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국어 17번 문항 둘러싼 논란
포스텍 이충형 교수, '정답 없다' 주장 4년 전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 재발 우려도
최근 치러진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고난도로 꼽혔던 국어 영역 17번 문항에 대해 ‘정답이 없다’는 학계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수능 국어 17번 문항은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인격 동일성’에 관한 지문을 읽고 갑과 을의 견해 중 적절한 것을 고르는 문제로 구성돼 있다. 갑은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한다면 신체가 결여됐기 때문에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평가원은 이 문항의 정답으로 3번 선지를 제시했으며 3번은 “칸트 이전까지 유력했던 견해에 의하면 ‘생각하는 나’의 지속만으로는 인격의 동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갑의 입장은 옳지 않겠군”이라는 내용이다.
이충형 포항공대 철학과 교수는 3번 선지가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문 도입부에 있는 “칸트 이전까지 인격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유력한 견해는 ‘생각하는 나’인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시간의 흐름 속에 지속한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을 강조했다. 그는 “의식을 스캔해 프로그램으로 재현하면 본래의 나와 재현된 의식 둘 다 존재하게 된다”며 “이 경우 ‘생각하는 나’는 지속하지만 영혼이 단일한 주관으로서 지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갑의 입장이 옳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이 문제가 논리적으로 정답이 없음을 주장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4년 전 수능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 논란이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시 평가원은 출제 오류를 인정하고 응시자 전원을 정답 처리했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이번 문항이 출제 오류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평가원이 출제 오류를 인정하려면 지문에 나와 있는 논리로 정답을 도출할 수 없어야 하는데 이번 국어 17번 문항은 지문에 따라 3번을 선택할 수 있다는 논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가원은 국어 17번 문항을 포함해 지난 17일까지 접수된 675건의 이의신청을 심사한 뒤 25일 최종 정답을 확정할 예정이다.
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