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농촌 식문화 체험에서 배우는 한끼의 의미
박영철 대전시 녹지농생명국장
어릴 적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고 아침에 논에서 본 벼가 밥이 되는, 그리고 마당의 텃밭에서 기른 채소가 반찬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밥 한 숟가락에는 흙냄새를 느끼는 자연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흙을 밟고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도 부족하고 포장된 음식은 익숙해도 그것이 어디서 자라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과 농산물 가격 불안정이 이어지면서 ‘먹거리의 안정성’은 사회 전반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폭염과 폭우, 한파가 잦아지며 식량 생산 환경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그 여파는 결국 우리의 밥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변화의 시대일수록 우리가 다시 바라봐야 할 것은 ‘먹는 일의 본질’이다. 과거에는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생존을 위한 필요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환경과 경제, 문화가 함께 얽힌 복합적인 행위가 되었다. 특히 성장기 학생들에게 식생활은 단순한 영양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형성하는 교육의 한 부분이다. 그만큼 식생활 체험교육은 교실 안에서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배움의 장이다.
학생들이 농촌을 찾아가 흙을 밟고, 모종을 심고, 수확의 기쁨을 느껴보는 경험은 교과서 한 장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준다. ‘먹거리’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그리고 누가 그것을 길러주는지, 어떤 환경이 그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한 끼의 소중함’을 배우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거나 지역 농산물을 선택하는 등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진다.
요즘처럼 학생들이 자연을 직접 경험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시대에 농촌 체험이나 식생활 체험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세대 간 단절을 잇고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교육이다. 농부의 손끝에서 시작된 한 알의 쌀이 아이들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이해할 때 ‘먹는 것’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또한 식생활 체험은 기후 위기 대응 교육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은 물류 이동 거리를 줄여 탄소 배출을 감소시키는 가장 손쉬운 실천이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는 습관, 음식을 남기지 않는 습관, 현지 농산물을 고르는 습관이 모든 것이 지구를 살리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이런 원리를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평생 잊히지 않는 환경교육이 된다.
대전시는 이러한 취지를 살려 관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농촌체험마을과 연계한 식생활 체험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농가를 방문해 고구마를 캐고 다육이를 심으며 농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배우고, 직접 강정을 만들고 다양한 채소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통해 식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있다. 또한, 마을 탐방을 통해 농촌의 생태와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기후 위기와 식량 위기라는 거대한 담론 속에서도, 해답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가 먹는 밥상과 그것을 준비하는 손길에 있다.학생들이 자연 속에서 배우고, 흙과 땀 속에서 감사와 책임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첫걸음이다. 앞으로도 농촌 체험과 식생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속에서 먹거리가 자라고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더욱 확대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 작은 체험이지만, 그 안에는 미래 세대가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고 환경을 이해하고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을 키우는 힘이 있다.
한 끼의 밥상에서 시작된 작은 깨달음이 미래 세대의 마음에 생명과 감사의 씨앗으로 자라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