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 조례에 갇힌 ‘무늬만 갑질 근절’

‘징계할 수 있다’ 임의조항…제재 강제 근거 없어 피해자 분리·조사 공정성 조항 누락…2차 피해 우려 “조례 실행력 중요…실질 개선책 시급”

2025-11-13     이준섭 기자
▲ 사진=챗GPT 제작

공공기관 내 갑질 근절을 위한 정부 대책이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지만 대전시의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갑질 행위 근절 및 피해자 지원 조례는 존재하지만 실제 피해자 보호나 행위자 제재로 이어질 구체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적 틀은 갖췄으나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형식적 제도에 그치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조례 분석 결과 대전시의 경우 갑질 금지 조례를 시행 중이지만 행위자 징계 근거를 ‘징계할 수 있다’는 임의조항으로 두고 있다. 제재의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갑질 행위자에 대한 실질적 처벌이 어렵고 제도 운영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피해자 보호 규정 역시 빠져 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조사 기간 중 피해자 분리’ 조항을 조례에 반영하지 않아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또 ‘객관적으로 조사한다’는 문구조차 없어 조사 절차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갑질일수록 외부 개입과 투명한 절차가 중요하지만 현행 조례로는 피해자 보호 시스템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어려운 셈이다.

조례의 구멍은 결국 현장에서의 실질적 변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공공기관 내 갑질 문제는 신고자 보호와 행위자 징계, 조사 투명성이라는 세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해결이 가능하지만 시의 조례는 세 항목 모두에서 미흡해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조례의 존재보다 중요한 것이 실행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행위자 제재를 의무화하고 피해자 보호를 명문화하는 등 실질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각 광역지자체별 조례를 분석한 결과 조항들이 현행법 수준에 못 미치거나 법 취지에 역행한다. 정부가 허위신고 시 징계 조항 등은 폐기하고 기존 가이드라인을 실효성 있게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시의 과제는 실질적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 체계 재정립으로 귀결된다. 형식적 조례로는 조직문화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만큼 시가 내부 감시와 제도 보완을 통해 무늬만 갑질 방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현재 갑질 조사는 조례 규정에 따라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 가이드라인이 내려오면 이를 토대로 개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