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에도 VC 투자 제한적…지방은 여전히 ‘찬밥’
투자 재원 조달 예전보다 어렵다 인식 민간투자 매칭 어려워 정책금융에 의존 VC 투자대상 벤처 수도권 쏠림도 심각 지방 투자 확대 필요성엔 공감대 형성
최근 코스피를 중심으로 한 주식시장 활황세와 벤처투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지방(비수도권)엔 그 열기가 닿지 않고 있다. 될성부른 벤처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으니 벤처캐피탈(VC)도 굳이 지방까지 눈을 돌릴 필요가 없는 거다. 충청권의 경우 대덕연구개발특구를 중심으로 벤처생태계가 상당 부분 갖춰져 있고 투자 형태도 다양화돼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전히 지방 벤처기업들은 투자 유치에 있어 갈증을 호소하고 있다.
◆VC, 민간투자 매칭에 고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일부터 지난 11일까지 VC 113곳을 대상으로 투자 애로요인 및 정책과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기업의 62.8%가 ‘최근 1년간 투자재원 조달이 과거보다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과거와 비슷하다’는 답변은 20.4%, ‘과거보다 원활하다’는 응답은 16.8%로 집계됐다. 투자금 회수 역시 ‘과거보다 어려워졌다’는 응답이 71.7%에 달한 반면 ‘과거와 비슷’(23%)하다거나 ‘과거보다 원활’(5.3%)하다는 응답은 28.3%에 그쳤다. 이는 최근 코스닥 및 IPO·M&A 시장 부진 등으로 회수시장 위축이 심화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응답 VC들은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주로 정책금융을 통해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년간 모태펀드·성장금융·산업은행 등 정책금융 출자를 받은 경험이 있는 VC가 75.2%에 달했다. 다만 정책금융 출자를 받은 VC의 대다수(91.8%)가 ‘민간자금 매칭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해 정책금융의 출자를 받는다고 해도 민간부문에서의 자금조달 문제로 펀드 결성이 쉽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벤처투자 확대 방안(복수응답)으로 응답기업들은 우선 회수 활성화를 위한 기술특례상장 등 상장요건 개선(69%)과 세컨더리 펀드(기존 벤처펀드의 투자지분을 인수해 투자금을 조기 회수시켜주는 후속 펀드) 활성화(68.1%) 등을 꼽았다. 기술특례상장의 경우 구체적인 심사지표가 비공개되고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많아 평가기준과 심사과정의 예측가능성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어 지난 9월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 당시 제기된 ‘산업-금융자본 공동GP 허용’에 동의하는 의견도 61.6%에 달했다. 현행법상 신기술금융사업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일반지주사가 VC와 함께 GP 역할을 수행할 수 없으나 이를 허용하면 산업자본의 선구안과 금융자본의 투자운용 역량이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거다. 다수의 VC가 ‘일반지주회사와의 공동GP(Co-GP) 결성이 허용된다면 투자 확대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자본 여력이 풍부한 지주회사의 출자 확대로 인한 민간 자금조달 수월’(68.1%)을 가장 많이 꼽았고 ‘산업자본의 기술·시장 이해도를 활용한 유망기업 발굴 용이’(23.2%), ‘지주회사의 네트워크·레퍼런스를 통한 시장 참여 기회 확대(8.7%)’ 등이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벤처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강화(55.8%), 모태펀드 출자 규모 확대(54.9%), 연기금 등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확대(54%),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허용(44.2%) 등 투자재원 확대를 위한 제안과 스타트업 M&A 지원(52.2%), 민관 코스닥 활성화 펀드 조성(50.4%) 등 회수시장 원활화를 위한 방안들이 주요 과제로 지목됐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글로벌 첨단산업 경쟁에서 이기려면 금산분리와 상장요건 등 규제를 기업 및 투자 친화적으로 개선해 코스피와 코스닥, 비상장기업까지 투자의 파이를 골고루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 투자 확대 필요성 공감
한편 VC의 투자 대상 선정 측면에선 수도권 쏠림현상이 큰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응답 VC의 80.5%가 ‘투자 대상이 수도권에 집중’(34.5%)돼 있거나 ‘수도권 비중이 다수’(46%)라고 답했다. 반면 ‘비수도권 투자 비중이 높다’는 답변은 10.7%에 불과했다. 다만 비수도권 투자 확대의 필요성엔 65.5%가 공감했다. 향후 비수도권 투자 확대 의향이 있다는 기업도 74.3%에 달했다.
비수도권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과제로는 ‘모태펀드 내 권역별 펀드 신설’(25.7%), ‘지방 스타트업 클러스터 확대’(23.9%), ‘지자체 직접 출자 확대’(23.0%), ‘지방 투자 벤처캐피탈 세제 혜택 부여’(15%), ‘정부·지자체 주도 비수도권 스타트업 IR 및 소통기회 확대’(6.2%) 등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정성훈 강원대 교수는 “유동성 공급도 중요하지만 지방에 투자할 만한 유망 벤처기업이 늘어나는 것이 우선”이라며 “지역별로 다양한 특구나 메가샌드박스와 연계해 규제철폐와 전기요금 할인, 세제 혜택, 인력양성 등 획기적인 지원을 통해 벤처기업이 지방에 뿌리 내리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