳤는데, 황소가 죽으면 파라오처럼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황소를 미라로 만들어서 석관에 안치했다. 사카라의 조세르왕의 계단 피라미드에서 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는 신왕국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만든 세라페움(Serapeum)에 황소 미라(Apis) 28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 람세스 2세 석상을 중심으로 1959년 멤피스 박물관을 지었는데, 박물관의 정식 명칭도 미트루하이나에 있어서 '미트루하히나 야외 박물관(Mit Rahina Open-Air Museum)'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집트 최대의 정복 군주 람세스 2세(Ramesses II, BC 1303~BC 1213)의 석상과 부조물이 대부분이어서 ‘람세스 2세 박물관’이라고도 한다. 멤피스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라 하여 왕실의 공동묘지 네크로폴리스였던 아부르와시 (Abū Rawāsh) 대(大)피라미드가 있는 기자(Giza), 자위트 엘 아리안(Zawyet El Aryan), 아부시르(Abusir), 사카라(Saqqara)· 다슈르(Dahshur) 등 전체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집트 신화의 창조신 프타와 그의 가족들

이집트의 무더위와 아랍어가 공용어인 현실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겪는 언어의 불편은 물론 노선 표시와 차량 번호조차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아랍어로 표기되어서 마치 문맹자가 헤매는 것 같은 불편은 스마트폰의 번역기에 의존했다. 카이로에서는 지하철과 택시를 타다가 멤피스·룩소르·알렉산드리아 등 장거리는 렌터카를 이용했는데, 렌터카는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일 25달러 내지 40달러다. 노약자와 동행하거나 먼 거리로 이동할 때는 우리나라 봉고 버스 같은 개인택시가 대중교통보다 훨씬 좋다.

하토르신과 파라오

야외박물관에는 람세스 2세의 35세 때 모습이라는 입상을 비롯하여 스핑크스(Sphinx) 등 고왕국 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고왕국 시대부터 사자의 몸에 사람의 얼굴인 상상의 동물 스핑크스를 수호신이자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서 이곳에서 발굴된 길이 8m, 높이 4m, 무게 약 9t으로 추정되는 스핑크스가 이집트 스핑크스의 원조라고 한다. 그 스핑크스의 얼굴에 대해서는 아멘호테프 2세 설, 아멘호테프 3세 설, 핫셉수트 여왕 설 등 다양하다. 또, 파라오의 권력이 점점 커지면서 자신을 신과 동격이라며 신과 함께 한 모습의 3신 상(Triads)들이 많다. 즉, 고왕국 제4왕조의 첫 번째 왕 스네프루(Snefru)는 그 이전의 왕들이 태양신 오시리스와 이시스 여신이 낳은 호루스(Horus)의 화신이라고 주장한 것과 달리 자신이 태양신 라(Ra)의 화신이라고 주장한 첫 번째 왕인데, 그만큼 왕권이 강력해졌음을 말해준다. 또, 제4왕조의 세 번째인 카프레 왕은 자신을 프타 신과 동등하다며 신격화한 삼신상(Triads)을 만들고, 신왕국 제19왕조의 람세스 2세도 프타 신과 프타 신의 부인 세코메드 여신과 함께 자신의 삼신상(Triads)를 만들었다. 트라이어드에서 머리 위에 둥근 모양은 태양을 상징한다. 또, 호루스의 아내인 하토르 여신(Hathor)을 비롯한 크고 작은 신전의 조각들과 부서진 비문들이 있는데, 비문은 이집트의 초기 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상형문자라고 한다. 그밖에 미라를 만들 때 사용했던 시체 안치대 등도 있다.

미라 만드는 시체 안치대

멤피스 박물관의 입장료는 200파운드(한화 약 6000원)이지만, 누워있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 전부다. 람세스 2세의 28세 때 모습이라고 하는 석상은 오랫동안 늪 속에 엎어진 채 묻혀 있어서 앞면은 잘 보존되었지만, 뒷면은 풍화작용으로 마모가 심하다. 박물관에는 이런 유래를 적은 그림과 안내판이 있다. 석상은 원래 15m였으나 무릎 아래가 파손되어서 현재 12m이며, 왼쪽 다리와 팔 부분이 일부 잘린 것을 제외하고 매끈한 모습은 BC 1200년경에 조각했다고 하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련됐다. 석상이 워낙 거대해서 2층에 별도로 포토 존을 설치했지만, 그래도 한 화면에 잡기 어렵다. 차라리 세워두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세티 1세(Seti Ⅰ: 재위 BC 1294~ BC 1279)의 아들로 태어난 람세스 2세는 24세 때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파라오가 되어 66년간 통치하다가 90세로 죽었는데, 그는 테베에서 멤피스로 천도한 덕택에 이곳에 그의 석상 등 유물이 있다.

고왕국 시대 상형문자
람세스 2세 거상의 카르투슈. 카르투슈는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상형문자 기호 중 하나로 '둘러싸는'이라는 뜻이다. 현실에서 파라오를 둘러싸서 보호하듯이, 파라오의 이름을 표기할 때도 둘러싸서 보호한다는 의미로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