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이이김김] 추운 날씨만큼 쓸쓸했던 일일 장사기

2025-11-23     이주빈 기자

출근시간이 조금 지난 오전 10시 볼펜을 팔기 위해 대전 서구 둔산동의 갤러리아 지하보도로 내려갔다. 장사 시작을 위해 볼펜을 꺼내려는 찰나,  “아가씨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한 상인이 날카로운 말투로 물었다. 오늘 하루 볼펜을 판매할 거라고 하니까 판매물품이 겹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 상인은 그제서야 경계를 풀었다. “여기서 장사해요. 오늘 많이 팔아요”라며 자리를 떠났다.

#1. 첫 손님

모든 장사 준비를 마치고 5분도 채 되지 않아 한 손님이 관심을 보이며 개시를 했다. 빠른 개시에 오늘 모든 물품을 팔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샘 솟았지만 이후 1시간이 넘게 사람들은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치기만 했다. 간간이 관심을 보이며 “이게 뭐예요?”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구매로 이어지지 않아 상실감이 커졌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목소리를 냈다. “펜 사세요.”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했다.

#2. 환호, 그리고 ...

첫 판매 이후 2시간쯤 지났을까. 두 번째 손님이 방문했다. 볼펜이 당장 필요한데 마침 앞에 팔고 있어 왔다고 했다. 하지만 희한한 생김새에 구매를 망설였다. 그런 손님에게 꼭 팔겠다는 생각으로 잘 써지는지 테스트까지 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다행히 손님은 볼펜 두 자루를 구매했다. 2000원이 손에 쥐어지고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판매완료인 오후 3시까지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지만 결국 손해를 보고 말았다. 원금회수도 못하고 펜도 많이 남아 처음 완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펜 사세요” 외침에도 스쳐 지나가기만
 상인들 오픈 3시간 동안 판매 못하기도
 줄어드는 유동인구에 장사 지속 고민

그저 하루였지만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이를 생계와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처참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3. 비슷했다

장사를 끝내고 살펴보니 주변 상인들도 나와 상황은 비슷했다. 장사 시작 3시간이 돼가는 시점에서 개시를 못하거나 판매 물건을 한두 개 정도만 판매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장사를 한 지 27년 정도 됐다는 A(60) 씨의 이야기는 가히 충격이다.

“옛날에는 매대를 펼치기만 하면 팔렸는데 6~7년 전쯤부터 사가는 사람이 없어. 요즘은 단골 장사지.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내가 살 물건이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가기 바빠.”

알고 있다. 그의 씁쓸한 웃음은 슬픔에 가깝다는 걸. 수세미를 판매하고 있는 B(91) 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 나와 장사한 지 14년째야. 직접 뜬 수세미를 팔고 있는데 단골이 꽤 있지만 수세미를 한 번 사면 몇 개월씩 쓰니까 자주 안 와서 아무것도 못 파는 날이 많아.”

#4. 찬바람

이곳 상인들은 모두 유동인구가 줄어든 탓에 장사가 더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곳에서 30년 장사했다는 C 씨. “옛날에는 유동인구도 많고 장사가 잘돼서 단속과 신고도 많아서 6개월 장사하면 접고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요즘은 지상에 횡단보도가 생기면서 지하로 잘 안 다니니까 손님이 적어져 몸은 편한데 마음은 찬바람만 불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생업이라 장사를 접을 수도 없고 오래 장사한 만큼 단골도 있어서 위치 옮기기도 어려워 여기서 물건 팔고 있는데 유동인구가 더 줄어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5. 하루하루 겨울

고작 5시간 동안 했던 장사였지만 생각보다 관심 없이 빠른 발걸음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에 마음은 크게 위축됐다. 심지어 원금회수도 못할 만큼 저조한 판매수익은 눈앞을 더 깜깜하게 했다. 만약 이게 생업이었다면 자릿세, 전기요금, 직원의 월급도 제대로 챙기도 못할 거라는 생각에 앞이 막막했다. 그렇다고 ‘하나만 사 달라’라는 외침을 애써 무시한 채 지난간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진 않다. 얼마나 경제가 어려우면 그럴까. 책상 앞에 앉아 통계 자료를 보며 ‘경기가 좋지 않다’라는 기사만 썼던 과거를 다시 돌이켜본다. 우리에겐 고작 하루의 체험이었지만 생업으로 뛰어들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일이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이주빈 기자 wg9552063@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