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성씨(入鄕姓氏) 15)순흥안씨(順興安氏) 13
안현, 청탁이 통하지 않던 청백리
안상, 금합자보 발간한 음악대가
안위(安瑋, 1491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으로 자는 백진(伯珍)이다. 안인후(安仁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안성(安珹)이다. 아버지는 안순필(安順弼)이며, 어머니는 조강문(趙康門)의 딸이다. 의정부 좌의정(左議政, 정1품 정승)을 지낸 안현(安玹)의 형(兄)이다.
1521년(중종 16년) 별시문과(別試文科, 나라에 경사있을 때 보던 과거)에서 병과로 동생과 함께 급제, 예문관의 사초를 꾸미던 정9품 학자인 검열(檢閱)이 됐다. 그 뒤 벼슬이 올라 예조좌랑(佐郞, 정6품 주무관)과 백관을 규찰·탄핵하던 사헌부의 정4품 부장검사인 장령(掌令)을 지내고, 1539년 사헌부의 검사장급인 종3품 집의(執義)가 돼 소세양(蘇世讓)과 함께 당시 세도가인 윤임(尹任)을 탄핵하다가 오히려 미움을 사 1542년 충주목사(牧使, 정3품 수령)로 좌천됐다.
이 때 근검절약하며 당시 기근으로 어려워진 농촌사회를 안정시키고자 구황에 힘써 그 실적이 뛰어났다. 명종이 즉위해 윤임 일파가 몰려나면서 발탁돼 1554년(명종 9년) 청홍도관찰사(觀察使, 종2품 도지사)를 역임하고, 이듬해 내직으로 옮겨 병조참의(參議, 정3품 국방차관보)를 지냈다. 이어서 승정원으로 옮겨 국왕을 측근에서 보필했고, 1558년 다시 외직으로 나가 전라도관찰사가 돼 민정을 잘 주관했다.
그 뒤 형조참판(參判, 종2품 법무차관)을 거쳐 1560년 병조판서(判書, 정2품 국방장관)에 특채돼, 오랫동안 국방을 주관하면서 병학(兵學)의 재능을 보였다.
양계(兩界)는 고려·조선 초기 지방 특수행정구역인 동계(東界)와 북계(北界)를 합해 일컫는 말로 고려조를 통해 관할지역의 증감은 있었으나, 동계는 함경도와 강원도 일부지역, 북계는 평안도 지역에 대한 국방을 강화하고자 진보(鎭堡)의 설치를 장려했고, 남방왜변에도 유의해 대책을 수립했다.
그 뒤 왕명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하던 중추부의 정2품 장관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렀다가 병사했다. 사람됨이 근면성실하고 행정능력이 뛰어났으며, 특히 국방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안현(安玹)은 중종때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해 명종때 이조판서(吏曹判書, 정2품 행안부장관)를 거쳐, 우의정(右議政, 정1품 정승)과 좌의정(左議政, 정1품 정승)에 올라 청백리에 녹선됐으며, 청강사재록(淸江思齋錄)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충성스럽고 청렴해 청탁이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문고 악보(樂譜)인 금합자보(琴合字譜) 발간한 음악대가 안상>
안상은 음악의 대가로써 선조때 장고, 거문고, 비파의 악보를 망라해 금합자보(琴合字譜)를 발간했다. 금합자보(琴合字譜)는 서기 1572년(선조 5년)에 안상이 엮은 거문고 악보(樂譜)다.
금합자보(琴合字譜) 또는 안상금보라고도 하며 표지는 금보(琴譜)로 돼있다. 이 악보는 목판본으로 출간된 가장 오래된 거문고 악보로 보물 제283호로 지정돼 있다.
안상은 조선 선조 때의 음악 이론가이며, 명종때의 명신(名臣) 안현(安玹)의 아우다. 1561년(명종 16년) 장악원(掌樂院, 궁중에서 연주하는 음악과 무용에 관한 일을 담당한 관청), 첨정(僉正, 정3품)이 돼 음악행정을 담당할 때 악사 홍선종(洪善終), 악공 허억봉(許億鳳), 이무금(李無金) 등과 함께 만대엽(慢大葉), 정석가(鄭石歌), 사모곡(思母曲) 등 옛 음악을 엮어 냈고 금합자보(琴合字譜, 보물 283호) 편찬에 착수, 1572년(선조 5년) 발간했다.