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초록버스 여행] EP17. 계절의 경계를 만나다
그대 촉촉한 눈빛처럼,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
눈이 시린 계절이 스쳐지나간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 가객 김원중이 ‘가을이 빨간 이유’(작사/곡 배경희)에서 ‘단풍 저리 붉게 우는 날 … 슬프도록 아름다운 가을’이라고 노래한 계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휴가를 다녀왔다. 휴가를 맞아 초록버스를 타고 4곳을 찾아 늦가을을 만났다. 74번 타고 종점 산디마을서 내려 계족산을 올랐다. 25번 타고 노루벌을 찾아 노루벌적십자생태원 들렀다가 구봉산에 올랐다. 22번 타고 장태산자연휴양림과 물빛거닐길을 걸었다. 또 초록버스는 아니지만, 501번 타고 가서 상소동산림욕장 서성이다 대전둘레산길 3구간 산행을 이어갔다.
산디마을과 계족산, 계족산과 대청호, 노루벌과 구봉산, 장태산자연휴양림과 물빛거닐길, 상소동산림욕장과 대전둘레산길 3구간
#1. 계족산 능선 타고 만나는 대청호 파노라마 … 길치고개까지
(with 74번)
장동산림욕장 가는 버스 74번 종점은 장동2구 정류장. 산디마을이다. 종점에서 내려 20분만 걸으면 근사한 메타세쿼이아숲길을 만난다. 이 길은 처음이다. 눈부신 숲길이 마중나오는데, 로맨틱한 매력에 빠진다. 이미 가을잎이 많이 떨어져 조금 늦었다 싶지만 그래서 더 운치 있다. 아무도 없다. 혼자 걷는 길은 외롭지 않다. 부유한 자부심이 돋는다.
흥얼흥얼 노래 부르며 완만한 오르막길 가다 보면 20여 분 만에 이정표를 만난다. ← 0.1㎞ 임도삼거리, 산디마을 2.5㎞ →, 장동산림욕장 →4.6㎞. 임도삼거리 도착. 못 보던 이정표가 보인다. 한반도 횡단 숲길 동서트레일(849㎞) 이정표다. 한 쪽은 추동탐방지원센터(4.8㎞)를 가리키고 반대쪽은 삼정생태공원(15.8㎞)을 가리킨다. 얼마 전 대청호오백리길 5구간 흥진마을길에서 봤던 그 줄기다. 절고개에서 추동 방향으로 내려가 이어지는 구간으로 보여진다. 나는 임도삼거리에서 산쪽으로 오른다.
계족산성과 절고개 갈림길에서 절고개 방향으로 틀어 산책 같은 산행을 한다. 여기저기 단풍은 눈을 즐겁게 한다. 절고개 갈림길에서 추동 쪽으로 진행하지 않고 다시 산길을 탄다. 가양비래공원/길치고개 방향이다. 다시 갈림길, 가파른 오르막을 선택하면 팔각정자가 나온다. 그곳 뷰가 예술이다. 앞쪽으로 도룡동 방향 갑천이 시원하게 보이고뒤편으론 대청호가 열려있다. 의외로 이 팔각정자를 많이들 모른다. 하긴 나도 안 지 1년도 안 됐다. 팔각정자 뷰보다 더 근사한 건 다음 포인트다. 정자에서 내려가다보면 호연지기 파워풀한 바위를 만난다. 그 바위에 올라 앉아 감상하는 대청호 방향 풍경은 진취적인 감탄사를 자아낸다. 맘이 동한다.
대청호를 왼쪽에 두고 산행은 이어진다. 30분 후 벤치 두 개가 놓인 조망쉼터에 다다른다. 확 열린 대청호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조금 전 바위에선 조금만 보이던 명상정원이 길게 눈에 들어온다. 추동 호반길과 호수 건너 방축골, 백골산도 멋들어지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청호 즐감하다가 지나왔던 길, 대전도심이 보이는 길목에서 도심을 바라본다. 조금 더 가면 국가숲길 대전둘레산길 5구간 하이라이트 질현산성이다. 준비한 간식 챙겨먹고 길치고개로 내려선다. 오늘 여정 마무리 채비를 한다.
1969년 세워진 국내최초 아치형 교량 대전육교를 바라보며 내려간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도시와 대전육교가 어우러져 유화 같은 풍경을 만든다. 길치문화공원 도착. 공사중이던 길치문화체육센터 건물이 보인다. 다 지은 듯한데 12월중 개관 예정이란 안내문이 붙었다. 육교 아래서 오늘 여정을 마친다.
#2. 그리워하듯 구봉산과 노루벌 …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with 21, 25번)
노루벌적십자생태원(대전 서구 흑석동)으로 가는 길이다. 가까이 가는 버스는 21번과 25번. 주변 정류장은 3곳이다. 상보안, 노루벌, 장평보유원지. 가장 가까운 정류장은 노루벌 정류장이 아니고 장평보유원지 정류장이다.
