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姓)·입향성씨(入鄕性氏) 14) 진주강씨 ②

성품 온화했던 회덕 입향조 강문한
슬하 7남 4녀 중 3형제가 크게 번창

2013-06-21     박길수
대청호숫길 옆에는 진주강희문송덕비가 있으며, 진주강씨 12종형 죽림정 연구 시비가 최근에 건립됐다.

진주강씨의 회덕입향조(入鄕祖) 강문한(姜文翰, 1464~1547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文臣)으로 자는 덕윤(德允), 본관은 진주이다. 거주지는 회덕의 잔골(자운리, 석봉동)이다.

고려 초에 병부상서(尙書, 정3품 국방장관)와 태자태사(太子太師, 고려때 동궁에 속하여 왕세자의 교육을 맡아보던 종1품)를 지냈고 거란의 침입 때 강감찬 장군의 부장을 역임한 은렬공 강민첨의 후손으로서, 북청 판관 강자위(姜自渭)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천성이 온화하고 집안의 가훈을 잘 이어받아 몸가짐을 단정히 하였으며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선대(先代)는 온양에서 살았으나 그의 대(代)에 와서 회덕 잔골 한사촌(寒寺村)으로 이사해서 살게되어 진주 강씨의 회덕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벼슬은 사복시(司僕寺, 궁중의 가마와 말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의 정(正, 정3품)을 거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왕명을 출납하던 중추부의 종2품 차관)에 이르렀으며, 84세로 사망하였다.

강문한은 회덕향안(懷德鄕案)의 명단에는 빠져 있으나, 1681년에 추보된<회덕향안 상·하>에는 향원록(鄕員錄)에 수록되어 있는데 진주 강씨로는 최초의 인물이다.

슬하에 7남 4녀를 두었는데, 그중 3형제가 크게 번창하여 장남 강림(姜琳)은 진사(進士)로서 왕자 사부(師傅, 스승)를 지냈고, 3남(男) 강린(姜璘)은 이조참판(參判,종2품안전행정부차관)에 증직(贈職)되었으며, 5남(男) 강침(姜琛)은 연산현감(縣監, 종6품 수령)을 역임하였다.

이들 3형제의 집안 중에서도 강린(姜璘)의 집안이 가장 번창하였는데, 강린의 아들 강운상은 효자로서 정려(旌閭, 정려문)를 받았고, 영의정(정1품 정승)에 추증되었으며, 강운상의 후손들은 이후 벼슬과 명망이 높았다. 강문한의 묘는 회덕 잔골 한사산(대덕구 석봉동 한절구지)에 있다.<대덕문화원>

“진주강씨 대전입향(晉州姜氏 大田入鄕) 연유”

진주강씨의 회덕입향조(入鄕祖)는 강문한(姜文翰,1464~1547년)은 진주강씨족보인 진주강씨 은렬공파세보(世譜)에 의하면 강문한은 은렬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11세손이다. 강민첨 장군의 묘는 예산군 대술면 이치리에 있으나, 그 후손들이 이 지역에서 세거한 것이 언제부터 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록에 의하면 강문한의 조모(祖母, 9세(世) 강일우(姜壹遇)의 처(妻) 박씨부인(朴氏夫人))의 묘(墓)가 온양 남면 서봉(아산시 송악면 동화2리)에 있고, 강문한의 아버지 강자위(姜自渭)의 묘가 이 지역에 정해진 것으로 보아 이들의 온양세거가 대략 15세기 초엽이라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