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반환 지연… 세입자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연락 끊길 때”
전세금 반환 분쟁은 대체로 한 가지 공통된 전조를 보인다. 계약 만기가 가까워질수록 집주인의 답변이 늦어지고, 어느 시점부터는 연락이 아예 끊긴다.
최근 법원 통계에서도 임대차보증금 관련 소송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는데, 실무에서는 이 ‘연락 두절 시점’을 사실상 분쟁의 시작으로 본다.
지난 22일 엄정숙 부동산전문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세입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은 집주인이 갑자기 회신을 미루거나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하는 때”라며 “이는 반환 의지가 흔들렸거나 자금 사정이 악화됐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약 종료 과정에서 가장 혼란이 발생하는 부분은 해지 의사표시 시점이다. 현행법상 세입자가 만기 2개월 전에 계약 종료 의사를 임대인에게 도달시키지 못하면 계약은 묵시적으로 갱신된다. 이 경우 기존 만기일은 효력을 잃고, 세입자가 새로 해지 통지를 한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야 비로소 해지 효력이 발생한다.
엄 변호사는 “세입자는 만기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묵시적 갱신이 돼 있었던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이때는 ‘해지 통보 후 3개월’이라는 새로운 계산이 적용되는 만큼 일정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자나 카톡만으로는 도달 여부가 다투어질 수 있어, 내용증명 등 명확한 기록을 남겨야 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세금반환소송에서 세입자들이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 ‘소송과 함께 가압류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갖춘 임차권은 이미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확보한 상태다. 임대차 목적물이 경매로 넘어가더라도 확정일자 순서에 따라 선순위로 배당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므로, 부동산 자체만으로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런 경우 가압류를 별도로 할 필요가 없다.
엄 변호사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갖춘 임차인은 그 집에서 우선 배당을 받을 지위를 이미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가압류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오히려 가압류는 요건이 엄격해 남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 가압류를 신청하려면 가압류할 재산을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하고, 그 재산의 담보가치가 보증금을 충당하기에 부족하거나 위험하다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 또한 임차주택의 가치가 보증금보다 현저히 낮은 경우여야 인용 가능성이 생긴다. 임대인의 다른 재산을 특정할 수 없어 가압류 신청 자체가 불가능한 사건도 적지 않다.
엄 변호사는 “임차주택의 가치가 충분하고, 세입자가 우선변제권까지 갖춘 상태라면 가압류는 실익이 거의 없으며 실제로 인용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세입자가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은 절차의 중요성이다. 해지 통보 시점, 도달 여부 검증, 우선변제권 구조, 그리고 임대인의 응답 태도 변화는 전세금 반환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다.
엄 변호사는 “전세금 반환 분쟁은 결국 ‘제대로 기록을 남겼는가’, ‘권리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가’, ‘위험 신호를 빨리 감지했는가’가 승패를 가른다”며 “특히 연락 두절은 가장 명확한 위험 신호이므로 그 시점부터는 법적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