버스 내려서 갑천 물길 따라 쉬엄쉬엄 걸어가면 1.1㎞ 15분 걸린다. 가을색 입은 생태원 메타세쿼이아숲 보러 왔다. 아뿔싸, 월요일 휴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메타숲을 바라본다. 대전시 유형문화재 상제집략판목과 용천연고판목을 보관하고 있던 고택 구봉재사 근처에서 메타숲 바깥구경 하다가 발걸음을 옮긴다.
이정표. 구봉정 →1.1㎞. 구봉산 올라가는 길이다. 두어 번 내려와 본 적은 있지만 올라가는 건 처음이다. 가파르다. 낙엽도 많아 꽤 미끄럽다. 20분 남짓 헉헉 대며 오른다. 다시 이정표. ←0.7㎞ 상제집략판목, 구봉정 0.6㎞→ .
능선에 올라탔다. 나뭇가지 사이로 노루벌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5분도 안돼 확 열린 조망이 마중 나온다. 구봉산에서 노루벌 감상하기 가장 좋은 포인트다. 한 중년 부부가 조망 좋고 햇살 따뜻한 명당에 앉아 점심을 즐기고 있다. 두 사람의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 대화가 정겹다.
노루벌을 내려다본다. 갑천 물길이 U자형으로 크게 휘돌아 나가는 장엄한 서사 뷰다. 물길이 품은 노루벌은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오른쪽 3시 방향에 생태원이 보인다. 메타세쿼이아숲 숨결이 느껴진다. 메타숲과 고택 구봉재사가 어우러져 한폭 수묵화다. 장평보, 상보안도 짚어본다. 왼쪽 7시 방향에선 상보안 가는 길 휴식 같은 친구 메타세쿼이아길이 손짓한다.
계족산과 대청호처럼 구봉산과 노루벌도 서로 그리워하면서 거리를 유지한다. 구봉산에 올라 시선을 펼치면 늘 그 자리에 있는 노루벌. 그립다, 말하듯 노루벌은 구봉산을 바라본다. 구봉산도 노루벌에게 말을 건넨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노루벌과 구봉산. 어쩌면 오래 전부터 서로를 그리워하듯 바라봤을 것이다.
구봉정 옆 정상석 인증사진 찍고 성애요양원 방향으로 내려간다. 구봉산은 봉우리가 아홉 개란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론 아홉 개 이상이다. 봉우리가 많다는 의미, 꽉 찬 숫자 9를 이름에 붙인 듯하다.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 전설도 있다. 그래서 관저동에는 신선마을아파트, 선암(仙岩), 선유(仙遊) 등 신선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3. 늦가을 끝판왕 장태산휴양림 … 물빛거닐길까지
(with 20, 22번)
‘절정의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은 버스도 만원이다. 외국인도 많다. 다른 지역 사투리도 크게 들린다.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목소리와 웃음소리. 버스가 장안저수지 지나 휴양림 길목에 들어서면 감탄사가 터진다. 붉은 빛 메타세쿼이아 거구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주차장 가득 자동차와 많은 사람들이 이곳 인기를 말해준다. 장태산자연휴양림 가는 시내버스는 두 대다. 20번과 22번. 20번은 대전역동광장종점과 장안동을 오가고, 22번은 서남부터미널과 장안동(장안동종점)을 오간다.
‘나는 남은 여생을 나무를 심고 가꾸며 진실하고 정직하게 자연의 섭리를 배우며 성실하게 살아가겠다. 이는 살아오는 동안 세상의 거짓과 가면 쓴 생활을 미워했기 때문이며 흙과 나무는 속이거나 기만하지 않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임창봉, 나의 신조)
장태산휴양림은 초입부터 압도적이다. 입구 지나면 바로 왼편의 흉상을 만난다. ‘장태산휴양림의 아버지’ 송파 故 임창봉 선생(1922~2002, 前 장태산휴양림 대표)이다. ‘나의 신조’는 선생이 1972년 산에 들어오면서 쓴 것으로 1973년 봄 자녀에게 준 글로 알려져있다.
흉상을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 앞쪽만 보고 지나간다. 나도 그랬다. 뒤편도 보시라, 뒤편에 ‘나의 신조’가 쓰여있다. 흉상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행복한 표정. 임 선생의 숨결은 많은 사람들의 휴식이 되고 치유가 되고 있다.
‘국민포토존’으로 불리는 핫플레이스로 오른다. 시끌벅적한 행렬이 먼저 보인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 ‘발 디딜 틈 없다’는 표현이 마침맞다. 사진 찍기 위해서 줄 선 사람들. 대부분 ‘인생사진’에 대한 기대로 밝은 표정이었지만 긴 줄 기다림에 심기가 불편해보이기도.
