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눈물과 분노를 섞어서

한남대 명예교수

2025-10-28     금강일보

모든 생명조직체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 낸 조직들은 참으로 신비한 존재들이다.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필요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듯이 인위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들이 운영되고 지속되고 변화하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특히 국가 기업 가정 마을 또는 지역사회 따위를 볼 때 더욱 그렇다. 그것들은 다른 어떤 생명체들, 예를 들어 나무 풀 새 들짐승 물고기들이나 사람이라는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기운들과는 일치하지 않지만, 그것들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분명히 살아 있는 생명체의 기운이 흘러서 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동양의 한 철학 흐름에서는 모든 생사(낳고 살고 죽음)가 기(氣)의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국가 가정 마을 따위의 어떤 인간조직체들은 다 그 기의 모음과 흩어짐의 과정이요 결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국가나 가정과 같은 것들은 매우 견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심히 살펴보면 아주 약한 힘에 의하여도 깨어지기 쉬운 유리항아리나 도자기와 같은 매우 불안불안한 구성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법과 사랑과 전통이라는 접착제와 얼개로 이루어진 것이 그것들이지만, 그것들은 어디 한 구석에서 엉뚱한 변란이 일어날 때는 삽시간에 와그르르 무너지는 것을 무수히 많이 본다. 공든 탑이 무너지겠느냐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한두 가지 삐끗하는 실수로 삽시간에 재가 되고, 폐허가 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그래서 그것들을 다룰 때는 아주 지극한 정성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나 알에서 깨어난 생명체들을 보호하여 기르듯이 깊은 사랑과 정성으로 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신비로운 존재다. 그래서 옛날부터 그런 조직체들을 신기(神器)라고 하였다.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다루지 않으면 금방 기운이 흩어져 소멸되고 만단 말이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사회에는 아주 맹렬한 ‘자뻑’에 빠진 느낌이다. K-민주주의, K-방위산업, K-문화, K-경제, K-평화, K-스포츠 따위의 말들을 수도 없이 많이 외치고 자랑하고 스스로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언론 매체들이 그것들을 합창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랑한다. 특히 유튜브 전달 매체를 통하여서나 카톡이나 밴드 등 이루 셀 수 없는 전달매체를 통하여 자뻑 홍수를 만들어 퍼뜨린다. 나는 저래도 되는가 하는 조마조마한 맘으로 그것들을 만난다. 저렇게 교만해도 되는가 하는 맘에 아찔하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정치담론 과정을 생중계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나는 그것이 좋다고 본다. 모든 시민들이 자기들의 삶을 이끌 정책들이 어떻게 어떤 내용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결정되고 실행되는가를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논의되는 동안 이러저러한 길을 통해 시민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삶을 전달하여 반영하도록 하는 것은 좋다고 본다. 그런데 지금 걱정하는 것은 그 내용과 방법이 얼굴을 돌리게 하고 눈물 나게 참 조잡하고 슬프다는 현실이다. 물론 그것들이 생생하게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지극한 정상이라고 여겨질까봐, 또는 아주 높은 단계의 담론과정으로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을까봐 참으로 조마조마하다.

특히 국회의 전체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저질스럽다고 느낀 단 말이다. 아니 저런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중요한 의사 결정할 권력을 가진 자리까지 가게 되었는가 하면서, 그들을 뽑아준 시민들의 올바르지 못한 판단에 분노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저 지경까지 인간이 망가지고 찌그러졌는가 하는 아픈 맘에 눈물이 난다. 눈물과 함께 그 인생과 우리 사회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되고, 저런 것들을 보고 어린 학생들로부터 어른까지 무엇이 정당한 것인가를 뒤집어 판단하게 될 생생한 교육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분노를 느낀다. 도대체 저들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배웠는가 하는 것이 참으로 의심스럽다. 개별 인간을 보면 다 교양있고, 깔끔하고, 품위가 있고, 얌전하다. 그런데 그들이 의회에 들어갈 자격을 얻고 나서, 그 회의들이 생중계로 방영되는 순간부터 미친 것처럼 돌변하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아마도 생중계하는 카메라 앞에서 아주 세고 억센 소리를 하고 억지를 부려야 다음 선거에서 시민들이 우리 대표 참 잘한다고 기억하면서 다시 찍어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저런 시구제치는 언행을 하는 것일까 의심될 때가 많다.

그래서 다시 분노를 느끼기 전에 저들을, 그러니까 국회의원이나 도·시의원들, 군의원들과 구의원들을 모아서 깊고 간절한 교육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이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존중하는 것처럼 상대방을 존중하고, 내 의견이 아니라 전체의 의견에 도달하는 과정을 아주 간절한 맘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제도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나는 내가 관여하는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나 ‘비폭력 대화’(NVC; Non-Violence Communication) 또는 사회 정의를 회복하고 갈등에 쌓인 당사자들을 화해조정하는 사람들과 그룹룹들의 탁월한 방법을 모든 의회가 개원하기 전에 실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의회는 물리폭력이 아니라 말을 통하여 모든 시민이 공동으로 괜찮다고 느끼는 법을 만들고 정책을 찾고, 실천의 길을 만드는 기관이다. 그런데 그들이 쏟아내는 헛분노와 말폭력을 보면서 조금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고,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차분한 맘으로, 눈물과 분노를 섞어서 위에 말하고 제시한 평화롭고 비폭력스러운 대화의 문화가 모든 의회에서 실시될 것을 기대하면서 제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