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2] 281. 사카라 임호테프 박물관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5-11-11     금강일보
▲ 임호테프 청동 좌상

멤피스를 수도로 삼았던 고왕국 시대의 파라오 공동묘지인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 死者의 도시) 중 가장 가까운 곳이 멤피스박물관에서 서쪽으로 약 2㎞쯤 떨어진 사카라(Saqqara)다. 사카라는 남북으로 6㎞, 동서로 1.5㎞나 되는 넓은 지역인데, 이곳에서는 현재까지 14개의 피라미드가 발견되었고, 현재도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 사카라에서는 고왕국 제3왕조(BC 2650~2575)의 두 번째 왕 조세르(Djoser: BC 2630~2611)의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가 가장 유명한데, 계단 피라미드는 1881년 프랑스 고고학자 오귀스트 마리에트(Auguste Mariette)가 발굴했다.

신격화한 임호테프상

조세르왕의 재상 임호테프(Imhotep: BC 2650~BC 2600)가 건축한 6단계 피라미드는 그때까지 흙을 파서 매장하던 마스타바(Mastaba) 방식에서 오늘날 아파트 20층이 넘는 높이 61m에 달하는 거대한 최초의 인공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세르 왕도 당시에 이렇게 높게 건축한 임호테프에게 감사하여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Ra)를 섬기는 대제사장이자, 이집트 왕의 상서, 상 이집트 왕 바로 아래의 수석, 대 왕궁의 행정관, 세습 귀족, 돌 항아리 제작자”라고 기록한 초석(楚石)을 무덤 밑바닥에 새겼을 정도였다. 그의 탁월하고 놀라운 건축기술에 대한 명성은 멤피스 일대인 하이집트 최고의 신 프타(Ptha)와 여신 세크메트(Sekhmet)의 아들 네페르템(Nefertum)을 대체하며 ‘멤피스의 3대 신’ 중 하나가 됐다. 프타 신은 황소의 화신이고, 세크메트 여신은 파괴적이고 잔인한 성격으로 암사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 네페르툼은 농작물의 신, 질병 치유의 신으로 불렸는데, 임호테프는 파라오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신으로 숭배된 최초의 인물이 됐다.

계단식 피라미드 모형

이집트 정부는 임호테프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사카라 유적지 입구에 임호테프 박물관(Imhotep Museum)을 지었다. 고왕국의 수도였던 멤피스에는 주변의 석재 유물들을 모아서 ‘미트라히나 야외 박물관(Mit Rahina Open-Air Museum)’을 세웠지만, 2006년 4월 사카라에 개관한 임호테프 박물관은 조세르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하여 발굴 장비와 자료들, 다른 피라미드의 출토물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외부는 주위의 사막지대와 비슷한 황톳빛 석재이고, 내부는 현대식 조명과 기후조절 장치를 갖춘 최신식 건물이다. 2023년 말 새로 단장한 박물관은 모두 6개 전시실에서 약 300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입장료는 사카라 유적지를 모든 관람할 수 있는 통합 입장권 600파운드(한화 1만 8000원)에 포함되어 있다. 전시물은 아랍어와 영어로 소개하고 있으며,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있다.

박물관 로비에 전시된 조세르 왕의 석상

첫 번째 ‘사카라 발굴 역사관’에는 사카라에서 진행된 주요 발굴 과정을 사진, 도구, 지도와 함께 조세르 계단식 피라미드의 미니어처, 당시 탐험가들이 사용했던 측량기, 붓, 노트 등을 전시하고 있고, 두 번째 전시실인 ‘연구자 기념 갤러리’에는 1920년대부터 생애 대두분을 사카라에서 발굴과 복원작업에 바친 프랑스 고고학자 장 필립 로에르(Jean Philippe Lauer: 1902~ 2001)의 개인 소장품과 사진 등이 있다. 세 번째 ‘임호테프와 조세르 왕 전시실’은 조세르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석관 조각, 석상 파편, 조세르왕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카(ka) 복제품을 전시하는데, 조세르 피라미드 내부처럼 청록색 파이앙스(Faience) 타일로 벽면을 복원한 것이 인상적이다. 조세르왕의 작은 스핑크스도 있고, 조세르 피라미드와 장제전, 회랑, 제단까지 세밀하게 재현한 미니어처, 임호테프의 생애 등에 관한 자료가 있다. 특히 전시실 중앙 의자에 앉아 있는 임호테프의 청동 좌상은 그가 일반인과 다르게 큰 두상과 손 모양이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다. 벽화나 자료에 제사장은 대부분 치마 차림인데, 임호테프도 치마를 입은 모습이다. 또, 최고의 고위 관직으로서 세습직인 서기관은 무릎 위에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놓고, 머리는 승려처럼 깎았다.

고왕국 시대의 신들

네 번째 ‘사카라의 신전과 무덤실’은 조세르 피라미드 부장물이 아닌 신왕국 제6왕조의 귀족들 무덤에서 출토된 벽화, 부장품, 석관, 토기가 아닌 대리석(Alabaster)으로 만든 거대한 항아리들, 상형문자, 미라, 그리고 고양이, 송골매, 황소(Apis) 미라들이 작은 석관 안에 전시되어 있어서 사카라 피라미드의 일반적인 부장물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사람과 동물의 미라를 정교한 린넨(linen) 천으로 감싸서 당시의 직조기술을 알 수 있고, 또, 나일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코브라는 ‘왕조를 지켜주는 신성한 동물’로서 이집트의 수호 여신인 우제트(Waset)의 화신으로 여기고, 고왕국 시대가 동물 숭배 사상과 밀접했음을 알게 해준다.

동물 미라

다섯 번째 ‘임호테프 헌정실’에는 임호테프를 신격화한 조각상, 헌정 비문, 제의용 신상, 상형문자와 상징물이 있고, 여섯 번째 ‘보물실’에는 피라미드나 무덤에서 발견된 금, 은, 장신구 등을 유리 진열장 안에 전시하고 있다. 제19왕조의 대사제 아메네모페(Amenemopet)과 그의 아내를 묘사한 조각상은 매우 정교하고, 목재로 조각한 평민 상과 창을 들고 칼은 허리에 찬 무사상도 있다.

고대 이집트인의 배와 그릇

이집트 고대 역사에서 주요 인물들은 대개 부모와 본인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임호테프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그런데, 1890년 미국의 찰스 윌보우(Charles Wilbour: 1833~1896)가 나일강 하류 세헬(Sahal) 섬에서 임호테프에 대해 기록된 비석을 발견했다고 했는데, 임호테프가 성경에서 나오는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과 같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즉, 임호테프가 18세 때 조세르 왕에게 그의 꿈을 해석해 주었으며, 7년간의 대기근에서 어떻게 이집트를 구했는지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구약성서에서 팔려 온 요셉이 꿈을 잘 해석하여 고위직에 오르고, 110세까지 살다가 왕실 묘역에 매장되었으며, 또 그가 죽은 지 수백 년 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임호테프를 신으로 숭배된 사실을 결부시켜서 요셉과 동일 인물이라고 하지만, 고왕국 제3왕조 조세르 왕 때인 BC 2600년경의 인물 임호테프와 BC 1990년대인 중왕국 제12왕조 때 7년 동안 흉년이 되어 야곱의 일가가 이집트로 이주하여 430년 동안 살았다는 시대적인 불일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아있다.

조세르 왕의 스핑크스
이집트 서민 목각 조각상
피라미드 건축 도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