내려와서 출렁다리 건너 스카이웨이 걸어 스카이타워로 간다. 메타세쿼이아 숲이 살랑살랑 바람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숲속 어드벤처에서 나와 메타세쿼이아 숲속으로 빠져든다. 산림욕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메타숲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곁들여지면 더욱 근사한 곳이다.
장태루에서 장안저수지 방향 소박한 출렁다리 위쪽에 보이는 정자 팔마정으로 향한다. 팔마정에서 호수를 품고 햇살과 바람과 함께 늦가을을 만끽한다. 10월 개장한 물빛거닐길로 내려간다. 길게 놓여진 덱길, 물 위를 걷는다.
#4. 상소동산림욕장서 대전둘레산길로 … 오르락내리락 수양의 길
상소동산림욕장(대전 동구 상소동) 가는 501번 버스는 초록버스가 아니다. 초록버스는 아니지만 대전 외곽을 달려 금산 마전까지 간다. 501번을 타면 상소오토캠핑장/산림욕장 입구에 데려다준다.
상소동산림욕장이 주는 재미와 휴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산책은 기본, 식장산/대전둘레산길 3구간과 이어지는 등산로도 있고 무엇보다 유아숲체험원 등 아이들이 놀 공간이 많다. 오토캠핑장도 있다. 봄엔 꽃, 여름엔 초록, 가을엔 단풍으로 힐링을 준다. 겨울의 얼음동산은 단연 백미다. 시그니처 수많은 돌탑도 빼놓을 수 없다. 자전거 타고 가기도 편하다. ‘시내’에서 대전천 따라 쭉~ 오면 된다. 여기도 타슈스테이션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도 한다.
산림욕장 돌탑 옆 단풍길이 화려한 옷을 입었다. 끝자락 단풍은 한 폭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화다. 호젓하게 걷고있는 커플에게선 행복감이 묻어난다. 돌탑 근처에서 한 젊은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다. 장태산휴양림이 임창봉 선생의 작품이라면, 상소동산림욕장 돌탑은 수년간 돌을 지고 나르며 쌓아 올린 ‘돌탑 할아버지’ 이덕상 선생 작품이다. 2003년 9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쌓은 이 돌탑들은 대가 없이 돌을 차로 실어와 지게에 지고 옮기면서 하나하나 쌓아 ‘한국의 앙코르와트’를 완성했다.
산림욕장 산책을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다. 몇 해 전 대전둘레산길 유람할 때, 산길에서 산림욕장 내려가는 이정표를 보고 산림욕장 출발 산행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드디어 계획을 실천한다.
생각보다 가파르다. 30분 정도 오르막을 치고 올라 산길을 만났다. 이정표. ←상소동산림욕장 1.1㎞, 만인산 7.7㎞, 식장산 13.0㎞ 거리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하~ 낙엽이 잔뜩 쌓인 오르락내리락이 쉽지 않다. 20여 분 오르내리면 산 아래 고속도로가 보인다. 통영 가는 고속도로다. 금산에서 대전으로 넘어가는 또 다른 고갯길, 머들령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시인 정훈(1911∼1992)은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머들령 쪽바위에 기대 일제치하 민족의 한을 읊었다. 나무에 새겨진 머들령 시를 읽으며 물 한 모금, 다시 길을 나선다. 다시 오르막.
명지봉(404m), 국사봉(502m) 넘고 닭재, 계현산성을 지난다. 오후 5시가 넘은 시각 망덕봉(439m)에 이른다. 오르내리는 산길이 만만찮다. 보만식계(보문산 만인산 식장산 계족산) 종주하는 철인들이 존경스럽다. 끝내 어둠은 왔고, 어둠을 뚫고 하산한다. 잘 보이지 않는 길 휴대전화 손전등 불빛에 기대어 내려간다. 새단장한 구도교 불빛이 저질체력 등산객을 위로한다.
♣ 글·사진·편집=차철호 기자
☞ 대전 초록버스 여행
EP1. 노루벌길엔 ○○이 있다 (with 25번)
EP2. 두메마을과 찬샘마을 (with 71번)
EP3. 대전별서에서 하룻밤 (with 52번)
EP4. 원정동 두계천길 걷기 (with 23번)
EP5. 대청호 추동 가는 이유 (with 60번)
EP6. 산디마을과 계족산 (with 74번)
EP7. 대청호, 벚꽃의 기억 (with 63번)
EP8. 방동 윤슬거리의 멋 (with 41번)
EP9. 대청호반 비밀의 숲 (with 72번)
EP10. 장태산의 5월 (with 20, 22번)
EP11. 수락계곡과 대둔산 (with 21번)
EP12. 수통골 계곡 탁족 (with 41번)
EP13. 치유의숲과 보문산 (with 33번)
EP14. 이현동에서 계족산 (with 71번)
EP15. 갑천트레킹의 참맛 (with 26번)
EP16. 장태산휴양림 만홍 (with 20, 22번)
EP17. 계절의 경계 4곳 (with 74, 22, 25, 50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