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질 낮은 현수막 정치, 국민 보기 민망하지 않나
혐오를 조장하는 정당 현수막이 난립하며 공해를 유발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정치인을 비방하거나 근거 없는 의혹을 확산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문구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해 사회를 분열시키는 현수막을 정치 활동으로 용인해줄 만큼 국민의 수준이 낮지 않다. 자성과 자정에 맡길 수 없다면 규제 강화를 통해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혐오 현수막 논란은 자초한 면이 없잖다. 2022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정당명과 연락처 등을 기재하기만 하면 거의 제한 없이 게시할 수 있게 문턱을 없앴는데 정치 활동을 보장한다는 취지는 퇴색하고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조롱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얼굴을 바꾼 것이다.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뿐만 아니라 정당법에 의해서도 허용되고 있다.
정당 현수막이 국민 정서에 위배된 정황은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에서 정당 현수막에 대한 민원이 온오프라인으로 1만 8016건 접수됐다. ‘현수막 위치가 부적절하다’, ‘내용이 아이들 보기에 민망하다’, ‘도로 교통상 위험하다’ 등의 핀잔이 쇄도한 가운데 각 시도가 상반기에 정비한 정당 현수막만 5만 2650건에 달한다. 백해무익하다는 야유가 나올 법도 하다.
일부 소수 정당의 현수막 정치는 아연실색하게 한다. 특히 최근 폐막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 중 한 소수 정당이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과 함께 ‘중국 공산당이 한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가짜 정보를 버젓이 게시해 논란을 키우는 등 중국 혐오를 유발하는 현수막이 무분별하게 나부끼며 물의를 일으켰다.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에 간첩 의혹을 제기한 정당도 있다. 현수막이 공인된 가짜 뉴스의 온상인 현장은 수두룩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정당 현수막이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정당이 국고보조금을 받으면서 거리 곳곳에 저질스러운 내용을 내거는 것은 특혜가 될 수 있다”며 “옛날대로 돌아가는 방안을 정당과 협의해 달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의 독기를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등 인권침해 우려가 있는 현수막을 금지하는 현행법을 근거로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지자체에 배포할 예정이다.
인권침해에 대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어야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정당 현수막을 제한하는 객관적 기준도 세워야 한다. 본질적으로 정당이 현수막을 제한 없이 걸 수 있도록 특혜를 준 현행법 자체가 문제다. 정당도 현수막을 걸기 위해서는 지자체 심의를 거치도록 해야 마땅하다. 결국은 결자해지다. 대통령 말마따나 악용이 심하면 법을 개정하든지 없애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