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선의 발칙한 시선] 대전문화관광, 산업이 되려면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주말 도심은 빈 듯 한산하다. 대신 도심 빛에 물든 가로수의 단풍만이 찬란하게 나부낀다. 잎이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고 다시 꽃이 피기까지 거리의 나무들에는 가장 작은 에너지로 움츠리며 버텨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자 희망의 시간이 된다. 우리 도시의 문화예술과 관광도 나무처럼 살아야 한다.
지난 12일 대전시 문화예술관광국을 대상으로 한 행정사무 감사가 열렸다. 의회를 가지 않고도 시민이면 누가 인터넷을 통해 감사 과정을 볼 수 있지만 시민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듯 보였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대전에 대한 관심도, 이슈도, 방문객도 많은 한 해를 보냈기에 대전시의회의 감사에 이목이 쏠릴 줄 알았는데 의례적 감시와 비판에 머물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든다.
2025년은 국민에게 어느 해보다 대전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 해였다. 일 년 내내 빵과 관련된 콘텐츠나 여행스토리는 사람들을 대전으로 이끄는 강력한 힘이었다. 새로운 구장을 마련하고 한화이글스가 코리안 시리즈에서 2위라는 성적을 내기까지 야구 도시 대전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놓고 많은 논란을 일으킨 0시 축제의 효용성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도시 대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엑스포 이후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기에 이를 마중물 삼아 도시 대전의 문화 역량과 브랜드 가치를 키울 절호의 기회였다.
100만 명이 찾아오는 야구장, 100만 명이 찾아오는 계족산 황톳길, 1000만 명이 찾는 빵집, 수천 건의 연구 회의와 비즈니스가 열리는 연구단지와 컨벤션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머물지 않는 일회성 관광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책의 문제와 한계는 무엇인지, 시민이 누릴 문화예술 관련 시설은 늘어나는 데 시민들은 왜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외면하는지…. 시민을 대신해 감시하는 대전시의회와 실행기관인 대전시는 고민해야 한다.
음식·스포츠·교육·비즈니스를 위한 여행이나 관광을 목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사전에 지역의 정보를 검색하는 일이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볼 것인지 확인한다. 이런 정보들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여행트렌드에 맞춰 구축된 플랫폼이 있다면 더 많은 방문객을 유인할 수 있다. 그런데 대전은 이런 플랫폼이 기관과 시설에 따라 각기 달리 개설되어 있거나 자신들의 목적에만 충실했지, 방문 목적 이외 대전을 다르게 즐길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정보가 제공된다 하더라도 관(官)중심의 정보에 머물러 민간 영역에서 벌어지는 축제·공연·전시·스포츠 등 이벤트까지 서비스하지 않는다.
요즘 우리는 데이터 시대, 검색의 시대를 넘어 AI시대의 편리를 누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통합되지 않고는 정보의 가치를 높일 수 없는 시대다. 방문 목적에 따라 일정과 예산, 지역의 머물 곳과 볼 것, 먹을 것을 선택만 하면 여행 일정을 짜주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방문자들이 지자체가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통상적인 정보를 신뢰하지 않을뿐더러 찾지도 않는다.
대전을 과학의 도시라고 말하지 않는가. 연구소가 많고, 연구자가 많은 도시 말고 과학의 도시라고 체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잘 사는 도시, 일류경제도시를 표방하면서도 그것이 시민들에게나 방문자들에게 체감되게 하려면 일상의 편리함을 도시 대전에서 경험하게 만들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어쩌면 문화예술과 관광을 아우르는 플랫폼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미술관을 짓고, 공연장을 짓고, 도서관을 짓는 일보다 플랫폼을 지어 시민들과 이 도시를 찾는 사람들에게 가성비 높은 향유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 효용성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 이 가을에서 꽃피는 봄까지 고통의 시간을 희망으로 준비하는 나무처럼 우리 도시의 문화 예술, 관광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기다릴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최근 대전관광공사 사장에 취임한 김용원 대표의 ‘대전 관광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겠다’는 다짐이 현실이 되려면 각자도생이 아닌 민관 연대와 통합의 플랫폼에서 길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