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가가 인정한 ‘성지원’ 대전시의 응답이 필요하다

이준섭 취재2팀 차장

2025-11-23     이준섭 기자

대전 성지원에서 벌어진 인권침해가 국가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5년에 걸친 조사를 종합해 보고서를 내고 성지원을 구조적 인권침해 사례로 명시한 것은 수십 년 외쳐도 들리지 않던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비로소 공적 기록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실이 문장으로 남는 것만으로는 역사가 정리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그 진실을 다루는 국가와 지방정부의 태도가 역사를 만든다. 

성지원 문제는 이미 한 차례 기자수첩으로 다룬 바 있다. 당시엔 피해자 증언과 기록의 공백, 지방정부의 책임 회피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국가가 진실을 확인한 것뿐만 아니라 공식 문서로 남겼고 그 기록이 앞으로 책임 구조를 분명히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진실규명은 공권력의 인정으로 완성된다. 이 지점이 전혀 다른 국면을 만들었다.

보고서는 성지원 문제가 단일 시설의 실패가 아니라고 했다. 왜 관리는 미비했고 폭행이 반복됐는지, 왜 초동 수사는 부실했는지, 1985년 집단농성과 1987년 조사단 폭행 사건조차 왜 규명되지 않았는지를 따져보면 이는 국가 정책·지자체 행정·감독 시스템이 함께 만든 구조적 실패다. 보고서의 권고가 국가와 지방정부 공동 책임으로 설계된 이유다.

국가가 잘못을 기록했다면 지방정부는 그 기록 위에 행동을 얹어야 한다.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용기는 행정의 의지에서 나온다. 그러나 대전시는 아직 공식 입장이 없다. 보고서의 무게, 지역의 책임을 감안하면 이 침묵은 가볍지 않다.

지방정부의 사과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성지원은 대전이 품고 행정이 감독하던 시설이었고 피해자들은 지금도 대전에서 살아가거나 그곳을 기억 속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말을 건넬 주체는 대전시다. 인정은 책임과 제도 개선, 보상 문제를 동반해 쉽지 않지만 그 지점이 바로 용기의 영역이다. 지방정부가 공공 책임을 선택한다면 사과는 도덕적 의무를 넘어 지역사회 성숙의 과정이 된다.

진실은 이미 밝혀졌다. 이제는 그 진실을 마주하는 지방정부의 태도가 남았다. 피해자 심리회복·자립 지원, 명예회복, 배·보상 제도, 기록·교육 사업, 재발 방지 시스템은 어느 하나 국가에만 맡겨둘 수 없다. 지역의 과거를 치유하려면 지역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대전시가 용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성지원의 진실은 기록만 남고 행동은 없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침묵보다 먼저 와야 할 것은 피해자에게 건네는 단 한 문장의 사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