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칼럼] 눈물을 흘려본 사람만이 인생 참맛을 안다

시인·전 대전문인협회장

2025-11-18     금강일보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슬픈 장면을 보고도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은 가슴이 메마른 사람이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가슴이 없다. 가슴이 없는 사람이 어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자기자신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바닥까지 추락해본 사람은 눈물을 사랑한다. 실패는 인생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상대의 아픔을 이해한다. 눈물 젖은 빵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다. 두 끼 이상 배를 곯아보지 않은 사람과는 아는 체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바닥에 가시가 깔렸어도 양탄자가 깔린 방처럼 아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포근한 가슴이 있는 사람과 같이 할 때가 그렇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면 차라리 다시 일어서서 오를 수 있어 좋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노래했는지도 모른다. 거미는 제 몸의 창자와 피를 다 뽑아 허공에 집을 짓고 묵묵히 기다린다. 그것이 한평생 거미의 삶이다.

실패한 사랑 때문에, 실패한 사업 때문에, 실패한 시험 때문에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그곳에 주저앉는 사람은 미래가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지 않은가. 누구든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실패한 것을 반복해서 다시 실패하는 것은 안 된다. 유비무환이란 정신무장이 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의 경우에는 회사의 규모가 작을 때 많은 실패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실패한 경우에는 솔직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패배를 인정해야 다음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보는 삶이 좋다. 기차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앞은 볼 수 없고, 옆 창문을 통하여 고향 같은 아련한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누구에게나 앞길이 훤히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건 인생길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자세히 보인다면 인생 무슨 재미로 살까? 인생의 앞길을 족집게로 집어내듯 맞혀낼 수 있다면 인생은 얼마나 재미없고 시시할 것인가? 그건 익기 전 풋감을 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자신의 목을 옥죌 수 있다.

무슨 일이든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 여기에 인내가 필요하다. 고난을 이겨내지 않고 이루어지는 성공은 없다. 성난 파도와 싸우며 생선을 잡아 올리는 강인한 팔뚝을 가진 어부들을 보지 않았는가.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서 맞이하는 희열보다 더 값진 것은 없다. 피를 흘리지 않고도 추락하는 새가 있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구두의 밑창이나 인생이나 서서히 닳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자기가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연구한 만큼 대가가 돌아온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최고의 창조물이다.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희망이다. 사전오기, 칠전팔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영광은 아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픔이다가 눈물이다가 내가 혼자 만들어낸 이 흔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일이다. 그래서 눈물은 아름다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