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과거의 ‘성지원’에 현재의 대전시가 응답할 때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2기 종합보고서 발간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5년간의 진실 규명 작업을 종합한 국가의 공식 결론을 발표했다. 그곳에 성지원이 있다. 1979년 오정동에서 문을 연 뒤 1985년 대화동으로 이전해 운영됐으며 당시 약 600명이 수용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성지원을 보고서는 충청권 집단수용시설 가운데 대표적인 인권 침해 사례로 규정했다. 듣고도 믿기지 않았던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순전히 사실이었음을 공인한 것이다.
배경은 불과 40여 년 전이지만 억압과 폭력이 재갈을 물리던 시대다. 보호를 빙자한 행정조치가 장기 수용과 통제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구조적 인권 침해가 반복됐다는 게 진실·화해위의 판단이다. 근거는 시간이 지나도 부식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기억이다. 장기 격리와 폭행·작업 강요가 일상적으로 이어졌다는 증언이 확인됐고 수용 기간을 결정하는 기간이나 절차가 불명확해 시설 내부에서 자유가 제한된 상태가 지속된 것으로 드러났으며 외부의 눈을 가린 운영 방식은 폭력을 일용할 양식처럼 배양했다.
보고서는 1980년대를 가로지르며 성지원에서 수용자 폭행 사건이 반복됐다는 점을 핵심 인권 침해 정황으로 제시했다. 1985년 7월 잦은 폭행과 강압적 통제에 반발해 수용자들이 집단 농성을 벌였지만 관련 사건 상당수는 검·경 초동수사 과정에서 부실 처리되거나 축소·은폐됐다. 관리·감독 기관 역시 실효성 없는 권고만 반복했고 이는 1990년대 후반까지 유사한 인권 침해가 이어진 구실이 됐다.
1987년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진상조사단 폭행 사건도 보고서에 포함됐다. 운영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의원들의 접근을 관계자들이 막는 과정에서 폭행이 벌어졌다. 보고서는 이를 성지원의 폐쇄성과 통제 구조를 드러내는 사례로 설명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런 정황을 근거로 성지원 문제가 단일 시설의 차원을 넘어 당시 행정 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한계와 연결돼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왜 관리가 미비했고 폭행이 반복됐는지, 초동수사는 왜 부실했는지, 1985년 집단 농성과 1987년 조사단 폭행 사건은 왜 규명되지 않았는지를 따져보면 성지원 문제는 단일 시설의 실패가 아니라 국가 정책·행정·감독 시스템이 엮어낸 구조적 실패다. 성지원 피해자에 대한 심리 치유와 자립 지원, 배·보상법 제정, 명예 회복 절차 마련 등을 정부와 지자체 공공 책임으로 권고한 이유가 설명된다.
성지원은 과거에 있지만 피해자들은 상처를 고스란히 안은 채 현재를 살고 있다. 진실은 체에 걸러져 알맹이를 뱉어냈다. 과거지사이기 때문에 현재의 행정은 잘못이 없다거나 하는 책임 회피는 비겁한 변명이다. 지역의 과거를 치유하려면 지역이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응답할 필요가 있다. 일련의 권고보다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이 대전시의 진심 어린 사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