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숭우 칼럼] 가을이 지나는 길목

2025-11-12     금강일보

오늘 풍경 어때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겨울이 가을을 다그치고 있지요? 옷깃이 여며지며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는 걸 보니 가을이 밀려나고 있나 봅니다. 이제 좀 기지개 켜며 가을과 익숙해져 볼까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가을은 이미 저만치 달아나 있습니다. 봄에 깐 병아리 가을에 세어본다더니 이러다 업은 아이 삼 년 찾는 건 아닐까요?

가을을 즐길 새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가을과 겨울이 경계에서 마주하며 서 있는 모습들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와 잎새들은 참 조화로웠는데 전령들 싸움에 나뭇가지는 붙어있는 잎새들을 떨구어내려 흔들어 대고 잎새들은 떨어지지 않으려 악착같이 발버둥 쳐대는 모습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합니다. 가을은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본분을 다했다는 듯 겨울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겨울 채비하지 못한 베짱이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을이 오고 가는지 모를 만큼 바빴던 것도 아닌데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멀어져가고 있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쉬움과 미련, 후회와 반성, 미안함이나 감사함을 곱씹어보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 가을을 고무줄처럼 늘이고 줄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할 수 없는 것이라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쉬움에 집착하다 보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물론 할 수 없는 일을 다그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하니 그렇게 되는 거고 그럴 수밖에 없으니 그리하는 걸 겁니다. 세월이 흐르면 허망하고 인생도 흐르면서 허무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그게 뭘까요? 어제는 되돌릴 수 없고 내일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오늘을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미래의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은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 속에서 일어날 건 일어나고 사라질 건 사라지며 가야 할 것은 가고 와야 할 것은 오고야 맙니다. 꽃들이 피고 지는 것처럼 젊음도 성공도 행복도 슬픔도 그리고 시간과 감정까지도 모두 지나가고 오기를 반복하며 삶은 지속됩니다. 물론 이제까지 기적은 없었습니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특이하다거나 특별날 일도 없는 지금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내 생각이 틀렸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기정사실이었습니다. 다만 완벽하진 않아도 조금은 부족해도 온전한 마음만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가을이 지나는 길목에 있습니다. 만날 때는 좋았는데 막상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잔치 후 아쉬움을 뒤로하고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집을 나설 때는 돌아갈 것을 전제로 나왔는데 서산 노을이 져가는데도 돌아갈 집이 없는 것처럼 서성이는 이유가 뭘까요? 돌아갈 집이 있고 기다려주는 일상이 있기에 희망이 있는 건데 몸 누이는 곳이 거처가 아닐까요? 누군 따뜻하고 포근한 집이 그립지 않겠습니까?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생각이 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내 코가 석 자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늦더라도 달을 빛 삼아 별을 친구삼아 집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지인들은 당신이 열심히 산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회가 자주 주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당신은 충분히 잘 살아왔습니다. 매 순간 찾아오는 갈등과 걸림돌을 아슬아슬하게 견뎌내고 이겨내느라 지쳤을 당신에게 격려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무리 풍성한 계절일지라도 풍요 속의 빈곤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빈곤은 행복을 갈구하는 어찌할 수 없는 감정 같은 것이 아닐까요?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곳을 여행할지라도 돌아갈 집이 없고 힘들 때 생각할 사람이 없다면 떠돌이와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행복은 거창한 성취나 화려한 순간보다는 일상의 작은 틈새에서 피어나는 보기 좋은 꽃과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행복은 이해하거나 아껴두는 것이 아닌 누리는 것이라 하니 지금부터라도 늦가을을 편하게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