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2] 282. 기자 피라미드 지구(Giza Pyramid Complex)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나일강 건너 서쪽으로 약 12㎞쯤 떨어진 거대한 피라미드(Pyramid)와 스핑크스(Spinx)가 있는 기자(Giza)는 카이로 시내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 이집트 고왕국의 수도 멤피스에서 왕들의 공동묘지인 네크로폴리스(Necropolis) 중 하나였다. 대표적인 네크로폴리스인 사카라(Saqqara)에서도 기자의 피라미드가 보인다.
임호테프가 사카라에 고왕국 제3왕조의 두 번째 왕 조세르(Djoser: BC 2686~ BC 2667)의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를 만든 이후 너도나도 피라미드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BC 2600년경 제4왕조의 첫 번째 스네프루 왕(Snefru)은 다슈르(Dahshur)에 2개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네푸르 왕의 아들 쿠푸(Kufu) 왕은 기자에 피라미드를 쌓았는데, 쿠푸 왕의 아들 카프레 왕과 손자 멘카우레 왕도 기자에 피라미드를 쌓았다. 하지만, 멘카우레 왕의 아들이자 제4왕조의 마지막 왕인 셉세스카프(Shepseskaf)는 사카라 북쪽에 자신의 피라미드를 세웠다. 현재까지 이집트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는 모두 138기인데, 사카라, 아부시르, 다슈르와 기자의 피라미드를 일괄하여 네크로폴리스 전체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우리는 카이로 시내에서는 지하철이나 택시를 탔지만, 멤피스·룩소르·알렉산드리아 등지에서는 렌터카를 이용했다. 렌터카는 차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1일 25달러 내지 40달러인데, 렌터카로 멤피스를 거쳐서 기자로 왔다. 하지만, 카이로 시내에서 곧바로 기자 지구로 간다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기자역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가면 된다. 기자 피라미드 입장료는 700파운드(EGP:약 2만 2000원)인데, 기자 피라미드 지구는 워낙 넓어서 정문과 후문이 각각 있다. 흙먼지가 날리는 넓은 사막지대에 있는 피라미드는 입장료 이외에 주차비를 내면 관광버스, 렌터카, 택시가 구내로 진입할 수 있는데, 혼잡을 막기 위해서 최근 일체 출입을 금지하고 무료 셔틀버스만 운행한다고 한다.
정문에 들어서면 폭 73m, 높이 약 20m의 거대한 스핑크스는 얼굴 모습이 상당히 파손됐는데,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앞에 있어서 스핑크스의 얼굴은 카프레 왕이라고 한다. 이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가장 거대한 스핑크스로서 BC 5세기에 이집트를 여행한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가 저술한 역사(Historiae)에서도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언급했다.
고왕국 제4왕조의 두 번째 쿠푸 왕과 그의 아들 카프레 왕, 손자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가 있는데, 그중 쿠프 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크고 완벽해서 ‘대피라미드(The Great Pyramid of Giza)’라고 불린다. 기자에는 쿠푸 왕과 그의 아들 카프레 왕과 손자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 등 세 개만 있는 것으로 알기 쉽지만, 사실 쿠푸 왕의 피라미드 서쪽에 피라미드를 설계하고 건축한 재상 헤몬의 묘, 동쪽에는 쿠푸 왕 어머니 헤테페레스 왕비의 묘가 있는 등 세 명의 파라오 피라미드마다 그 옆에 왕족의 무덤으로 보이는 작은 피라미드가 1~2개씩 있다. 또 각 피라미드에 딸린 장제전(葬祭殿)도 있다.
피라미드는 네 모서리가 정확하게 동서남북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서 측량학과 건축학이 고도로 발달했으며, 삼각뿔 모양의 꼭대기는 황금으로 만든 '피라미디온'(관석 cap stone)을 씌워서 멀리서도 햇빛에 반사되어 화려함을 과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뜯겨나가서 울퉁불퉁한 암석이 드러난 모습이고,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만 꼭대기 부분이 뜯겨나가지 않고 외장 석재가 남아 있어서 원형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바위 한 개의 무게가 평균 2.5톤이고, 230만 개의 화강암 8,000t으로 쌓았다고 하는데, 오늘날과 같은 중장비도 없던 시대에 파라오가 수십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임을 말해준다, 그래서 피라미드를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지만, 거대한 돌덩이는 이집트에서 유일한 화강암 지대인 카이로 남쪽 900㎞나 떨어진 아스완에서 채석하여 나일강으로 운반했다고 한다.
기자에서 나일강과 가까운 계곡 사원으로 통하는 둑길은 아마도 파라오가 죽은 뒤 시신을 미라로 만들었다가 피라미드에 안치할 때 장례 의식을 했던 길로 추정하고 있다. 또, 1954년 5월 쿠푸 왕의 피라미드 동쪽에서 거대한 구덩이 3개를 발견했는데, 구덩이에서 쏟아져 나온 목재 조각을 맞춰본 끝에 완벽한 배를 재조립하게 됐다. 보존 처리를 마친 배는 대피라미드 옆의 전시관에서 전시하다가 이집트박물관으로 옮겼는데, 지난 1일 개관한 이집트 대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각 피라미드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내부 관람을 할 수 있는데, 입장료는 피라미드마다 각각 다르다. 쿠푸 왕 피라미드의 경우 입구는 피라미드의 중심축에서 동쪽으로 15m 정도 떨어진 북쪽 면 13층계에 있지만, 관광객은 아바스 왕조의 제7대 칼리프 알 마문(al-Ma’mun: 813~ 833)이 파놓은 도굴 통로인 5층계에 있는 입구로 들어간다. 칼리프 알 마문은 이집트 집권 당시 피라미드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을 찾으려고 공성용(攻城用) 대포까지 동원하여 굴을 7곳이나 뚫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내부로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꺾여서 높이 약 1.2m의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오르고, 약간 경사진 아래 도굴용 통로를 들어가면 정식 입구를 통해 들어오는 내부 복도와 연결된다.
피라미드 내부는 3개의 방이 3개의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천장의 화강암들은 조금씩 균열됐고, 부장품은 모두 도굴당한 상태여서 관람은 추천하지 않는다. 또, 고왕국 제5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우나스(Unas)의 피라미드에 최초로 피라미드의 내벽에 깨알 같은 상형문자를 새긴 장제문서(葬祭文書)가 발견되어서 이것을 ‘피라미드 텍스트(Pyramid Texts)’라고 하는데, 그보다 시대가 훨씬 앞선 제4왕조 시대에 쌓은 기자의 피라미드에는 이런 무덤 속 벽화나 장제문서도 없다. 고왕국 제5왕조 시대에도 기자 남쪽 아부시르에 피라미드를 쌓았지만, 태양신을 더 숭배하여 피라미드는 점점 작아지고 신전이 발달했다. 그나마 룩소르에 새로 시작한 중왕국 시대의 파라오들은 지나치게 많은 돈과 인력이 들어가는 피라미드 대신 룩소르 ‘왕가의 계곡’에서 볼 수 있듯이 무덤에 자신의 석관과 미라를 안치하는 방법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