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人〉 신뢰 프로세스 그리고 말 말 말

2013-06-28     이인회
이인회
사회부장

“각 지역에서 제출한 계획인구를 다 합하니 2020년 대한민국 인구가 2억 명이 됩디다.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물론 도시계획을 수립함에 있어 인구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압니다만 너도나도 들이대는 뻥튀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죠.”

대략 7년 전 쯤 취재과정에서 당시 행정자치부 관계자가 들려준 푸념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대전시와 충남도의 미래 인구가 넉넉하게 반영되기를 바랐던 알량한 애향심이 발전 가능성이라는 불확정 요소까지 덧대며 물색없게 맞선 결과는 허사였다.

해마다 8∼9월경이면 여의도 근방에서는 총성 없는 전(錢)쟁이 벌어진다. 금배지는 기본, 중앙 인맥까지 비빌 언덕을 총동원해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한 진동한동 샅바 싸움은 당사자들에겐 눈물겹다.

행정과 정치가 연동돼 사사건건 지방정부와 맞대면해야 하는 중앙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참 피곤한 일이 많을 법도 하다. 여기저기서 누구는 입이고 누구는 주둥이냐며 ‘제 사정 좀 들어 달라’고 아우성이다. 푸대접이네, 차별이네, 홀대네 하는 식으로 여차하면 그 지역 의원 나리들까지 가세해 을러메고, 어르기 십상인데다 제 성에 안 찰 경우 정치 논리가 개입됐다며 툭하면 음모론까지 제기하니 중앙에 산다는 것의 피로감은 짐작할만하다.

어찌하겠는가. 곳간 주인이 중앙정부인 것을. 갑은 중앙이요, 을은 지방인 것을. 지방자치 전면 시행 20년을 코앞에 둔 이 땅의 ‘자치’를 ‘자치’라 부를 수 없는 현실이 그런 것을. 중앙에서 곳간을 열어주지 않으면 지방은 식물이 되거나 기능이 마비되는 중앙집권적 지방자치의 한계를 한탄해야 하지 않겠는가.
을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갑이 피곤을 호소할 때 을은 생존을 읍소한다.

계획 인구가 반영되지 않고, 기대보다 예산을 덜 배정받았다고 토라지거나 삿대질을 할 어기찬 지방정부는 없을 것이다. 언론이 선동하는 면이 없지 않은 공분(公憤)을 사는 대목은 이런 보편성보다는 위정자에 의해 국책사업으로 과대포장 됐거나 민심을 사기 위해 사탕발림으로 변장된 지역현안사업과 같은 특수성과 맞닿는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위해 충청권이 허비한 정력의 근수를 달아보라. 신 행정수도에서 행정도시로 격하된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행정도시를 도마 위에 올려 두고 수도권 친화적인 정권이 시도했던 칼질의 순간에서 하루는 원안 추진 약속이, 또 하루는 편린의 민심을 빌미로 한 식언(食言)이 반복되며 분탕질을 연상케 했다. 그래도 세종시는 시작만 놓고 보면 미완의 해피엔딩이었다는 게 위안이다.

누군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세종시 수정 획책에 비유한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더라도 프로세스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싶은 음해성 속담과 꼭 닮았다.

대전과 세종, 충북 오송·오창에 과학벨트를 구축해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육성하겠다던 전임 대통령 후보시절의 호언장담은 당선 후 수년간 롤러코스터를 타댔다. 공약은 오간데 없이 입지 선정부터 유치전 양상을 띠게 함으로써 충청권을 가시방석에 웅크리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거점지구와 기능지구를 선정한 뒤에는 부지매입비 분담 카드로 압박했고 과학벨트 예산을 수립할 때마다 축소 의혹이 꼬리표로 붙게끔 짜게 굴었다. 대통령의 반복된 정상 추진 의지 표명조차 미덥지 못하게 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부는 곱씹어 봐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기초과학연구원(IBS) 엑스포과학공원 조성 제안이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도 이 같은 불신의 산물이다. 과학벨트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다면, 최선이거나 혹은 차선으로의 귀결이 이토록 혼선과 분열을 조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종시도, 과학벨트도 우리가 손 벌린 게 아니다. 위정자들이 풀어낸 보따리다. 더 이상 헛심 빼지 말고 국토균형발전의 상징으로, 한국의 실리콘밸리로의 중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이 정부가 강조하는 신뢰 프로세스 구축을 실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